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했던 F1 2009 벨기에 그랑프리는 키미 라이코넨의 시즌 첫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어제 스파의 주인공은 2위를 차지한 포스 인디아의 피지켈라였죠. 이미 전날 퀄리파잉에서 팀 창단 후 최초의 폴 포지션을 기록하면서... 창단 후 단 한 점의 포인트도 올리지 못한 불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강력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어제 결승 그랑프리에선 아쉽게 우승은 놓쳤으나 팀 창단 후 첫 포인트를 포디움으로 기록하면서 포스 인디아는 물론 모든 F1 팬들을 흥분시켰습니다.
F1 2009 벨기에 그랑프리의 진행을 뒤돌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왜 스파가 재미있는 서킷인지를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금요일 연습 주행부터 갑작스레 내린 비는 스파의 변수를 잘 보여줬고... FP2 부터 강세를 보인 포스 인디아의 머신들은 주말의 이변을 예고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그랑프리를 앞두고 에어로다이나믹 파츠를 중심으로 업데이트된 포스 인디아 머신은 팀 보스인 비제이 말리야 박사의 말대로 주말 내내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본격적인 드라마는 퀄리파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토요일 퀄리파잉의 초반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 듯 보였고... 페라리의 임시 드라이버인 루카 바도어, 신예인 르노의 그로장과 토로로쏘의 알게수아리... 최근 드라이빙 능력에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나카지마와 역시 올 시즌 신인인 부에미까지 예상되었던 드라이버들이 탈락한 Q1에는 의아한 결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단지... 포스 인디아의 피지켈라가 Q1에서 P1을 차지한 께 놀랍다면 놀라웠지만... Q1일 뿐... 이라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이어진 Q2... 특별한 사고가 없었던 Q2에서는 지난해 월드 챔피언이자 최근 두 그랑프리에서 우승과 2위를 기록한 해밀튼을 비롯... 현재 포인트 선두이자 올해 가장 강력했던 버튼... 언제나 어떤 머신으로나 기대 이상을 보여준 2005, 2006 월드 챔피언 알론소까지 강력한 드라이버 세 명이 동반 탈락하면서 일찌감치 이변이 예상되었습니다.
대망의 마지막 Q3에서는...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올해 퀄리파잉 중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인 BMW 자우버의 두 드라이버가 3, 5 위를 차지한 것이나 최근 퀄리파잉 및 그랑프리에서 저조한 모습을 보였던 토요타의 두 드라이버가 2, 7 위르 차지한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피지켈라의 폴 포지션이었습니다. 올 시즌 Q3에 처음 진출한 피지켈라는... Q1 때 P1, Q2 때 P4에 이어 Q3에서 폴을 차지하면서 주말 내내 강했던 모습의 결실을 팀 최초의 폴 포지션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는.. 최저 예산 팀이 기록한 최초의 폴 포지션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죠... 도박에 배팅을 했다면 200 ~ 300 배의 배당은 너끈히 받을 만한 놀라운 결과입니다.
퀄리파잉의 결과는 1, 2, 3 그리드가 모두 통상적인 예상을 벗어난 가운데... 올 시즌의 강자인 브라운 GP와 레드불의 드라이버들이... 4 그리드인 브라운의 바리첼로는 연료량이 적었고... 레드불은 연료량은 많았지만 8, 9 그리드로 포디움을 노리기 쉽지 않은 위치에 배치되는 등... F1을 아는 사람일 수록 오히려 예상하기 어려웠을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KERS 차량은 어짜피 뒤쳐질 것으로 보이는 바도어를 포함해 맥라렌의 두 머신이 10위 권 밖에 있어서... 레이스 초반의 KERS 변수는 6 그리드의 키미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어제 8월 30일 쨍쨍하게 맑은 날씨에서 벌어진 벨기에 그랑프리는 다섯 개의 붉은 등이 꺼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특이 사항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타트... 4 그리드의 바리첼로가 전기 계통 이상(?)으로 추정되는 문제로 제대로 스타트가 되지 않으면서 6 그리드의 키미가 무섭게 치고 나왔으나 1 코너에서 크게 바깥으로 돌았습니다. 하지만, 스파의 1 코너는 넓은 런오프가 타막으로 큰 손실이 없었고... 다시 써킷으로 복귀하면서 3위까지 치고 오릅니다. 이어서 오 루즈를 오르면서 KERS의 힘인지 무섭게 가속한 키미가 5 코너를 앞둘 때 쯤, 5 그리드에서 출발해서 빠른 스타트로 2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쿠비차를 추월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5, 6 코너 구간에서 발생했는데... KERS의 힘을 이용해 무섭게 순위를 끌어올리던 해밀튼이 후미의 그로장에게 추돌 당하고 이어서 알게수아리, 버튼까지 사고에 말려들면서 무려 네 명이 한 순간에 리타이어... 세이프티카가 등장해 3 랩 동안 대열을 인솔하게 됩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 두 명이 한 순간 사라지고... 바리첼로, 트룰리 등이 피트를 하면서, 또 혹자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순위도 요동쳤습니다.
4 랩이 지나 세이프티 카가 들어간 뒤 1 코너를 지나면서 두 번째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오루즈를 바라보는 오르막... 어느 곳보다 KERS의 힘이 강력한 구간에서 키미는 피지켈라에 바짝 붙었고... 역시 5 코너를 앞두고 피지켈라를 추월하는데 성공합니다. 2009 시즌 최초로 페라리가 자력으로 대열의 선두를 차지하는 순간이었죠... 게다가 키미는 피지켈라보다 연료량도 많았기 때문에... 이대로 페이스를 유지하기만 하면 무난한 우승이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스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키미는 피치켈라를 추월하긴 했지만... 이후의 대열보다 충분히 빠르지 못했고... 이후 서너랩이 더 지난 뒤에는 뒤에 좇는 드라이버들에게 패스티스트 랩을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키미가 이전에 여러 차례 얘기했던대로... 페라리 머신이 다운 포스가 부족한 대신 연료량이 많을 때는 오히려 퍼포먼스가 좋다는 것이 반영되기도 했고... 다운포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S자 구간이 많은 2 섹터에서는 다른 머신보다 지속적으로 0.5초 ~ 1초 가량 느렸기 때문에... 언덕 길과 긴 가속 구간인 오 루즈부터의 1 km 가량에서 차이를 좁히는 패턴으로 겨우 선두를 유지할 뿐이었습니다.
포스 인디아의 피지켈라가 페라리의 키미의 꼬리를 무는 2008 시즌이라면 상상도 못할 장면이 첫 번째 핏스탑 이후로도 이어지면서 두 팀 모두 완벽한 핏스탑을 장군 멍군을 하면서 계속 도그파이팅을 계속했고... 핏 스탑에서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했던 웨버와 하이트펠트는... 핏 아웃 하면서 위험하게 하이트펠트를 가로막은 웨버가 드라이브 쓰루 페널티를 받으면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그 와중에 도박적인 원 스탑을 선택한 알론소가 무서운 상승세로 3위까지 치고 올라왔고, 키미-피지켈라-알론소가 벨기에 그랑프리의 우승을 다투겠구나... 예상되던 차에 알론소의 핏스탑이 30초 이상 지연되면서 헝가로링의 악몽을 되살리게 했고... 스타트의 혼전 중 알론소의 왼쪽 앞바퀴의 충격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로 결국 알론소는 우승권에서 멀어집니다. 두 번째 핏스탑 전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신예 베텔로 무거운 연료량에도 불구하고 앞선 쿠비차와의 간격을 랩당 0.3초 씩 줄이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올 시즌 WDC에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쿠비차가 처음으로 두 번째 핏스탑을 하고... 무서운 속도를 내던 베텔이 4 랩이나 늦게 핏스탑 하면서 3위로 올라서면서 스파의 포디움의 후보는 또 한 번 뒤바뀌었습니다. 두 번째 핏스탑에서도 똑같이 7.1 초를 기록하면서 완벽한 핏스탑의 지원을 받은 키미와 피지켈라는 끝까지 도그파이트를 계속했고 키미는 연신 사이드 미러를 통해 피지켈라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순위권의 마지막 자리를 노리는 싸움이 장미군, 웨버, 글록, 수틸 사이에 벌어지는 가운데... 7위로 달리던 바리첼로의 엔진이 3 랩을 남기고 연기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드라마가 예상되었습니다.
6위의 코발라이넨을 추월하려던 바리첼로 머신의 엔진이 불을 뿜기 시작했고, 같은 타이밍에 카메라에는 키미, 피지켈라, 베텔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올 시즌 아직 다섯 번의 그랑프리가 남은 가운데... 타이틀 도전자 중 선두인 버튼이 리타이어한 가운데 베텔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딛고 3위까지 올라온 것이 이슈가 되었고... 이대로 끝난다면 버튼을 19점차로 추격하는 결과를 낼 것이었습니다. ( 2007 시즌 세 번의 그랑프리를 남겼던 키미와 해밀튼의 차이였죠. ) 두 랩을 남기고 브라운 팀의 음성 통신으로부터 엔진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리첼로는 코비를 좇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고 웨버는 어떻게든 1점이라도 얻기 위해 장미군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바리첼로, 장미군, 웨버로 이어지는 바리첼로 트레인이 만들어지게 되었죠.
지난 2008 시즌 스파에서 마지막 두 랩을 남기고 키미가 리타이어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었던 2009 벨기에 그랑프리는 결국 이 순서대로 종료가 되었습니다. 키미는 채 1초 차이가 나지 않는 차이로 올 시즌 본인 / 팀의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답지 않게 흥분하면서 기쁜 모습을 감추지 않았고... 2위의 피지켈라와 포스 인디아 팀원 모두는 마치 WCC를 차지한 것 이상으로 환호했습니다. 베텔은 간만의 포디움으로 올 시즌 WDC 도전에 가능성을 남겨 놓았고... 바리첼로는 연기를 뿜으면서 끝내 완주에 성공했고... 피트에 들어온 그의 머신에 불이 붙어 '브라운 바베큐'를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4 명의 타이틀 도전자 중 한 명인 웨버는 아쉽게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면서 아쉽게 레이스를 마무리 했습니다.
키미의 우승이 너무나도 기쁜 스파였고... 피지켈라와 포스 인디아의 2위 포디움 피니시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레이스였습니다. 특히, 최저 예산 팀인 포스 인디아의 첫 번째 포인트 피니시는 F1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F1에 관심을 가졌던 아시아의 저예산 팀들에겐 꿈과 희망으로 자리잡을 게 분명하지요. 물론... 다시 돌아가서 올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한 페라리의 기쁨도 작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사실... 이번 스파의 첫 랩이 지날 때까지... 케로군조차도 꿈은 꾸되 기대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올 시즌 머신 F60의 경쟁력은 너무나 떨어졌고... 하염 없이 부족한 다운포스는 스파에서도 여전히 문제였으니까요. 게다가 키미는 알론소와의 교체설에 시달리는 중이고 마싸는 부상 중... 이보다 암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주변 상황을 극복한 아이스맨 키미의 우승!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케로군에겐 최근 1년 동안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는 레이스 주말을 보내게 되었네요. 오늘 마시는 자축의 와인이 그 어느날보다 맛있습니다. 역시 와인은 분위기와 기분... 일까요? 이제 2주 뒤에 펼쳐질 페라리의 홈구장 몬짜의 레이스도 기대가 됩니다. 최근 3 그랑프리 연속 포디움을 기록 중인 키미와 작년도 우승자 베텔이 양자 대결 구도를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