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톤에 이어 또하나의 유서 깊은 써킷 호켄하임에서 벌어진 독일 GP에서는... 퀄리파잉에서 베텔이 폴포지션을 차지하면서 올 시즌 11번의 그랑프리 중 10번의 폴포지션을 레드불이 싹쓸이했으나, 레이스에선 스타트에서 앞선 마싸의 '팀오더 논란'의 자리 내주기에 힘입어... 페라리의 알론소가 독일GP의 우승자가 되며 시즌 2승째를 올렸습니다. 마싸는 알론소에 자리를 내줬으나 2위를 잘 지키며 페라리의 원투피니시를 함께했고, 폴시터였던 베텔은 스타트에서 다소 늦으면서 홈그랑프리에서 포디움의 마지막 자리에 만족해야 했죠.
호켄하임의 독일GP에선 지난 발렌시아, 실버스톤에서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페라리의 퍼포먼스가 확실히 향상된 모습을 보이면서, 줄곧 뒤쳐져 있던 맥라렌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인 것은 물론 레드불에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모습으로... 올 시즌 들어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시즌 두번째의 원투피니시로 실제 퍼포먼스를 입증했고, 바레인에서 베텔이 점화플러그 이상으로 우승을 헌납했던 것과 비교하면... 처음으로 자력으로 일궈낸 우승이었으므로 더욱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레이스 중 팀오더 논란은 이번 알론소의 우승에 오점으로 남지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러면, 페라리의 팀오더 논란 외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된 독일GP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Free Practice
금요일 시작된 FP1의 시간에 맞춰, 우리나라의 F1팬들에겐 관심이 매우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LG전자의 레드불 스폰서 발표였는데요... TV, PC 등의 현물 지원을 포함하는 스폰서링과 함께, 머신과 드라이버, 크루들의 수트에 LG로고가 노출되는 보기 좋은 파트너십이 맺어졌습니다. 온보드에서도 콕핏 앞에 LG로고가 보이고, 드라이버 헬멧의 GIVES YOU WINGS의 양 옆, 드라이버의 팔뚝, 콕핏 바로 옆까지... 레드불 머신과 드라이버를 볼 때마다 LG로고가 노출되는 건 어쨌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한진이 르노의 스폰서십을 끝낸 이후에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F1 팀 스폰서십이라 ( LG가 F1 스폰서십을 한 건 작년부터지만... ) 앞으로 국내에 레드불 팬도 꽤 늘어날 것 같고, 무엇보다 F1에 대한 보편적 관심을 높이는데 공헌할 것 같습니다.
독일GP를 앞두고 각 팀의 업데이트 결과가 관심을 모았지만 ( 맥라렌은 실버스톤에서 실패(?)했던 블론 디퓨저를 다시 호켄하임에 가져왔습니다. ) 프리프랙티스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이런 업데이트가 아닌 '날씨'였습니다. FP1을 앞두고 비가 내리면서 호켄하임 곳곳엔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FP1이 시작되자마자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이 한 번 씩은 스핀이나 코스아웃을 경험하는 혼란이 연출됐죠. 다행히 빗줄기가 잦아들면서 FP1 후반엔 풀웻이 아닌 인터미디어트가 등장 기록이 크게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물이 많이 고여있고 미끄러운 써킷은 분명 위험했고... 결국 턴04에서 해밀튼이 그립을 잃고 코스아웃하면서 타이월에 충돌, 노즈와 왼쪽 리어 서스펜션이 모두 파괴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팀라디오로 들려온 해밀튼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한 데이터가 없는 업데이트된 머신의 테스트 기회를 잃은'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죠.
FP1의 기록으로는 홈그라운드의 수틸이 P1을 차지했고, 슈미가 P23으로 부진했지만... 사실상 비와 고인 물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세션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다만, Regenmeister( = Rain Master )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슈미의 빗길 주행이 특히 부진했다는 점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오후에 속개된 FP2 역시 웻컨디션에서 시작됐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물이 고여있었던 때문이었는데요... 실제로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드라이 타이어로 FP2에 임했습니다. 트랙에서 문제가 되는 곳은 세 곳 정도로... 앞서 FP1에서 해밀튼의 사고가 났던 턴04, 그리고 턴06 헤어핀과 마지막 코너 턴17 쥐르트쿠르베 정도였습니다. 턴04는 파라볼리카의 최고속 구간을 앞두고 빠른 가속 중에 오버스티어가 많았고, 턴06에선 제대로 감속에 실패( 물도 많이 고여있어서 더더욱 )하면서 코스아웃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마지막 턴17에서는 특히 리어의 그립을 잃으면서 오버스티어-스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문제들도 이 세 포인트에서 발생했죠.
FP2가 진행되는 동안 트랙이 빠르게 말라가면서... 각 팀들은 부족한 데이터 수집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호켄하임의 하드 - 수퍼소프트 컴파운드 조합이 매우 변칙적인데, 타이어의 내구성 문제와 장기 주행에 따른 기록 단축 효과 등을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데이터가 절실했겠죠. 게다가 FP1이 진행된 동안은 사실상 드라이 타이어의 데이터를 전혀 모으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옵션타이어=수퍼소프트를 끼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록은 크게 단축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알론소-베텔-마싸-웨버가 P1에서 P4까지를 점령하면서 독일GP에서 페라리와 레드불의 접전을 예고했습니다. 특히, 알론소와 베텔의 랩타임 차이는 0.03초 차에 불과해 페라리와 레드불의 퍼포먼스 차이가 거의 없음을 알려줬죠.
FP1에서 사고를 통해 머신에 큰 손상을 입은 해밀튼을 FP2에 내보내기 위해, 맥라렌 크루들은 개러지에서 땀흘리며 고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론트윙은 그렇다치고, 리어 서스펜션의 파손과 그에 따른 머신의 점검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었는데, FP2 후반 30분 정도를 남기고 해밀튼은 장비를 갖추고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외양상 정비가 끝난 듯한 MP4-25는 FP2 마지막 10분을 남긴 시점에서야 겨우 트랙에 나설 수 있었죠. 어쨌든, 맥라렌 크루들의 노력에는 감탄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진행된 FP3는 여전히 웻컨디션에서 치러졌습니다. ( 그리고 여전히 트랙 온도도 낮았습니다. ) FP3 전 쏟아진 소나기 때문이었는데... 대부분의 머신들이 인스톨레이션랩 이후 한참 동안 개러지에서 나오지 않았죠. 다행히? 트랙이 급격하게 말라가면서 머신들은 드라이 타이어로 마지막 짧은 테스트에 임했는데, 베텔-알론소-웨버-마싸가 P1에서 P4를 채우면서 FP2의 양상에 레드불과 페라리가 자리를 바꾼 모습이었습니다. 여튼, 드라이 컨디션의 두 프리프랙티스에서 확실히 페라리-레드불의 경쟁 구도가 자리 잡았고, ( 이전의 레드불-맥라렌 구도와는 다르게... ) 페라리의 퍼포먼스가 레드불과 최소한 같거나 상회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퀄리파잉을 앞둔 호켄하임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 Qualifying
세 번의 프리프랙티스를 혼란스럽게 만든 날씨는, 정작 퀄리파잉을 앞두고는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를 멈춰버리면서 또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습니다. 각 팀의 퀄리파잉을 앞둔 팀라디오에선 퀄리파잉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거란 얘기가 드라이버에게 전해졌죠. 퀄리파잉에 사용해야 할 드라이 타이어에 대한 데이터가 태부족이었고, 세팅을 위한 기본적인 테스트조차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FP1 때의 사고로 FP2도 대부분 개러지에서 대기해야 했던 해밀튼의 피해가 가장 커 보였습니다.
하지만, 드라이 컨디션이라고는 해도... 앞서 세 번의 프리프랙티스에서 드라이버들을 괴롭혔던 세 코너 부근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퀄리파잉이 시작된지 5분만에... 아직 절반 이상의 머신들이 Q1에서 단 한 랩도 완주하지 못한 상황에서, 턴17 쥐드쿠르베를 공략하던 포스인디아의 리우찌가 오버스티어와 함께 스핀, 그립을 잃은 머신이 트랙 안쪽으로 말리면서 핏월의 방호벽과 충돌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 버렸습니다. 노즈가 완파될 정도의 대형 사고로 홈 스트레이트엔 데브리가 잔뜩 뿌려졌고, 레드 플랙과 함께 퀄리파잉이 중단되고 말았죠.
마샬들이 데브리를 치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포스인디아의 스탭들은 수틸과의 팀라디오를 통해, 머신이 저속, 고속 코너할 것 없이 오버스티어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스피드는 빨랐지만 오버스티어 문제가 있던 수틸의 머신도 계속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내게 됩니다.
트랙이 정리되고 퀄리파잉이 재개되자... 상위 팀 중에서 랩타임을 기록하지 못했던 레드불 듀오가 서둘러 트랙에 나와 기록을 냈지만, 충분한 랩을 달린 알론소의 기록에 근접하지 못했고 결국 상위권은 FP2와 마찬가지로 알론소-베텔-마싸-웨버의 순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Q1에서 Q2 진출에 실패한 드라이버는 신생3팀의 여섯 명과 사고를 낸 리우찌였는데, 버진의 디그라씨는 머신 트러블로 한 랩도 기록을 내지 못해 최하위를 기록했고 찬독을 대신해 HRT 머신에 오른 사콘야마모토는 유일하게 사고 전 리우찌의 기록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Q2에서는 초반 페라리와 레드불, 맥라렌의 드라이버들이 프라임=하드 컴파운드 타이어를 사용했지만 ( 마싸는 처음부터 옵션=수퍼소프트 컴파운드 타이어를 끼고 나왔습니다. ) 두번째 도전에서는 대부분 옵션 타이어로 무장하고 기록을 크게 단축시켰습니다. Q2에서도 가장 빨랐던 드라이버는 페라리의 알론소로... 1분 14초대 초반의 기록으로 다른 드라이버들을 압도했고, 베텔이 약 0.17초 뒤진 P2, 웨버가 다시 그보다 0.1초 정도 뒤진 기록으로 P3에 오른 가운데... 마싸 역시 P4의 자리를 지키며 페라리-레드불의 대립 구도를 지켜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전의 퀄리파잉에서 항상 레드불과 맥라렌 듀오에 밀렸던 페라리 듀오가, F10의 머신 퍼포먼스가 분명히 향상되었음을 증명하는 느낌이었죠.
Q2에서 부진을 모았던 팀은 역시 메르세데스GP였는데... 팀과 두 드라이버 모두 홈그랑프리에, 4회 우승 경력의 슈미가 출전하는 등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Q2 종반까지 슈미와 장미군 모두 톱텐에 벗어나 있어 탈락의 위기감이 감돌았습니다. 마지막 트라이에서 슈미옹이 P9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극적인 Q3 진출이 이뤄지나 했습니다만, 곧이어 장미군... 뒤이어 윌리암즈의 후켄버그가 슈미의 기록을 넘어서면서... 메르세데스GP는 장미군의 턱걸이 Q3 진출, 슈미옹의 탈락이라는 부진한 결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슈미 외에도, 코바야시, 페트로프, 수틸, 델라로사, 알게수아리, 부에미가 Q3 진출에 실패했죠.
페라리의 F10과 레드불의 RB6가 거의 같은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느낌이 들면서, Q3는 더욱 긴장되게 치러졌습니다. 치열했던 Q3에서 먼저 치고 나온 건 알론소로 가장 먼저 1분13초대에 진입하면서... 이후에 결승선을 통과한 레드불 듀오를 크게 앞섰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트라이에서 먼저 트랙에 나선 베텔은... 단 한 번의 마지막 트라이에서 섹터 2까지 앞선 알론소의 기록보다 뒤쳐졌던 것을 섹터 3에서 만회하면서, 알론소의 앞선 기록보다 0.1초 이상 앞선 기록으로 P1에 올라섰죠. 문제는 보다 빠른 추세로 베텔의 뒤를 따르던 알론소였는데, 모두를 조마조마하게 했던 알론소의 마지막 랩은 자신의 앞선 기록을 0.1초 이상 단축했으나... 0.002초라는 미세한 차이로 베텔의 기록에 미치지 못하면서 P2에 머물렀습니다. 섹터별로 보면 섹터 1에선 베텔과 알론소가 호각을 이루고, 섹터 2에선 알론소가, 섹터 3에선 베텔이 앞서는 복잡한 구도를 만들었는데... 레이스 중에 베텔이 순위를 지켜 출발한다면... 알론소가 섹터 2에서 베텔을 위협하고 섹터 3에서 베텔이 달아나는? 구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싸는 Q2에서의 기록보다 0.2초 정도를 당기면서 P3에 올랐지만, 웨버는 마지막 트라이에서 턴01에서 실수를 범하면서 마싸에게도 뒤지며 P4에 머물러야 했죠. 웨버의 Q3 기록은 Q2 기록에 비해서도 0.007초 뒤쳐진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해밀튼 역시 Q2 기록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록으로 P6에 그친 반면, 버튼은 Q2의 기록을 크게 앞당기며 5그리드를 차지해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후 네 명의 드라이버 쿠비차, 바리첼로, 장미군, 후켄버그 모두 Q3의 기록이 Q2의 기록에 미치지 못했는데... 미세하면서도 조심스러웠던 호켄하임에서의 퀄리파잉에서 집중력의 차이가 보인 게 아닌가 싶네요. 특히, 맥라렌의 경우 스피드 트랩에서 페라리, 레드불보다 6~7 km/h나 더 빠를 정도로 스피드가 좋았는데, 밸런스 문제가 있는지 오히려 기록이 크게 뒤쳐졌던 점( 특히 섹터 3에서 )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결과였습니다.
퀄리파잉에서는 다소 부진하더라도 레이스에서 회복하는 경향이 있던 맥라렌이 결승 레이스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눈에 띄게 강력해져서 이미 맥라렌을 추월하고 레드불과 맞서는 퍼포먼스를 보인 페라리의 승부가 어떻게 될지... 어떤 전문가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가운데 퀄리파잉은 막을 내렸습니다. 베텔이 폴포지션이지만 2, 3 그리드의 페라리의 협공을 스타트에서 어떻게 방어할지, 지난 실버스톤처럼 스타트에서 많은 변수가 생기지 않을지도 궁금해졌고요. 어쨌든, 유례가 없는 치열한 퀄리파잉을 마친 독일GP는 일요일 레이스를 앞두고 호켄하임의 경쟁은 그 어느때보다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 Sunday Race
프리프랙티스와 퀄리파잉을 위협했던 비는 일요일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구름은 좀 있었지만 맑은 날씨에 마른 노면은 트랙 온도도 30도 이상 올라가면서, 나름 정상(?)의 드라이 컨디션에서 레이스를 펼치게 되었죠. 레이스 이전까지의 변동 사항은 퀄리파잉 이전에 이미 기어박스 교체 페널티를 받은 수틸 외에, 버진의 두 드라이버 글록과 디그라씨가 10, 5그리드 씩 페널티를 받은 정도였죠.
폴시터 베텔은 지난 실버스톤과 마찬가지로 스타트가 늦었습니다. 총알같은 스타트를 했던 3그리드의 마싸는 이미 베텔의 스피드를 한참 상회하고 있었고, 베텔은 안쪽의 알론소를 봉쇄하는데 집중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턴01에서 오히려 코스 바깥쪽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외에 혼란스러웠던 스타트의 결과 상위권에선... 마싸 - 알론소 - 베텔 - 해밀튼 - 웨버 - 버튼 - 쿠비차의 대열이 형성됐죠. ( 위와 같은 대열 순서에서 해밀튼과 쿠비차가 이후로도 대열의 간격을 벌이는 기차놀이의 선두들이 됩니다. ) 포스인디아 듀오와 토로로쏘 듀오가 모두 첫 랩을 마치고 핏스탑을 했는데, 특히 헤어핀에서 팀메이트 알게수아리에게 추돌당해 리어디퓨저가 파손된 부에미는 첫 랩에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12랩째에 베텔이 선두권에서의 첫 핏스탑을 할 때까진 이렇다할 이벤트는 없었습니다. 베텔이 핏스탑 하자 알론소, 웨버가 다음 랩에 핏스탑에 동참했고, 그 다음 랩에는 마싸와 해밀튼이 핏스탑했지만... 버튼은 옵션=수퍼소프트로도 관리에 자신있는지 22랩째까지 핏스탑을 하지 않고 버틴 끝에, 핏스탑 후 웨버 앞으로 들어오면서 5위까지 올라섰습니다.
한 편 옵션에서 프라임 타이어로 교체한 머신들은... 하드 컴파운드 타이어가 데워지기까지 몇 랩 동안 부족한 그립의 위기를 넘겨야 했는데, 알론소보다 한 랩 늦게 핏스탑 했던 마싸 역시 알론소의 강한 압박을 받았죠. 몇 번의 휠투휠과 알론소의 노즈가 몇 번인가 마싸의 노즈를 앞서는 장면도 있었고, 마싸의 리어가 헤어핀에서 크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마싸는 결국 라인을 지켜내면서 알론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실질적인 선두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마치 이스탄불에서 팀메이트간에 살떨리는 배틀을 펼친 레드불, 맥라렌 듀오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죠.
한 랩 먼저 핏스탑 했던 슈미와 한 랩 늦게 핏스탑한 쿠비차도 비슷한 배틀을 벌였는데, 자리를 내주는 듯 하던 쿠비차가 끝내 슈미를 막아내고 앞서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싸는 25랩 쯤부터 강하게 푸시하면서 패스티스트랩과 함께 알론소와의 간격을 크게 벌여 나갔는데, 마싸의 레이스 엔지니어인 롭 스메들리 역시 마싸를 독려하면서 계속 집중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핏스탑이 한 차례씩 폭풍처럼 지나고 나자 비교적 지루한 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 물론 선두권에선 쫓고 쫓기면서 서로의 기록을 비교하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신경전이 있었고, 앞선 드라이버가 시야에 들어오는 드라이버들은 사력을 다해 앞선 드라이버를 추격했지만... 제대로된 배틀이나 추월 장면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델라로사를 제외한 톱텐의 핏스탑이 완료되었을 때의 순위는... 마싸 - 알론소 - 베텔 - 해밀튼 - 버튼 - 웨버 - 델라로사 - 쿠비차 - 장미군 - 슈미의 순이었는데, 델라로사만이 발렌시아에서의 코바야시처럼 늦게까지 첫번째 핏스탑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하품 나오게 레이스가 끝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될 즈음... 논란의 팀라디오가 방송 화면에 그대로 흘러나왔습니다. 페라리 마싸의 레이스 엔지니어인 롭스메들리가 ( 아까의 호전적이고 우승을 독려하는 목소리는 간 데 없고 ) 47랩 째에 마싸에게 "Fernando is faster than you. Can
you confirm you understood that message?" ( 알론소가 너보다 빠르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듣겠나? ) 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알론소가 마싸보다 빠를지는 모르지만 추월하기는 힘들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뭔 말인지 알지?'까지 포함한 이 메시지는... 명백한 팀 오더로 보일 수 있는 얘기였죠. 물론 이 메시지가 알론소가 쫓아오니 마싸에게 보다 빨리 달리라는 뜻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바로 다음 랩 헤어핀을 탈출하면서 마싸가 명백히 속도를 늦추면서 알론소를 앞으로 보내줬습니다. 알론소를 보내준 48랩째 마싸의 랩 타임은 자신의 페이스보다 2초 가까이 느렸다는 게 또 문제가 될 수 있겠죠. 마싸가 페이스를 늦춰 알론소를 보내준 뒤 다시 방송된 팀 라디오에선 "OK mate, good lad. Stay with him now. Sorry." ( OK 친구, 착한 친구군. 이제 그대로 있어라. 미안하다. ) 라고 롭스메들리가 말한 걸로 보아 마싸에게 미안해할 수 밖에 없는 팀오더는 명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침 이날은 1년 전 헝가리GP 퀄리파잉에서 마싸가 큰 부상을 당했던 바로 그 날이어서, 마싸가 느꼈을( 레이스 엔지니어도 느꼈을 ) 참담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논란의 선두 교체가 벌어진 이후... 51랩 째에 프라임 타이어로 스타트때부터 논스탑으로 달려온 델라로사가 핏스탑했습니다. 싱싱한 옵션 타이어로 마지막 16랩 동안 순위권까지 네 대를 추월할 계획이었을텐데... 예상대로 핏스탑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윌리암즈의 후켄버그를 너무 가볍게 추월하면서, 이 계획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바리첼로의 블로킹에 막혀 순위 상승은 쉽지 않았고, 설상가상 백마커인 코발라이넨이 헤어핀에서 델라로사를 보지못하고 접촉하면서 델라로사의 프론트윙이 파손... 델라로사는 어쩔 수 없이 두번째 핏스탑을 하면서 포인트의 꿈을 접고 말았죠. 코발라이넨 역시 머신의 파손으로 곧 리타이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델라로사의 핏스탑 후 톱 텐의 순위는... 알론소 - 마싸 - 베텔 - 해밀튼 - 버튼 - 웨버 - 쿠비차 - 장미군 - 슈미 - 페트로프였는데, 이 순위 그대로 레이스를 마치게 됐으니 실상 매우 심심한 레이스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베텔은 마지막 10랩 동안 절반 이상의 랩에서 패스티스트랩을 갱신했으나... 열심히 도망가는 페라리 듀오를 따라잡지는 못했고, 다섯 랩을 남긴 시점에서 해밀튼의 팀라디오에서도 더 이상 연료를 아낄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이 시점에서는 아무 의미없는 메시지가 되고 말았네요.
레이스는 이대로 끝났습니다. 포인트를 받는 톱텐의 순위 변동은 없었고, 알론소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신과 팀 모두에게 시즌 2승째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시상대에선 3위를 한 베텔도 홈그랑프리에서 포디움에 오른 것을 어느 정도 기뻐하며 웃는 모습이었지만, 마싸는 다소 씁쓸한 웃음을 계속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에게 안타까움을 더했죠. ㅠㅠ 프레스 컨퍼런스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문제의 '팀오더'에 집중되었고... 페라리의 팀 관계자들은 결국 스튜어트들에게 소환되어 팀오더 여부에 대해 심문받기도 했습니다. ;;; 스튜어드들은 페라리에 1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문제를 FIA의 최고 조정 기구인 WMSC에 상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팀오더가 금지된 것도 장 토드의 거듭된 바리첼로에 대한 팀오더 때문이었는데... 현재 문제의 장 토드가 FIA 회장직에 앉아있으니 어쩔지 모르겠네요. 향후에 FIA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으나... 어떤 결론이 나든 이번 알론소의 우승은 불필요한 불명예를 안게 됐고, 마싸는 씁쓸한 넘버2로 팀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에 다시 내던져진 결과를 남겼습니다. 어쨌든 "Fernando is faster than you. Can you confirm you understood that message?" 이 팀 라디오는 두고두고 논란의 중심에 있게 될 것 같네요.
페라리는 팀 보스 도메니칼리가 그렇게 주장하던대로... 올해 챔피언십 경쟁에서 아직 물러서지 않았음을 입증했습니다. 페라리 듀오는 43점의 포인트를 쓸어가면서 WCC 경쟁에서 맥라렌, 레드불과의 간격을 좁혔고, 알론소 역시 선두 해밀튼에 47점이나 뒤져있던 WDC 경쟁에서 13포인트의 차이를 줄이면서... 이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월드챔피언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선언하는 듯 했습니다. 이로써 챔피언십 경쟁은 드라이버의 경우 맥라렌 듀오, 레드불 듀오와 알론소의 5파전! 컨스트럭터의 경우엔 맥라렌, 레드불, 페라리의 3파전!으로 전개되면서... 하반기의 전망을 더욱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게 되었네요.
그리고, 여름 휴가 전에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그랑프리인 헝가리GP가 휴식 없이 바로 다음 주말에 펼쳐집니다. 후반기에는 전혀 다른 고속 써킷에서의 경쟁과 아시아, 브라질로의 투어가 이어지므로... 비슷한 스타일의 유럽 지역 그랑프리는 헝가리GP가 마지막이 될텐데요, 과연 강력해진 페라리의 약진이 계속될지... 레드불과 맥라렌은 어떻게 또 반격을 펼칠지... 레드불과는 다른 의미의 페라리의 드라이버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지... 팀오더 논란은 1주일 동안 어느 방향으로 튈지... 이래저래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