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과 독일인은 많은 면에서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경향이 있지만... 모터스포츠에 상당히 많이 열광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독일을 대표하는, 영국으로 치자면 실버스톤과 같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써킷이라면... 바로 지난 해 독일GP가 개최된 Nürburgring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없을 듯 합니다. ( 특히 Nordschleife는 독일인은 물론 세계 모터스포츠팬에게 단순한 써킷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올시즌 독일GP가 개최되는 호켄하임링( HockenheimRing )은 68년이 넘는 역사와 40년째에 접어드는 F1 그랑프리 개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제대로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써킷 자체로서 호켄하임링은 상당히 흥미로운 써킷입니다. 몇 가지 재미있고 인상적인 요소도 있고... 반대로 몇 가지 단점도 눈에 띄는 곳이죠. 계속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F1 그랑프리를 개최하는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 2007년부터는 Nürburgring과 1년씩 교대로 개최합니다만... ) 그러면, 지금부터 분명한 장단점이 공존하는 호켄하임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켄하임링은 비교적 짧은 길이 4.574 km의 써킷으로, F1 그랑프리의 경우엔 시계 방향으로 67랩을 돌게 됩니다. 써킷의 정식 명칭은 HockenheimRing Baden-Württemberg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독일 남서부의 Baden-Württemberg주에 위치해... 프랑스는 물론 주변 서유럽 국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등의 유서 깊은 도시와도 인접해 있어 관광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전 실버스톤이 그랬듯 호켄하임링 역시 2002년 대대적인 써킷 레이아웃 변경을 겪었는데, 이전 레이아웃에서는 그 길이가 무려 6.8 km에 달했던 전형적인 '스탑앤고 스타일'의 올드 써킷이었습니다. 길이특히 대부분의 직선 구간이 숲 속에 위치한 상당히 매력적인 레이아웃이었는데... 사고의 위험은 물론, 대부분의 추월 포인트가 그랜드스탠드에서 관객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2001년부터 헤르만 틸케( 또 등장하셨습니다.^^ )에 의해 현재의 레이아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전 레이아웃( 회색 라인 )과 변경 후 현재의 레이아웃( 검은 라인 )을 비교하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레이아웃 변경 후의 랩레코드는 2004년 키미가 작성한 1분 13초 780으로... F1에서 몇 개 안되는 1분 10초대의 랩타임을 기록하는 써킷입니다. ( 67랩을 돌더라도 레이스는 비교적 빨리 끝날 수 밖에 없죠. ) 최근의 F1 그랑프리 기록을 살펴보자면, 2007년과 2009년엔 독일GP가 Nürburgring에서 개최되어서 제외하고 ( 그나마 2007년은 유럽GP로 명명되었습니다. ) 2004, 2005, 2006, 그리고 2008 시즌까지 네 시즌의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추월이 심하게 어려운 써킷까지는 아니고, 사고 다발 써킷이라곤 할 수 없지만 적지 않게 종종 사고도 터져주는 써킷이라 그런지... 절대 강자가 눈에 띄는 써킷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색적인 기록이라면... 독일인 최초로 F1 독일GP에서 우승한 슈미가 호켄하임에서만 4승의 기록이 있고, 그의 동생인 랄프 슈마허 역시 호켄하임에서 1승을 기록한 바 있는데... 그 1승이 바로 레이아웃 변경 전 마지막 그랑프리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많은 독일인 드라이버들이 출전하는만큼...
( 슈미, 장미군, 베텔, 후켄버그, 수틸, 글록까지 모두 여섯 명이 출전합니다! )
어느 때보다 독일인 드라이버의 우승 확률이 높은 그랑프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레이아웃 변경 전 F1에 데뷔했던 키미는 2001 시즌 변경 전 레이아웃의 호켄하임부터 레이아웃 변경 이후 2005 시즌까지 내리 다섯 시즌동안 리타이어하는 불운을 겪었고, 특히 2005 시즌엔 폴포지션에서 레이스를 시작해 선두를 달리던 중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해 안타까움을 더했죠. 2008 시즌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대열 후미 17그리드에서 출발해 원스탑 작전을 택한 상태에서... 마침 핏스탑 직후 세이프티카가 등장하면서 2위를 차지한 넬슨피케주니어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 한 때나마 무려 선두에서 달리기도 했습니다. -_-; ) 독일GP 이전까지 아홉 번의 F1 출전에서 여섯 번을 리타이어하면서 완주가 힘든 수준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급 2위를 차지한 건 뭔가 실력의 발전이 있었다기보단 역시 운이 따라준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호켄하임링의 기억할만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토드롬( Motodrom )의 독특한 형태
- 단순한 레이아웃에 고속 코너가 다수 배치된 써킷
- 써킷의 고저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한 완전한 평원에 위치
우선, 모토드롬( Motodrom )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보통의 F1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써킷들의 그랜드스탠드 배치를 보면... 빠른 직선 구간을 끼고, 혹은 추월 포인트나 곡선 구간 사이사이에 그랜드스탠드가 배치되는 게 일반적인데, 호켄하임링의 주 그랜드스탠드 형태는 좀 다릅니다. 일단 아래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 다이어그램을 보시면, 홈스트레이트와 핏레인을 포함하는 지역을 둘러싸고... 마치 하나의 스타디움이 만들어진 것 같은 형태로 그랜드스탠드가 배치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한쪽이 뻥 뚫리고 한쪽만 바라보는 형태의 구조 덕분에...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활용하기에도 아주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죠. 실제로 마이클 잭슨, 롤링스톤즈 등의 공연은 물론... 메탈리카, 프로디지 등이 참가했던 2009 소니스피어 페스티발 같은 록 페스티발도 개최된 바 있습니다. ( 2009 소니스피어 페스티발은 Nürburgring에서 열린 독일GP보다 딱 일주일 전에 개최되었죠. )
위 다이어그램의 Südkurve 부근 Motodrom의 C, D 구역에서 써킷을 내려다보면 아래 사진처럼 다섯 개의 코너와 핏레인 입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토드롬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호켄하임을 독특하게 만드는 장점이라면, 단순한 레이아웃은 다소 써킷을 밋밋하게 만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레이아웃 변경 전의 스탑앤고 스타일의 단순한 레이아웃이라면 엄청난 스피드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재밌겠지만... 현재의 레이아웃에서는 아주 많은 볼거리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물론, 써킷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개 안되는 코너들은 저속 코너가 고속 코너가 고루 배치되어있고, 고속 코너의 스피드나 수는 실버스톤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숫자가 배치되어 있어서, 짧고 레이아웃이 간단하다고 해서 저속 코너가 많은 써킷처럼 아주 재미없는 레이아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월도 분명하게 가능한 써킷으로 인식되고 있기때문에... 많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써킷이 거의 평원에 가깝다는 점은 분명한 단점인 것 같네요. 약간의 고저 차이만 있어도 굉장히 재밌어질 수 있는 써킷인데... 사실상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 내리막 없이 진행되다보니, 호켄하임링의 레이스를 보다보면 한참 재밌으려다가도 문득 졸음이 쏲아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여튼, 단순한 레이아웃에 더해 고저차가 없는 써킷이라는 점 때문에 변수는 적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종종 터지는 걸 보면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살짝 변수가 부족한 써킷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F1 타이어 독점 공급자 브릿지스톤은 이번 독일GP에... 변칙적으로 옵션 타이어에 수퍼소프트 컴파운드, 프라임 타이어에 하드 컴파운드를 투입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이전에도 종종 타이어 내구도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던 호켄하임이라면( 특히, 2005년의 브릿지스톤 ) 빠른 수퍼소프트와 내구도의 하드의 선택에 따라 여러가지 변수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러면, 한 시즌을 쉬고 다시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호켄하임의 간단하다는 레이아웃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켄하임링에는 모두 17 개의 코너가 존재합니다. 코너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상 코너로 구분하기 애매한 구간도 많고,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간단해서 17 개를 이해하는데 딱히 어려움은 없습니다. 섹터 1에는 turn 04까지 모두 네 개의 코너가 배치되어 있고, 섹터 2에는 turn 05에서 turn 11까지 일곱 개의 코너가... 마지막으로 이른바 모토드롬 스타디움 섹터로 불리는 섹터 3에는 나머지 여섯 코너가 배치돼 있죠. 그러면 지금부터 각 섹터의 특징적인 구간을 중심으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달아보겠습니다.
A. sector 1 : turn 01 ~ turn 04 스타트 직후에 오른쪽으로 고속 코너를 맞이한다는 점은 이전의 발렌시아의 turn 01이나 실버스톤의 콥스와 같습니다만, 그 경사의 급격함에선 실버스톤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속도는 발렌시아, 실버스톤보다 많이 느리기 때문에... 비교적 고속 코너란 말이 민망한 첫 코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난해 보이는 이 정도의 첫 코너에서도 의외로 드라이버에게 느껴지는 압력은 강해서( 3G 이상 ) 210 km/h 전후의 속도에도 속도감이 상당하고 스타트 때는 종종 사고도 발생하니 주의해서 봐야겠죠. turn 01은 Nordkurve 즉 북쪽 커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마지막 코넌인 남쪽 커브 Südkurve 등과 함께 호켄하임에서 몇개 안되는 기억할만한 이름 중 하나입니다.
Nordkurve를 빠져나간 머신은 300 km/h에 가깝게까지 가속을 계속하면서 turn 02에 접어듭니다. turn 02는 얼핏 헤어핀으로 보이고 분명 강하게( 그러나 결코 급하지 않게 ) 감속을 해야 하는 지점이지만... 실제로는 90 km/h 이상으로 완만하게 선회하는 곳이기 때문에, 프론트휠의 브레이크 락이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탈출 속도와 라인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이 turn 02 부근이 범피!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안전한 감속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turn 02 역시 불안불안한 추월포인트로 꼽힐 수 있겠지만, 다소 모험적이기 때문에 최적의 추월포인트는 아닙니다. turn 02 이후의 두 코너는 사실상 무난한 가속 구간으로, 열심히 가속하면서 정확한 라인을 지켜 호켄하임 최고속 구간인 '파라볼리카'만 대비하면 됩니다.
B. sector 2 : turn 05 ~ turn 11 turn 03, 04에서 정확한 라인과 속도를 지켜냈다면... 호켄하임에서 가장 빠른 구간인 Parabolika( 파라볼리카 )가 기다립니다. Parabolika는 길고 완만한 왼쪽 커브 구간인데... 에이펙스에서의 속도가 약 280km/h 이상, Parabolika를 지나 만나는 스피드 트랩에선 320 km/h 이상의 속도를 내게 되죠.
하지만, 이어지는 turn 06 '헤어핀'에서는 50 km/h 부근까지 속도를 낮추게 되는데... 두 말할 필요 없이 호켄하임 최고의 추월포인트가 바로 이 헤어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최고속도에서 200 km/h 이상 감속하는 헤어핀이나 급격한 코너는 대부분 훌륭한 추월포인트입니다. ) 헤어핀을 지나고 나면 다시 직선 가속 구간과 고속 코너가 이어지므로... 탈출 속도와 라인 역시 매우 중요해집니다.
turn 07은 280 km/h 이상으로 공략하는 고속 코너로... 헤어핀부터 시작된 직선 구간의 가속을 다음 저속 코너인 turn 08 직전까지 이어가는 구간입니다. turn 08에선 다시 100 km/h 이하까지 속도를 줄이지만, 이어지는 turn 09( 미세하게 왼쪽으로 도는 커브 )와 turn 10( 크게 오른쪽으로 도는 코너 )에서는 다시 가속과 함께 슬라럼의 기분으로 빠르게 탈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turn 11은...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도는 커브지만 그냥 코너가 아니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C. sector 3 : turn 12 ~ turn 17 모토드롬 스타디움 섹터의 첫 코너이며 Mobil 1( 모빌 1 )으로 불리는 turn 12는... 오른쪽으로 90도를 도는 급격한 코너지만 동시에 200 km/h 이상의 속도로 공략해야 하는 고속 코너입니다. 그리고, 모토드롬 스타디움 섹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트랙의 폭이 갑자기 줄어드는데, 이후부터 머신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가운데 격렬하게 부딪칠 중저속 코너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어지는 turn 13은 Sachs( 작스 )라는 이름을 가진 완만한 헤어핀으로 110 km/h 이상으로 공략하는... 생각보다 빠른 코너입니다. 이 지점 역시 추월포인트가 될 수 있는데, 관건은 비교적 좁은 트랙폭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린 것 같네요.
다음 두 개의 코너는 turn 14, 15의 시케인으로... 각도가 완만하기 때문에 트랙션에만 신경쓰면 무난한 가속구간입니다. 다시 잠시 속도를 줄인 turn 16에서 오른쪽으로 선회하고 난 뒤... 남쪽 코너라는 뜻의 Südkurve라고 불리는 마지막 코너를 만나게 됩니다. Sachs를 통과하고 난 뒤에는 높은 다운포스( 가능하다면 )를 활용해 머신의 밸런스를 유지하오 리듬을 타면서 통과하면... Südkurve까지 무난히 통과하면서 한 랩을 마칠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끝나는 걸로 봐선 써킷 레이아웃이 나름 간단한 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
지금까지 살펴본 호켄하임링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독일에서 Nürburgring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유서 깊은 써킷 - 섹터 3과 홈스트레이트를 끼고 있는 모토드롬( Motodrom )의 형태가 독특한 써킷 - turn 06의 헤어핀은 호켄하임링 최고의 추월 포인트 - turn 02와 turn 13 Sachs도 경우에 따라 추월을 기대할 수 있는 지점 - 레이아웃이 매우 간단하고 써킷의 고저차가 거의 없는 써킷
호켄하임은 앞서 언급한 여섯 명의 독일인 드라이버들은 물론 국적 기준으로 메르세데스GP 팀의 홈 그랑프리가 됩니다. 올 시즌 독일인 드라이버 라인업을 갖추면서 기대가 많았으나 아직까진 성적인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과연 두 명의 독일인 드라이버를 내세워 메르세데스GP가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을지... 또, 절대 강자인 레드불에 속한 독일인 드라이버 베텔은 독일GP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기대가 됩니다. 2008 시즌 넬슨피케 주니어의 경우처럼, 세이프티카에 따른 변수도 예상할 수 있다보니... 이전 두 그랑프리에서 세이프티카 덕분에 희비가 엇갈렸던 알론소와 해밀튼이, 과연 다음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심 거리네요.
이번 독일GP가 끝나고 나면 긴 여름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휴가의 분위기를 판가름낼 호켄하임에서의 결전은... 토요일 퀄리파잉 때 비 예보가 주어지면서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