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10 시즌 6라운드가 펼쳐졌던 모나코 그랑프리가 F1의 성배( Holy Grail of Formula One )이라고 불리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F1 최고의 축제였다면... 이어지는 7라운드 터키 그랑프리의 경우 관객 동원면 등에서 봤을 때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2009 시즌을 포함해서 터키 그랑프리는 관중석을 반도 채우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F1 팬들의 상대적인 외면(?)과 관객 동원 능력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터키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이스탄불 파크( Istanbul Park )의 써킷으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F1에 맞춰서 만들어진 모터스포츠 전용 써킷인 이스탄불 파크는 ( 발렌시아나 싱가폴은 시가지 써킷이므로... '-' ) 헤르만 틸케의 최근작 중 하나이면서도 고전 써킷, 특히 스파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의 조화(?)가 잘 이뤄진 써킷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분명한 이슬람 국가지만 여성들의 옷차림만 보면 유럽이고, 유럽이지만 동양색(?)이 느껴지는 오묘한 조화랄까요? ) 시즌 초중반 드라이버의 한계를 시험하는 써킷이면서... 다소 지루할 수 있었던 카탈루니아와 모나코의 레이스와는 차원이 다른 고속 써킷의 묘미를 보여주는만큼, 써킷 자체가 주는 재미만큼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F1의 인기가 많지 않은 국가에 만들어진 써킷이면서, F1 캘린더에 최근에 이름을 올린 그랑프리면서 헤르만 틸케 디자인의 써킷이라는 점...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을 담고 있는 전통적(?) 디자인의 써킷이라는 특징까지... 여러 모로 올 시즌 처음 F1을 개최할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큰 써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랑프리 첫 개최 후 몇 년 동안의 관객 동원도 터키의 선례를 따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ㅠㅠ ) 그런 면에서 ( 안그래도 재미있는 써킷이긴 하지만 ) 이스탄불 파크에서 개최되는 F1 그랑프리에는... 좀 더 의도적인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스탄불 파크는 이름 그대로 이스탄불에 위치한 써킷이어서 많은 경우 '이스탄불'로 불립니다. ( 케로군도 아래에 가능한 '이스탄불'로 표기하겠습니다. )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구분선으로 삼아 반은 유럽, 반은 아시아에 걸쳐 있는데, 이스탄불 파크는 그 중 아시아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총 길이 5.338 km의 최신형 써킷이면서 올 시즌 F1 캘린더에선 처음 등장하는 반시계 방향 써킷이란 점이 눈에 띕니다. 헤르만 틸케가 디자인해서 2005년부터 F1에 실전 투입된 써킷으로 랩 레코드는 2005년 맥라렌의 몬토야가 기록한 1분 24초 770입니다. 일요일 그랑프리 결승 레이스에서는 모두 58랩을 돌게 되는데... 랩 레코드에서도 보이듯이 상당히 빠른 고속 써킷에서 진행되는 그랑프리답게 레이스도 빠르게 끝나는 편이죠.
이스탄불에서 개최되는 터키 그랑프리가 2005년부터 열렸으므로 2004년의 기록은 없고... 지난 5 시즌 동안 1, 2위, 폴포지션의 기록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F1 그랑프리의 기록에서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뭐니뭐니해도 마싸의 3연속 폴투윈입니다. 2005년 패스티스트 랩으로 랩 레코드를 가진 몬토야까지 생각한다면, 반시계 방향이라서 그런지 남반구 드라이버들의 강세가 나타나는 것 같군요. (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반시계 방향 써킷에서는 왠지 남반구 드라이버들이 강한 느낌이... ) 반시계 방향이 객관적으로 드라이버들에게 부담스러울만한 점은... 아무래도 목에 가해지는 부담의 방향이 반대라는 점일텐데, 남반구 드라이버들은 반대쪽 G포스에 목이 단련이 잘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물론 다섯 번의 그랑프리 동안 폴투윈이 네 번이나 있었고, 그나마 2009 시즌도 베텔이 첫 랩에서의 치명적인 실수만 아니었으면 어찌됐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스탄불 역시 폴포지션이 매우 중요한 써킷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 위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등장하는 이름들이... 2005년에 맥라렌-르노, 2006년엔 페라리-르노, 2007, 2008 페라리- 맥라렌, 2009 브라운 - 레드불까지 그 당시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를 가진 팀의 드라이버들이 강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드라이버의 역량보다는 머신의 퍼포먼스에 많은 영향을 받는 써킷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탄불의 특징들을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저차가 심하다( 모나코와는 또 다른 의미로 )
- 큰 G포스가 발생하는 고속 코너가 많다.
- 시가지 써킷이 아니지만 노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다.
- 유서 깊은 써킷의 코너를 연상시키는 코너들이 배치되어 있다.
우선, 고저차가 심하다는 점은 머신의 퍼포먼스를 시험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보드 영상을 봤을 때에도 눈에 띄게 오르막의 압박이 있는 직선 주로에선 엔진의 힘이 중요하겠고, 내리막에서 급감속을 해야 하는 코너에선 브레이크의 퍼포먼스를 시험하게 되며... 높은 다운포스를 요구하는 오르막/내리막과 이어지는 코너들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죠. 내리막 급감속=사고 위험이라는 상식으로도 고저차 덕분에 이러저런 사건 사고가 많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turn 08로 대표되는 큰 G포스는... 58랩의 그랑프리 동안 드라이버를 괴롭히게 됩니다. 특히, turn 08에서는 최대 4.5G에 육박하는 G포스가 발생하는 데다가, 고속 코너가 3초 가량 이어지면서 드라이버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됩니다. turn 08 외에도 3G가 넘는 G포스가 발생하는 코너가 두 개 더 준비되어 있다는 건 보너스죠.
시가지 코스가 아니면서도 노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라는 점은 앞선 두 가지 특징에 양념(?)을 더해줍니다. 높은 고저차, 큰 G포스 자체가 사고를 유발하지는 않지만,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 머신의 그립이 순간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면 얘기가 다르겠죠. 사막 지역에 위치한 써킷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코 적지 않은 먼지 역시 그립에 악형향을 주기도 하므로... 드라이버들은 항상 미세한 써킷의 변화, 그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불의의 사고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에는 유서 깊은 고전(?) 써킷을 연상시키는 특징적인 코너 몇 가지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이스탄불 파크의 써킷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탄불에는 turn 01부터 turn 14까지 단(!) 14개의 코너가 존재합니다. ( 사실 turn 08은 3~4 개의 코너로 구분해서 보아도 되는데 이 경우 이스탄불의 코너 수는 16~18개로 늘어나겠죠. ) 섹터 구분으로는 turn 01 ~ 06까지의 섹터 1, turn 07 ~ 10의 섹터 2, turn 11 ~ 14의 섹터 3로 나뉘고... 아무래도 신생 써킷에 레이싱 불모지인 터키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특별한 이름을 가진 써킷은 없습니다. (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따로 언급해 보겠습니다. )
A. sector 1 : turn 01 - turn 06 이스탄불에서 머신들이 처음 만나는 코너 turn 01은... 평면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리막 씨케인 형태의 코너입니다. 내리막의 씨케인이라는 점과 왼쪽-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연속 코너라는 점에서... 인터라고스의 '세나S'나 라구나세카의 '코크스쿠류'에 비견되는 코너입니다. ( 터키 그랑프리의 지명도가 조금만 더 올라간다면 좋은 이름을 갖게 되겠죠. '-' ) 이런 특징은 코크스쿠류나 세나S처럼 이스탄불의 turn 01에서 역시 많은 사고를 가져올 수 있는데, 세나S와 마찬가지로 스타트 라인 직후의 내리막 씨케인... 게다가 결코 느리지 않게 공략해야 한다는 특징 덕분에... 실제로도 터키 그랑프리의 스타트 후 첫 코너에서는 사고/스핀의 이력이 매우 많았습니다. ( 특히, 중위권 드라이버들이 대량으로 사고에 연루될 수 있죠. ) 올 시즌 터키 그랑프리의 첫 랩 중하위권에서 신예 드라이버, 신생 팀 머신들이 사고를 피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turn 01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이어지는 가속구간 turn 02에선 3G의 G포스가 드라이버의 몸을 잡아 당깁니다. turn 02에서는 200 km/h 이상의 속력으로 오른쪽 선회를 한 뒤... turn 03에 도착하기 전에 300 km/h 이상의 속도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가속구간에서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겠죠.
turn 03 ~ turn 06은 지그재그의 복합 코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복합 코너의 정점을 최저 속도 구간인 turn 04의 오른쪽 90도 턴으로 보고, 진입 구간인 turn 03은 200 km/h 전후로 감속하면서 들어가는 왼쪽 90도 턴, 탈출 구간인 turn 05는 130 km/h 전후의 가속하면서 들어가는 왼쪽 90도 턴... 마지막 가속 구간인 turn 06은 단순한 가속 구간 코너로 이해하면 쉽겠죠. 이런 지그재그 복합 코너는 전체가 내리막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지의 슬라럼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데, turn 04 ~ turn 05 ~ turn 06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내리막 경사가 심해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B. sector 2 : turn 07 - turn 10 내리막의 turn 06을 지나 처음 만나는 섹터 2의 코너는 고속 헤어핀인 turn 07은 내리막 고속 구간에서 헤어핀이 이어지므로 브레이킹 포인트를 상당히 빠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turn 07의 공략은 이어지는 (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 코너인 turn 08의 속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데, 내리막 헤어핀에서 130 km/h 이상의 속도로 정확하게 라인을 타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turn 07을 지나 짧은 오르막 길을 오르면 이스탄불의 자랑(?) turn 08을 만납니다. turn 08은 사실상 서 너 개의 왼쪽 코너가 이어진 것과 같은 느낌인데요, 네 개로 나누어 생각하더라도 시작부터 270 km/h의 속도에 3G가 넘는 G포스로 들어가 최대 4.5G 평균 260 km/h 이상의 속도로 달리면서... 적절한 하프 쓰로틀과 풀쓰로틀 상태를 오가지 못하면 언더/오버스티어로 스핀해버리기 십상인.... F1 팬에겐 즐겁고, 드라이버에겐 까다롭기 그지 없는 코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270 km/h의 속도로 몇 초 동안 공략하는 이스탄불의 turn 08은 종종 스즈카의 '130R'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물론 속도에선 300 km/h를 웃도는 130R에 비할 수 없지만, 드라이버들이 체감하는 압박은 130R 못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올 시즌에도 어떤 드라이버가 이 turn 08에서 스핀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turn 08의 공략을 마치고 나면 다시 긴 내리막으로 머신의 최고 속도를 시험하게 됩니다. 내리막 끝에 만나는 두 개의 코너 turn 09와 turn 10 역시 사실상 하나의 씨케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turn 09에 진입할 때는 브레이크, turn 10을 탈출할 때는 쓰로틀의 관리가 관건입니다. 2009 시즌 터키 그랑프리 첫 랩에 베텔이 실수한 것이 바로 이 turn 10에서의 언더스티어에 이어진 코스아웃이였죠. 섹터 2가 turn 10에서 마무리된 후 turn 11로 향하는 신속한 가속이 필요하지만 마음이 앞서서는 안되겠습니다.
C. sector 3 : turn 11 - turn 14 turn 10을 지나서 turn 11까지는 무난한 가속 구간이고, turn 11 자체로도 공략의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오르막 직선주로를 지나서 만나는 turn 12가 이스탄불에서 가장 좋은 추월 표인트이기 때문에 turn 10 이후 가속 구간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turn 11에서 이어지는 긴 오르막 언덕길은 느낌이 스파의 '오 루즈'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Faux Rouge'( 직역하자면 가짜 루즈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써킷의 스피드 트랩도 '포 루즈'에 위치해 310 km/h를 넘어서는 머신의 최고 속도를 측정하게 됩니다.
turn 12의 저속( 100 km/h 이하의 ) 헤어핀으로부터 turn 13 - turn 14까지의 씨케인까지는 또다시 하나의 복합 코너로 볼 수 있는데, turn 13에서는 라인을 정확히 잡고, turn 14를 지나면서는 신속한 가속이 필요합니다만... 의외로 이 저속 구간 turn 12 ~ turn 14 사이에서 오버스티어로 시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마지막까지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turn 14까지 무사히 공략을 마치면 긴 홈스트레이트와 피니시 라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스탄불의 특징과 몇 가지 주목할만한 점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10 F1 캘린더에서 처음 만나는 시계 반대 방향 써킷 - 고저차가 많고 그에 따라 블라인드 코너가 많이 배치된 써킷 - 드라이버들과 F1 팬들에게 유명한 turn 08은 고속 복합 코너로 스핀 위험이 높은 코너 - turn 01은 세나S나 코크스쿠류에 비견되는 코너로 특히 첫 랩에서 사고 위험이 높음 - 오 루즈와 비슷한 느낌의 오르막을 지나 만나는 헤어핀 turn 12는 이스탄불에 추월가능성이 가장 높은 추월 포인트 - 관중이 많이 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써킷 - 시가지 써킷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어서 의외의 사고 변수가 비교적 높은 써킷 - 기록으로 보았을 때 이스탄불의 최강자는 2006~2008 3연속 폴투윈을 기록했던 마싸!
고속 써킷인 이스탄불은 앞선 두 번의 그랑프리가 열린 카탈루니아나 모나코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turn 08이나 Faux Rouge와 같은 구간에서 강팀들의 머신 퍼포먼스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고, 다운포스와 강력한 가속력이 모두 요구되므로... 슈퍼 다운포스 머신인 RB6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고, F-덕트만으로 승부를 가를 수도 없는... 올 시즌들어서 머신과 드라이버들의 경쟁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진검 승부가 예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3연속 폴투윈의 마싸가 올 시즌 F10의 퍼포먼스가 좋으므로 레드불의 가장 강한 경쟁자가 될 것 같네요. 최근 몇 번의 그랑프리에서 다소 부진했던 베텔은 새로운 섀시의 힘으로 부활할지 여부도 당연히 중요 관심사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될 2010 터키 그랑프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첫 한국GP의 개최를 준비하는 우리네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그랑프리가 될 것이므로 가능하다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