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시즌 캐나다GP가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F1은 1년 동안 최대의 모터스포츠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그랑프리를 개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0 시즌을 준비하면서 다시 5년 동안의 캐나다GP 계약이 성립된 덕분에 F1 팬들은 다시 한 번 화끈한 캐나다GP를 관람할 기회를 얻게 되었죠.^^ 돌아온 캐나다GP는 2년전과 마찬가지로 질 빌너브 써킷( Circuit Gilles Villeneuve )에서 개최됩니다.
질 빌너브 써킷은 인공섬 노틀담( Île Notre-Dame )의 강변을 한 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노틀담 써킷( Île Notre-Dame Circuit )이란 이름을 가졌었지만...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페라리 드라이버로 통산 6승을 기록하던 질 빌너브가 1982년 벨기에GP 퀄리파잉에서의 사고로 사망한 이후 1982년 캐나다GP 때부터 질 빌너브 써킷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질 빌너브 써킷은 긴 직선주로와 씨케인/헤어핀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스탑-앤-고( stop-and-go )' 써킷이면서 몬짜에 버금가는 상당한 고속 써킷인데다가... 시가지 써킷을 연상시키는 노면이 고르지 못한( 범피한! ) 써킷인지라 굉장히 재미있는 레이스가 기대되는 써킷입니다. 사고와 추월 장면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데다가...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사고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좋게말하면 화끈하고 나쁘게 말하면 위험한 써킷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면 여러가지 면에서 F1 캘린더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질 빌너브 써킷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질 빌너브 써킷은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위치한 써킷으로 엄밀히 말하면 시가지 써킷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가지 써킷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써킷이기도 합니다. 총 길이 4.361 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를 시계 방향으로 일요일 레이스에선 모두 70랩을 돌게 되는데... 2004년 페라리의 바리첼로옹이 기록한 1분 13초 622의 랩 레코드에서
볼 수 있듯이 모나코에 버금가게 한 바퀴 한 바퀴가 빠르게 진행되는 써킷이죠. 물론 세이프티카의 등장 회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요일 그랑프리도 비교적 일찍 끝나는 써킷이기도 합니다.
2009 시즌 캐나다 GP가 F1 캘린더에서 제외되었었기 때문에 최근 6년 간의 기록에서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다섯 시즌의 기록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 빌너브써킷에서는 최근 다섯 시즌의 기록에서 폴투윈이 두 번 밖에 없다는 것이 일단 눈에 띕니다. ( 앞서 소개했던 카탈루니아, 모나코, 이스탄불 모두 폴투윈의 비중이 절대적이었습니다. ) 그만큼 폴포지션이 우승을 보장해주지 않는... 추월 가능성도 높고 사고도 많은 써킷이란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죠. 최근에는 2 시즌 연속 폴포지션에 2007년 우승자 해밀튼의 강세가 돋보이고, 2008년 양강에 밀리는 BMW 머신으로 캐나다 GP에서 유일한 우승을 차지했던 쿠비차가... 다시 한 번 레드불, 맥라렌에 미묘하게 밀리는 르노 머신으로 캐나다 GP에서 2연승에 도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질 빌너브 써킷의 주요 특징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운포스의 영향이 매우 적다.
- 브레이크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코너가 많아 브레이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전형적인 스탑앤고 스타일의 써킷으로 추월 포인트가 많다.
- 시가지 써킷이 아니지만 노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다.
우선 다운포스에 대해서라면 모나코와 정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극단의 다운포스가 필요했던 모나코와는 반대로 질 빌너브 써킷에서는 다운포스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모나코에서 극단의 다운포스를 노린 패키지를 준비하는 것처럼... 질 빌너브를 시작으로 낮은 다운포스에 맞춘 패키지를 준비하는 팀도 적지 않을 겁니다. 레드불의 경우에 강력한 다운포스를 자랑하는 머신으로 올 시즌 초반을 압도하고 있었는데, 과연 질 빌너브 써킷에서 어떤 패키지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낮은 다운포스 세팅과 함께 또 하나 세팅의 관건은 강력한 브레이크 세팅입니다. 약 300 km/h에서 100 km/h 가까이까지 감속해야 하는 곳이 네 곳이나 되기 때문에 무려 70랩이나 돌면서 280 번의 급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브레이크에 부담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죠. 특히, 올 시즌 재급유 금지에 따라 레이스 초반 극도로 머신이 무거운 상태에서 브레이크에 대한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브레이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써킷이 되겠죠.
전형적인 스탑앤고 스타일의 써킷이라는 점은 몬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질 빌너브 써킷에서 추월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지 써킷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질 빌너브 써킷에는
turn 01부터 turn 13까지 단 13개의 코너만이 존재하는데, 앞서 소개했던 이스탄불 파크보다 하나가 더 적은 것은 물론... 이스탄불의 turn 08과 같은 복합 코너도 없기 때문에 그 구조는 지극히 간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섹터 구분으로는 turn 01 ~
05의 섹터 1, turn 06 ~ 09의 섹터 2, turn 10 ~ 13의 섹터 3로 나뉘지만 섹터 구분보다는 '스탑앤고'의 기준에 따라 몇 개의 포인트로 나눠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 turn 01 - turn 02 홈스트레이트에서 300 km/h에 육박하는 속도에서 급 브레이크를 통해 만나는 코너 turn 01은 이어지는 헤어핀 turn 02까지의 라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turn 02에서의 추월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중요한 코너입니다. turn 02는 질 빌너브 써킷의 이상적인 추월 포인트 중 하나이고, turn 02의 탈출 속도에 따라서 무난한 슬라럼이 이어지는 turn 06까지에서의 추격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turn 02 공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리 싸움이 심하고 라인이 매우 중요하고 추월 포인트가 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레이스 스타트에서는 여러 가지 혼전이 일어나긴 하지만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안는 점이 특이합니다. ( 코스아웃이나 접촉 사고는 충분히 기대할만하지만... ) 오히려 높은 속도로 turn 01에 진입하는 레이스 중반이 더 위험한(?) 코너라고 할 수 있겠네요.
turn 01의 진입 속도는 130 km/h 이상이지만 turn 02에서는 다시 80 km/h 이하로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라인을 지키면서도 급감속 - turn 01 - 가속 - 감속 - turn 02 - 가속의 공략 과정에서 속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turn 04 ~ turn 05 ~ turn 06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내리막 경사가
심해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B. turn 03 - turn 05 turn 02를 지나 250 km/h 이상으로 가속하다가 만나는 세 개의 코너는 일종의 슬라럼입니다. turn 03에서는 일단 130 km/h 이하로 감속하면서 슬라럼 공략을 시작하고 천천히 가속하면서 turn 04를 지난뒤... turn 05에서는 다시 250 km/h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슬라럼을 탈출하게 되면 두 번째 추월 포인트로 이어집니다. turn 03에서 turn 05의 슬라럼은 까다로운 질 빌너브 써킷에서는 무난한 슬라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음 구간에서 추월 포인트가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직선 주로를 공략하듯 꾸준히 가속하면서 머신의 컨트롤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C. turn 06 - turn 07 앞선 첫번째 추월 포인트였던 turn 01 - 02과는 다르게 turn 06 - 07은 전형적인 고속 구간에 이어지는 씨케인의 공식을 정확히 따르는 추월 포인트입니다. 300 km/h에 육박하는 스피드로 turn 06에 진입하면서 속도를 100 km/h 아래로 낮추고 왼쪽 90도의 turn 06에서 다시 오른쪽 90도의 turn 07을 완만하게 가속하면서 탈출해야 되는... 나름 까다로운 씨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urn 07의 탈출도 무시할 수 없어서 어렵게 추월에 성공하고 이어지는 직선주로에서 충분히 앞서지 못한다면 차례로 만나게 될 씨케인이나 헤어핀에서 다시 자리를 내줄 기회를 주기 때문에... 비교적 특징이 없어보이는 turn 07에서도 깨끗한 공략이 필수적입니다.
D. turn 08 - turn 09 turn 08 - 09는 가속 구간 중간에 자리잡은 시케인으로 100 km/h 이상으로 공략하는 나름 고속 시케인입니다. turn 08 - 09의 시케인에선 높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지만... 이어지는 turn 10이 또 한 번의 추월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그 속도 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E. turn 10 헤어핀 turn 10은 모나코의 그랜드호텔 헤어핀에 비견되는 매우 느린 헤어핀으로 300 km/h 이상의 속도에서 60 km/h 이하로 감속해야 합니다. 당연히 매우 강한 브레이킹에 따르는 부담이 큰 코너로 여기서 브레이킹에 실패하고 코스아웃 하는 드라이버들도 적지 않고 조금만 브레이킹이 부족해도 추가적인 브레이킹을 위해서 크게 시간 손실을 볼 수 있겠죠. 써킷에서도 넓은 런오프를 준비해두고 있는데, 특히 브레이크와 타이어가 많이 닳은 레이스 후반에 누군가 특별한 이벤트를 보여줄 지도 모릅니다.
F. turn 11 솔직히 turn 11은 코너라기 무안한... 긴 가속 구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turn 11을 포함한 가속 구간은 홈스트레이트와 함께 질 빌너브에서 가장 빠른 두 개의 구간 중 하나입니다.
공략 속도는 170 km/h 이상으로 별다른 코멘트는 없습니다. ;;;
G. turn 12 - turn 13 마지막 시케인은 이상적인 추월 포인트는 아니지만, 실제 레이스에서는 종종 추월이 벌어지는 고속 시케인이기도 하고... turn 12 이전의 긴 가속 구간과 turn 13 이후의 홈스트레이트 사이에 끼어있는 복합 코너로 질 빌너브 써킷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urn 08 - 09의 시케인과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은 약간 달라서... turn 08에서는 감속을 마치고 turn 09에서는 바로 가속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turn 12에서 감속한 뒤 turn 13에서 좀 더 감속 후 다시 가속을 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습니다.
turn 13의 탈출 라인에 위치한 오른쪽 세이프티월은 1999 시즌에 월드 챔피언 데이먼 힐('96), 자끄 빌너브('97), 슈미('94/'95)가 차례로 부딪혀 리타이어하면서 The Wall Of Champions 또는 The Champion's Wall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turn 12 - 13에서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머신을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긴데, 위의 챔피언들 외에도 아주 많은 드라이버들이 turn 13에서 벽을 향해 돌진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질 빌너브 써킷이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챔피언스 월에 키스하는 드라이버들은 계속 늘어나겠죠.
지금까지 설명한 질 빌너브 써킷의 구성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스타트라인 > turn 01에 이어지는 헤어핀 turn 02( 추월포인트 1 ) > 가속구간 - 슬라럼 turn 03 - 05 > 가속구간 - 90도 좌우 시케인 turn 06 - 07( 추월포인트 2 ) > 가속구간 - 우좌 고속 시케인 turn 08 - 09 > 가속구간 - 헤어핀 turn 10( 추월포인트 3 ) 긴 가속 구간 중 존재감 없는 turn 11 > 가속구간 - 우좌 고속 시케인 turn 12 - 13( 추월포인트 4 ) > 가속구간 - 피니시라인 통과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살펴본 질 빌너브 써킷의
특징과 몇 가지 주목할만한 점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운포스의 영향을 매우 적게 받는 써킷 - 브레이크에 부담이 많이 가고 브레이크 관리와 더불어 타이어 관리도 중요 - 사고가 발생하면 큰 사고가 발생하고 세이프티카 등장 확률도 높은 써킷 ( 하지만 보통 첫 랩에서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지 않음 ) - turn 13 탈출구의 안전벽인 이른바 The Champion's Wall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음 - turn 02, turn 06-07, turn 10, turn 12-13까지 추월 포인트가 많은 써킷 - 시가지 써킷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면이 고르지 못한 편이어서
의외의 사고 변수가 비교적 높은 써킷 ( 이스탄불 파크와 마찬가지 ) - 최근 해밀튼과 쿠비차의 기록이 좋았던 써킷
질 빌너브 써킷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써킷이었습니다. 천재적인 드라이버 질 빌너브의 이름을 땄다는 점에서, 2007년 쿠비차의 대형 사고 덕분에 이어진 미국GP에서 베텔이 F1 시트에 앉을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2008년 해밀튼의 키미 추돌 사고로 해밀튼에 대한 악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었죠.
2010 시즌에는 매우 오랜만에 슬릭 타이어로 사고가 잘 나는 고속 써킷에 도전하는만큼 F1 팬은 물론 일반인들을 위한 볼거리(?)도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퀄리파잉 때는 악천후도 예상되어 있어 일도 복잡해질 것 같고... 올 시즌 절대 강자였던 레드불 머신의 장점인 높은 다운포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주는 곳이고 단순 가속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 살짝 부진했던 페라리와 메르세데스GP에겐 기회의 땅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캐나다GP의 퀄리파잉은 마침 한국팀의 월드컵 첫 경기가 끝난 뒤 자정을 넘겨 펼쳐지게 되어 있어서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불태우게 해 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기대가 아주 많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