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F1은 19 라운드를 치러야 하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2주 연속 그랑프리를 치릅니다. 그 첫번째 연속 경기가 바로 이번 주에 펼쳐지는데요... 멜버른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랑프리에 이어지는 이번 주 그랑프리는 '고온다습'으로 악명 높고 2009 시즌 레드 플랙이 등장한 말레이지아 세팡에서 열리는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입니다. 이번 써킷 역시 관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써킷 분석을 담아볼까 합니다.
흔히 '세팡'이라고 부르는 써킷의 정식 명칭은 '세팡 인터내셔널 써킷( Sepang International Circuit )'입니다. 세팡은 티켓 오픈 행사 글에서도 언급했던 Herman Tilke가 디자인한 첫번째 F1 써킷으로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독특한 레이아웃이 '충격적'이라는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사실, 요즘 많은 F1 팬들이 이른바 틸케표 레이아웃의 써킷들이 지루하다, 추월이 어렵다 불평이 많지만... 오히려 많은 드라이버들에게 틸케표 써킷의 상징인 세팡은 굉장히 재미있는 써킷으로 여겨지고 있죠. 레이싱 불모지인 우리나라에도 지난 겨울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가되었던 써킷이 바로 이곳 세팡입니다.
세팡의 기술적 데이터를 살펴보자면 길이는 5.543 km로 표준의 편차안에서 약간 긴 편의 써킷이고, F1에서는 모두 56 랩을 돌게 됩니다. 랩 레코드는 2004년 윌리암즈 소속으로 몬토야(!)가 기록한 1분 34초 223인데... 앞서 소개했던 멜버른보다 5% 정도 더 긴 써킷인데 랩 레코드는 10% 이상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멜버른보다는 조금 느린 써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결코 느린 써킷은 아니고 다분히 F1에서 평균적인 속도를 보이는 써킷이라고 할 수 있죠. )
세팡에서 펼쳐진 최근 6년 동안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최근 6년 동안은 2년 연속으로 우승한 드라이버는 없었고, 비교적 다양한 드라이버( 팀 )의 이름이 우승자와 2위, 폴 포지션 드라이버의 자리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말레이지아가 가진 여러 가지 변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앞선 멜버른이 잦은 사고와 세이프티카가 변수였다면... 세팡의 변수는 역시 엄청난 폭염과 지난 해 레드 플랙을 불렀던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올 해 설정된 일요일 그랑프리 시간이 과연 폭우를 피해갈 수 있을지부터 걱정스럽습니다. ) 레이스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지 않더라도 폭염 속의 높은 습도는 드라이버를 한계 상황까지 몰아갑니다. 덕분에 각종 매체의 세팡의 프리뷰에는 어떻게 레이스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보다... 드라이버와 머신을 폭염과 습기로부터 어떻게 지켜줄까... 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곤 하죠.
세팡은 틸케 디자인 써킷 레이아웃의 전형이라고 앞서 이야기했었는데, 두 개의 긴 직선 주로... 블라인드 헤어핀, 완만한 고속 코너와 초저속 코너의 조합 등 아주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코너들이 고르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멜버른과 아주 대조적으로 '사고가 적게 나는 틸케표 써킷의 특징'까지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다만, 두 개의 '상당히' 긴 직선 주로는 매우 강력한 브레이킹을 필연적으로 부르고... turn 15와 turn 01에서 브레이킹 문제에 따른 스핀을 종종 구경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써킷 다이어그램과 함께 세팡의 레이아웃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팡은 모두 15개의 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명도 매우 간단한 편인데요, 긴 직선 주로의 끝애서 두 개의 헤어핀을 만나는 turn 01 ~ 03의 섹터 1, 각종 고속 코너들을 공략해야 하는 난이도 높은 turn 04 ~ 09의 섹터 2, 무난한 코너들에서 최고의 추월 포인트까지 최선의 라인을 타야 하는 turn 10 ~ 15의 섹터 3까지 모두 세 개의 구간으로 나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 sector 1 sector 1에서 주목할 구간은 역시 turn 01로... 직선주로에서 300 km/h까지 가속한 머신을 강력하게 브레이킹 하는 코너로 이상적인 추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첫 랩에서도 스타트 라인에서 turn 01까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코너에 이르기 전에 많은 추월이 일어나곤 하죠. 레이스 내내 turn 01은 유심히 봐야 할 코너입니다. turn 01과 02는 2단 기어로 공략하는 초저속 헤어핀 구간으로... 특히 블라인드 헤어핀인 turn 02의 탈출 속도나 라인을 잘못 잡는다면... 무난한 turn 03을 지나 sector 2로 이어지면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B. sector 2 약간의 언덕 오르막을 지나 만나게 되는 sector 2의 첫 코너인 turn 04는 오른쪽으로 90도 이상의 각도를 공략하면서 100 km/h 이상의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코너입니다. turn 04를 지나 가속을 계속해 250 km/h의 고속으로 공략하는 두 개의 코너를 만나는데, turn 05에선 오른쪽으로 turn 06에선 왼쪽으로 각각 4G의 엄청난 G포스를 이겨내야 하는 구간입니다. turn 05와 06은 세팡에서 가장 큰 G포스를 좌우로 느끼는 초고속 슬라럼의 확대 재생산 된 연속 코너로 이곳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이어지는 섹터 2 후반부의 중고속 코너들을 잘 공략할 수 있겠죠. ( 물론 머신에 가해지는 부담도 최고인 구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turn 07과 08은 다이어그램에서는 격하게 꺾어지는 코너로 보이지만 두 코너 모두 200 km/h 이상으로 선회해야 하는 고속 코너입니다. 이어지는 짧은 직선 구간을 지나 만나는 turn 09는 계속 이어지던 고속 구간 중 갑자기 나타난 저속 코너로... 이상적인 추월 포인트는 아니지만, 종종 이곳에서도 추월 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두 곳의 추월 포인트만큼은 아니지만 브레이킹이 중요한 곳이기도 하죠.
C. sector 3 저속 코너인 turn09를 벗어나면 sector 3에 접어들면서 바로 가속을 해야 하는데... 이어지는 반대 방향 코너인 turn 10까지 이어지는 라인에서 머신을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한다면 적게는 주춤하며 시간 손해를 보거나 심하게는 오버스티어로 스핀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저속 코너 탈출 구간인 turn 02와 turn 15의 경우에는 탈출로가 직선 구간이거나 완만한 곡선 구간이었지만, turn 10은 비교적 짧게 반대 방향 선회를 요구하므로 특히 레이스 후반 타이어의 그립이 나쁠 때 더욱 주의해야합니다. turn 10에서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하면 turn 11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래블에 빠져버릴 수 있죠.
이어지는 turn 11, 12, 13의 구성은 앞선 sector 2의 turn 04, 05, 06의 축소판으로... 다만 그 각도가 완만해서 공략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게 특징입니다. turn 13을 지나 바로 이어지는 turn 14는 긴 직선주로를 앞에 두고 있는 코너로... turn 14에서의 속도와 라인이 세팡에서의 기록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긴 직선주로에서 스피드트랩을 지나며 최대한 가속을 하다가 매우매우 강력하게 브레이킹 해야 하는 turn 15는 대다수의 드라이버들이 이해하는 세팡 최고의 추월 포인트입니다. 물론 turn 14의 탈출이 추월 여부를 좌우할테니 turn 14를 벗어나는 모습만 봐도 추월이 될지를 가늠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어서, turn 15의 헤어핀 공략 결과에 따라 다시 스타트/피니시 라인을 지나는 긴 직선주로와... 앞서 설명한 sector 1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추월포인트인 turn 01이 존재하므로 애써 추월에 성공했다가 다시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면 결코 긴장을 늦춰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메인 그랜드 스탠드를 끼고 달리는 구간인 turn 15는 세팡에서 가장 독특한 조형물(?)을 담아내 아름다운 앵글을 보여주는 구간이기도 한데요. 아래 사진 속에 담긴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코너가 바로 문제의 turn 15입니다. 사진 기자들도 이 앵글을 매우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정리한 세팡 써킷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열대의 폭염, 높은 습도로 드라이버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써킷 - 늦은 오후 시간 대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 레이스를 중단시킬 수도 있는 )가 예상되는 써킷 ( 올 시즌의 경우 Q3나 일요일 레이스 후반? ) - 이른바 '틸케 스타일'의 전형적인 써킷이며, 매우 현대적이고 균형잡힌 써킷 - 가장 아름다운 써킷 최고의 추월 포인트는 turn 15, 또 하나의 추월 포인트는 turn 01 - 추월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공략 지점은 sector 3의 마지막 구간... 특히 turn 14 - 타이어가 심하게 마모되었을 때 특히 머신 컨트롤을 주의해야 할 곳은 turn 10 ( 실수할 경우 코스 아웃이나 스핀을 볼 수 있을지도... ) - 드라이버와 머신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구간은 turn 05 ~ 06 구간
역시 폭염과 폭우가 변수가 될 이번 말레이지아 GP에서는 누가 이 혹독한 날씨를 극복하고 우승컵을 손에 쥐게될지 우리나라 시간으로도 일요일 늦은 오후면 판가름이 날 것 같습니다. 부디 작년과 같은 레드 플랙이 뜰 상황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특히 개인적으로는... 떠오르는 '뉴 레인맨' 베텔이 이번엔 꼭 세팡을 확실히 정복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