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을 제외하고는 최근 매년 F1 개막전이 열렸던 호주의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에서 이번 주말 F1 2010 시즌 2라운드 - 호주 그랑프리가 개최됩니다. 공교롭게도(?) 2006년에도 호주로부터 개막전의 영광을 뺏어간 것은 바레인 그랑프리였죠.
호주 그랑프리가 열리는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 Melbourne Grand Prix Circuit )'는 엄밀히 말하면 행정구역 상 멜버른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편의상 그냥 멜버른이라고들 부르곤 합니다. 써킷 이름 대신 써킷이 위치한 공원의 이름인 '앨버트 파크( Albert Park )'를 대명사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이 앨버트 파크는 가운데 앨버트 호수( Albert Lake )라는 인공 호수를 중심으로 한 공원으로,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이 바로 이 앨버트 호수를 한 바퀴 도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은 시계 방향으로 진행하는 시가지 써킷으로 F1이 개최되는 써킷 가운데는 비교적 빠른 편에 속하는 고속 써킷입니다. ( 퀄리파잉 기록 기준의 머신 속도는 평균 220km/h를 상회합니다. ) 써킷의 길이는 5.303 km로 짧지 않은 거리를 총 58랩 동안 돌게 되는데... 세이프티카가 자주 출몰함에도 불구하고 고속 써킷이기 때문에 일요일 그랑프리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머신의 세팅은 주로 높은 다운포스 세팅에 촛점을 맞추고 특히 브레이크를 강하게 세팅해야 합니다.
최근 6년 동안 호주 GP의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6 시즌 동안의 우승자가 속한 팀에서 WDC가 배출됐다는 점인데요, 2005 시즌 폴투윈을 차지했던 피지켈라만이 유일하게... '호주 GP에서 우승하고도 WDC를 차지하지 못한 드라이버'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하나 바리첼로 옹이 팀을 옮겨가면서 2등만 세 번을 기록한 것도 이색적입니다. 폴투윈이 많다는 것은 추월이 상당히 까다로운 써킷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드라이버들에게는 일정 간격으로 씨케인과 슬라럼만 반복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써킷인 덕분에 이론상으 추월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지는 써킷입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추월이 쉽지 않은 써킷임에도 불구하고 고저의 차이도 적어서 자칫 심심하게 보일 수 있는 앨버트 파크의 그랑프리가 재미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앞선 사키르의 살벌한 사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앨버트 공원의 멋진 풍광도 한 몫 하겠지만, 일단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모터스포츠 입문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는 역시 사건사고겠죠... -_-; ) 아무래도 시가지 써킷이다보니 노면이 고르지 못한( 'bumpy'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 덕분에 이런저런 변수가 많이 발생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특히, 첫 랩에서의 사고도 많은 편이고 세이프티카도 자주 출몰하기에, 빠른 드라이빙도 중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여러 변수들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써킷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고속 주행 중에 급브레이킹을 해야 하는 코너의 노면이 '범피'한 경우 락이 걸리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겠죠. 그런 변수들에 머신들이 주춤하거나 사소한 실수를 범하면 추월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실제 일요일 레이스에서는 이론적인 분석보다는 추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올 시즌은 특히 재급유가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브레이킹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더욱 많아보이고... 머신 컨트롤이 비교적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첫 랩 turn 01에서의 사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낙엽들이 공기흡입구로 들어가 쌓여 냉각계 쪽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고, 마모가 심한 타이어가 락에 걸려 머신을 그래블로 밀어내는 장면도 예상이 되는만큼... 아주 재미 없었다고 비판 받았던 2010 바레인 GP와는 다르게, 많은 흥미로운 사건들을 예상해봅니다.
그러면, 써킷 다이어그램과 함께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을 좀 더 자세히 파헤쳐보겠습니다.
우선, 멜버른 써킷의 구조는 위 다이어그램과 같습니다. 써킷 전체의 고저차가 크지 않고 거의 평지와 같기 때문에 위 다이어그램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죠. 모두 16 개의 turn으로 구성된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을 좀 더 쉽게 이해하면서 다음처럼 여섯 개의 코너, 슬라럼, 씨케인으로 구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A. turn 01 - 02 홈스트레이트를 지나 처음 만나는 씨케인입니다. 브레이킹에 들어가기 전 머신 속도가 300 km/h 이상이다가 속도를 절반으로 떨어뜨려 통과하는 고속 씨케인으로 특히, 첫 랩에서 굉장히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구간입니다. '긴 직선 구간 후 급감속'이라는 공식에 따라 추월 가능성이 높은 구간으로 레이스 내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추월에 신경 쓰거나 다른 이유로 turn 02에서 탈출 속도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다음 turn 03에 진입하기 전에 많은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B. turn 03 - 04 - 05 R-L-R로 세 번 연속 크게 턴을 하면서 머신의 조종성을 테스트 해 보는 격한 코너 구간입니다. turn 03은 멜배른에 두 개 밖에 없는 100 km/h 이하로 통과하는 저속 코너지만, 앞선 짧은 직선 주로의 속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좋은 추월포인트는 아닙니다. 다만, 이어지는 turn 04, 05의 경우 고속으로 큰 각도를 선회하기 때문에 높은 G포스가 발생하고 머신을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turn 05의 탈출 속도를 지키기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C. turn 06 - 07 - 08 고속 슬라럼 구간입니다. turn 06에선 130 km/h 수준에 불과(?)하지만, 슬라럼 구간을 빠져나갈 때는 250 km/h 이상의 고속으로 돌파해야 하는 곳으로, 머신의 다운포스와 퍼포먼스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구간입니다.
D. turn 09 - 10 앞선 슬라럼을 빠져 나와 turn 09로 이어지는 직선 주로는 매우 짧지만, turn 08의 탈출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turn 09에서는 속도를 절반 이상 떨어뜨리는 급감속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C 구간의 슬라럼에서 앞선 머신을 따라잡은 경우에는 D구간도 좋은 추월 구간이 될 수 있겠죠. 쉽지 않지만 turn 09에서 추월에만 성공한다면 turn 10에서 블로킹을 한 이후에 앨버트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 주로에서 먼저 충분히 가속하면서 차이를 벌일 수 있습니다.
E. turn 11 - 12 E 구간은 사실상 초고속 슬라럼에 해당하는데요, 앞선 C 구간의 슬라럼이 G포스 2.5 전후였다면... 내내 200 km/h 이상의 속도로 주파하는 E 구간은 G포스가 좌우 각각 4.5까지 이르는 압박이 심한 구간입니다. 훈련된 F1 드라이버라면 큰 무리는 없겠지만, 연료가 많은 초반 머신 컨트롤을 어떻게 하는가는 또 다른 얘기겠죠.
F. turn 13 - 14 - 15 - 16 세 번의 90도 우회전과 멜버른에서 가장 느린 turn 15의 구간 F는 각각 Ascari, Stewart, Senna, Prost의 네 명의 F1 영웅의 이름이 붙어 있는 멋진 구간입니다. 적절한 속도와 레코드라인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네 F1 영웅들의 이름을 지나면 바로 홈 스트레이트의 긴 직선주로가 이어지므로 최선의 공략이 필요한 곳입니다. turn 16을 탈출 할 때의 위치와 탈출 속도에 따라 그나마 추월이 쉬운 turn 01에서의 추월 가능성이 좌우되므로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멜버른 그랑프리 써킷의 특징과 관전 포인트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앨버트 호수를 끼고 도는 풍경이 아름다운 써킷 - 시가지 써킷이면서 고속 써킷으로 브레이크에 부담이 많이 가는 써킷 - 떨어지는 낙엽이 인테이크로 들어가면서 냉각계에 부담을 주거나 엔진을 멈출지도 모르는 변수가 있는 써킷 - 가장 중요한 추월 포인트는 turn 01 - 02의 씨케인 - 첫 랩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세이프티카 등장 가능성도 높은 써킷 - 드라이버들의 역량과 머신의 퍼포먼스를 가름해 볼 포인트는 '아스카리, 스튜어트, 세나, 프로스트'의 네 코너
앞선 사키르에서 의외의 변수가 모래 먼지였다면, 멜버른에선 낙엽이 의외의 변수가 될지 궁금하군요. 과연 올 시즌 이 아름다운 시가지 써킷에서 포디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드라이버는 누구일지도 이제 3일만 지나면 확인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