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네 시 Friday Practice를 시작으로 F1 2010 시즌이 개막됩니다. 올 시즌 첫 그랑프리는 중동의 섬나라 바레인의 사키르에서 펼쳐지는 Bahrain GP로 사키르는 2006년에 이어 4년 만에 F1 1라운드를 개최하게 되었네요. 며칠 전까지 워낙 많은 프리뷰를 썼던지라 이번 바레인 GP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케로군의 써킷 분석에 관심 있으신 분도 계신 것 같아서... 부족하나마 써킷 분석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사키르의 정식 명칭은 바레인 인터내셔널 써킷( Bahrain International Circuit )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근 지명을 따서 그냥 편하게 Sakhir 라고 부릅니다.( 케로군도 '사키르'라고만 부릅니다. )
써킷의 길이는 6.299 km로 올 시즌 F1 캘린더에서는 스파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써킷이고, 일요일 그랑프리 레이스에서는 총 49 랩을 돌게 됩니다. 써킷 레코드는 사키르에서 처음 F1이 개최되었던 2004년, 슈미가 전설의 페라리 F2004로 기록한 1:30.252의 기록이지만... 2010 시즌 레이아웃이 크게 변경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기록은 사실상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관련된 내용은 아래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
사키르 역시 최근 F1 캘린더에 추가되는 써킷 대부분을 디자인한 헤르만 틸케의 디자인으로 틸케 디자인의 특성대로 큰 사고 걱정이 없는대신 추월 포인트가 적은... 살짝 지루하기도 한 써킷입니다. 레이아웃 수정 전에도 평균적인 속도를 기록하는 중고속 써킷이었습니다만, 2010 시즌 레이아웃 변경에 따라 속도가 많이 느려질 전망입니다. 이전 기록들을 통해 살펴보자면, 2009 시즌까지 바레인 GP의 성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2004~2006 시즌까지는 강력한 머신을 가졌던 페라리와 르노가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며, 사키르의 승자가 WDC 챔피언십을 차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 3년 간은 레이스 우승자가 3위권 이하와 한 섹터 이상 앞서는 압도적 성능차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7~2009 시즌에는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일요일 그랑프리 레이스에서 포디움에 오른 세 명의 드라이버의 시간차가 10초 전후에 불과하는 등... 비교적 평준화(?)가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사키르의 구성에 대해서 써킷 다이어그램과 함께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키르는 위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미지 하단의 녹색 원을 출발점으로 해서 시계 방향을 돌며 23개의 turn을 공략하는 써킷입니다. 사키르의 특징은 긴 직선 주로가 많다는 점인데요, 홈스트레이트를 비롯해서, turn 3 - turn 4 구간, turn 18 - turn 19 구간, 그리고 turn 21 - turn 22 구간까지 600 m 이상의 긴 직선 주로가 무려 네 개나 됩니다. 특히, 레이아웃이 바뀌기 전까지는 turn 4 - turn 16 까지의 구간도 초고속 슬라럼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중고속 써킷의 특징이 더더욱 강했었죠.
하지만, 위 그림의 섹터 2( 붉은색 점선 ), 그 중에서 turn 4에서 turn 16까지 구간의 레이아웃이 완전히 변경되면서 어떤 사람은 심심하다고까지 얘기하던 써킷의 맛이 상당히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작년까지 F1 머신들이 달렸던 써킷의 레이아웃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써킷의 길이는 한 랩에 5.412 km였고 모두 15개의 turn을 57 랩 동안 공략해야 했던 예전의 레이아웃이, 2010 시즌 레이아웃 변경과 함께 8개의 turn과 무려 887 m의 길이가 더해졌기 때문에... 써킷 주파 시간은 20초 이상 느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써킷의 공략은 더욱 복잡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변경된 레이아웃의 중저속 구간은 높은 다운포스 세팅을 요구하게 되는데요, 2009 시즌 초반처럼 더블덱 디퓨저의 하이 다운포스 머신( 브라운GP, 토요타, 윌리암즈 )과 KERS를 활용하는 하이 스피드 머신( 페라리와 맥라렌 )이 확실한 차이를 보이던 시절이었다면... 하이 다운포스 머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졌을 법 했습니다. 하지만, 2010 시즌에는 거의 모든 머신들이 더블( 간혹 트리플도 점쳐지는 ) 디퓨저를 달고 나오는 이상, 또 다른 변수가 없다면 2009 시즌처럼 다운포스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각 구간별로 주의 깊게 살펴 볼 포인트들을 짚어보겠습니다.
sector 1 [ turn 1 ~ turn 5 ]
우선 붉은색 원으로 표시한 A 지역은 사키르에서 가장 추월이 쉬운 구간입니다. 일부에서는 이곳을 유일한 추월 포인트로 보기도 하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추월 포인트가 존재하지만... 머신 성능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A 지역을 노리는 게 중요합니다. 1km 정도를 가속해 300 km/h에 달한 스피드를 60 km/h까지 급감속 해야 하는 헤어핀 코너가 turn 1이고, 이어지는 반대 방향의 turn 2까지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추월 성공 여부가 가려지게 됩니다. 너무 무리하게 급감속 해서 turn 1에서만 앞서는 수준이라면, turn 2에서 다시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경우가 많겠죠. 물론 스타트에서는 turn 1-2-3를 지나면서( 종종 turn 5 부근까지 ) 많은 접촉과 자리 경쟁이 일어나므로 중계를 보신다면 A 구간을 가장 눈여겨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올 시즌 변경된 규정 때문에 타이어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는데, turn 1 에서 추월을 해 보겠다고 레이트 브레이킹을 남발하면서 타이어를 마모시키면 필요 이상의 빠른 핏스탑을 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한 시간 반 동안의 타이어 관리에 많은 변수를 줄 수 있는 구간이 바로 A 지역입니다.
이어지는 무난한 가속 구간인 turn 3을 지나며 계속 가속해 다시 스피드를 끌어올리는데, 평면도에선 보이지 않지만 이 구간이 약간 언덕을 오르는 구간이라 머신의 파워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 다만, 스파의 오루즈처럼 긴 구간은으로 이어지지는 않기에 큰 변수는 아니겠네요. ) 300 km/h까지 오른 속도는 turn 4에 접어들면 turn 1의 축소판처럼 110 km/h까지 급감속을 해야 합니다. 이전 레이아웃에는 존재하지 않는 turn 5가 추가되면서 turn 4-5는 turn 1-2와 완전히 같은 구도가 되었는데요... 이론상 추월이 좀 더 쉬워질 거라는 예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turn 5는 사키르에서 가장 많은 G포스를 받는 코너 중 하나로 예상되므로 어떻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다음 sector 2의 섬세한 코너들을 공략하느냐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sector 2 [ turn 6 ~ turn 20 ]
turn 6부터 turn 12까지의 B 지역은 2010 레이아웃에 새로 등장한 구간으로, 각각 성격이 다른 8 개의 코너가 연속 등장하므로... 머신의 다운포스, 브레이크 성능, 그리고 드라이버의 감각적인 코스 선택에 따라 많은 기록 차이가 발생할 구간입니다. 사실, 앞선 turn 1 ~ turn 5까지의 구간이 가속과 추월을 위한 구간이라면... 새로 추가된 B 지역의 일곱 개의 코너는 기록을 단축시키거나 차이를 벌이는 구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유조차 모드에서( 머신 중량이 상당히 무거운 초반 ) 이 지역의 공략이 더욱 까다로워지겠죠. 레이스 초반에는 B 지역까지 머신들의 치열한 몸싸움이 예상되고 정확한 레코드 라인을 밟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자리가 잡혀서 레코드 라인을 따라가기 시작한 이후에는 머신의 퍼포먼스와 드라이버의 역량에 따라 많은 기록 차이가 발생할 구간이 되리라고 예상해봅니다.
B 지역을 벗어나면서 만나는 turn 13-14-15는 이전 레이아웃에서보다 훨씬 느린 스피드로 지나가게 되므로, 역시 속도가 문제되기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머신을 컨트롤 하느냐가 중요해진 코너들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turn 16과 turn 17-18은 다시 작은 추월 포인트를 제공합니다. ( 앞서 긴 직선 주로가 많다고 했는데, 이는 결국 급감속 포인트 = 추월 포인트가 된다는 뜻이죠. ) 다만, 앞서의 turn 1-2는 물론 turn 4-5보다도 낮은 속도로 진입하는 코너들이므로 상대적으로 많은 추월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turn 16 바로 앞이 내리막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브레이킹 타이밍과 타이어 관리까지 아차하는 순간의 실수가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turn 19까지는 다시 280km/h 이상 가속을 하지만 코너가 완만하므로 급감속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완만한 코너에서의 미세한 속도와 각도 차이는 이후 상당한 속도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요, 위 그림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세 번째로 주목할 지역 C, 그러니까 turn 19와 turn 20은... 고속 코너 공략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특히 turn 19에서는 오른쪽으로, turn 20으로 많은 G포스가 발생하는데, turn 20은 250km/h 이상으로 90도 가까이 오른쪽으로 선회 하면서 3.5G 이상의 G포스를 견뎌야 합니다. 위 그림에 turn 20 이후에 가장 넓은 그래블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sector 3 [ turn 21 ~ turn 23 ]
마지막 세 개의 코너는 나름 무난한(?) 가속 구간과 고속 코너들입니다. turn 21에서 120 km/h까지 떨어졌던 스피드를 300 km/h 이상 끌어올려야 하고, turn 22에 접어들기 전에 다시 130 km/h 밑으로 속도를 떨어뜨리는 데에 성공하면, 마지막 우회전 가속 코너인 turn 23을 지나 가장 긴 직선주로에서 충분한 속도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단, turn 21을 탈출할 때 충분히 가속을 하지 못하거나 turn 22-23에서 정확한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면, 스타트-피니시 라인을 지나 turn 1을 만나기 전에 뒤따라오는 머신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겠죠.
또한, turn 22-23은 turn 1-2, turn 3-4와 더불어 중요한 추월 포인트 중 한 곳인데요... turn 21에서 turn 22까지의 직선 가속 구간이 길기 때문에 turn 3-4보다 추월 성공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특히 이 구간에서 추월을 당하고 포지션을 놓친다면 이후의 긴 홈 스트레이트의 가속에서 손해를 보게되므로 여기서만큼은 추월 당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겠죠.
sector 3은 그다지 길게 언급할 것이 많지 않은 간단한 가속 구간 두 개와 코너 두 개만 공략하면 되는만큼 ( turn 22-23은 사실상 하나의 코너 공략으로 봐서 ) 실제로도 구간 랩 타임 22~23 초 정도면 sector 3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 sector 1, 2는 각각 30 초, 60 초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물론, 구간 자체는 간단하지만 앞서 sector 2의 마지막 두 코너( turn 19, 20 )를 포함한 다선 개의 turn은 전통적으로 사키르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코너들이라고 알려져 있으므로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0 시즌 사키르에서 가장 큰 변수는 역시 B 지역에 새로 추가된 여덟 개의 코너 공략과 재급유 금지의 영향으로 더욱 중요해진 타이어 관리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변수는 모래 바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중동이라도 거의 실내 경기장 같이 깔끔했던 아부다비의 경우와 정 반대로, 사키르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말 그대로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써킷에는 많은 모래 바람이 불고 곳곳에 모래 먼지가 쌓여갑니다. 스타트 때는 더트 사이드에 위치한 드라이버가 훨씬 심하게 불리하기도 한 것도 변수라고 할 수 있고,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모래 먼지가 타이어에 들러붙으면서 여러 가지 변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올 시즌 사키르의 승자는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지금까지 올 시즌 레이아웃이 크게 변경된 사키르에 대해서 간단하게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이전 바레인 GP의 온보드 영상이나( F1.com에서도 현재 2009 시즌 트룰리의 온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유튜브 등의 영상을 통해 사키르를 눈에 익혀 두시는 것도 좋겠지만, 작년 영상은 B 지역의 변경 사항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아쉽네요. 다행히 아래 첨부한 마크 웨버가 레드불 시뮬레이터로 올 시즌의 사키르를 소개하는 영상이 아주 잘 되어 있으니, 바레인 GP를 보시기 전에 미리 예습(?) 해 두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