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군이 뽑는 2007년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자... ( 국내 개봉은 2007년이지만, 일본에서 제작 상영된 것은 2006년입니다. ) 지금까지 감상했던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고 주저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걸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의 호소다마모루( 細田守 ) 감독이 3년만의 신작 "썸머워즈( サマーウォーズ )"를 발표했습니다.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가 영상, 음악은 물론 영화의 내용과 자잘한 요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는 초걸작이었고, 다양한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3년만의 신작 '썸머워즈( サマーウォーズ )' 역시 전작의 스탭들이 다수 참여했고, (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캐릭터 디자이너인 사다모토요시유키( 貞本義行 )입니다만... )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전반적인 연출 역시 전작의 그늘 아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실 점! '시달소'의 느낌만을 떠올리며 지금 극장을 찾는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실망하고 '돈 아깝다'/'어이 없다'는 푸념과 함께 극장을 나설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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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정서(?)가 한가득
일본 드라마나 극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심하게 신파적이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껏 본 영화 중 최악의 영화 중 하나였던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경우처럼 너무나 전형적인 설정과 전개들이 반복되면서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하지요. 심한 경우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어이 없는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본 드라마나 극영화 중 상당수는 그런 정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좋아서 극장을 찾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어떻게보면 신파적이어서 문제라는 몹쓸 한국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썸머워즈'에도 그런 일본 드라마의 정서가 가득합니다. 별 볼 일 없는 남주인공 앞에 갑자기 나타난 퀸카 여주인공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극적인 이야기가 너무나 당연하게 계속되고, 예상 못 할 구석이 별로 없는 뻔한 전개...( 반전마저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 게다가... 주요 등장 인물이 사실은 다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고, 더 중요한... 노력하면 된다라든가 너라면 할 수 있다는 신파적인 대사들을 관객에 세뇌시키는 것까지... 영화 중반 쯤 되면... 절로 '아~ 너무하다~'는 야유 섞인 푸념이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전작에서도 이와 비슷한 신파적인 정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비록 무난하고 차분한 이야기와 많지 않은 단순한(?) 사건들... 서정적인 영상과 음악 덕분에 전체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뿐... 치아키와 마코토의 연애담과 이별 이야기는 다분히 신파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썸머워즈에서의 신파적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걸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죠. 썸머워즈의 전체적인 구성은 많은 등장인물들과 가상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소화하기엔 너무 허술하고... 주인공들도 전작에 비해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많이 부족합니다. 결국...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일본 드라마 정서'의 '신파적'인 요소가 썸머워즈의 감상에는 방해가 되는 쪽이었다는 느낌입니다.
썸머워즈에는 이런 신파적인 요소들 외에도... 다분히 일본스러운 요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상 공간 OZ에 대한 묘사와 아바타의 개념도 일본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고... 세계 어린이 세계인의 손에 쥐어진 NDS 역시 일본 아니메다운 묘사입니다. ( 물론... 현실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은 묘사지요... '-' ) 이야기 종반 스토리의 핵심 요소가 되는 화투 게임인 코이코이 역시 일본 내수용 설정이란 느낌이고, ( 고스톱과는 다소 규칙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번역가는 철저히 고스톱으로 번역했더군요 ^^ ) 전국시대 다케다 가문의 장수의 후예로 설정된 집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가... 뒤에는 싸움의 전술로 부활하기도 하고, 각 사람들의 동기 부여에 일조한다는 점도 꽤나 일본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신파적인 이야기의 전개나 여러 가지 일본다운 소재들을 통해 '일본적인 정서를 한가득 담은'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애니메이션 제목인 '썸머워즈'부터 여주인공 '나츠키(夏希)'의 전쟁이라는 중의적인 요소도 있으니까요.
호소다마모루 감독다운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기억하고 좋아하던 분들이라면... 썸머워즈는 느낌이 영 다르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케로군이 보기에도 두 영화는 캐릭터 디자인( 같은 캐릭터 디자이너이므로 )이라든가 전체적인 연출이나 색감( 역시 같은 감독, 비슷한 스탭의 영향일까요? )이라는 점을 빼면... 상당한 이질감이 드는 '다른 작품'입니다. 또...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Sci-Fi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소녀적인 연애담이 이야기의 주축이었다면... 이번 썸머워즈는 다분히 소년 만화의 전개와 설정을 가진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호소다마모루 감독이 어떤 배경과 전력을 가진 감독인지를 알고나면... 오히려 썸머워즈의 스타일이 '호소다마모루답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소다마모루 감독은 1967년생으로 1999년에야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를 했는데요, 그의 감독 데뷔작은 저연령 소년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의 극장판인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디지몬 어드벤처의 극장판인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게임" 을 연출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연출하기 1년 전... 최근 소년 만화의 대표작인 원피스의 여섯 번째 극장판의 연출을 맡아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기도 했지요.
이쯤되면 썸머워즈에서... '조금 무리하다' 싶은 몇 가지 장면들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절대 질 수 없는 포기하지 않고 '싸움'에 임하는 주인공과 가족들의 이미지는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소년 만화 속의 캐릭터입니다. 가상 공간 속의 강자이며 무리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킹 카즈마의 캐릭터가 그렇고,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열혈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다케다 가문의 이야기가 또 그렇고... 마찬가지로 나츠키 아바타의 코이코이(!) 승부에 "세계의 많은 아바타들이 힘을 모아준다"는 설정까지... 사람에 따라서는 감동이 아니라 비웃음을 살 수도 있는 소년 만화의 설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리고, 이런 설정들이 '소년 만화의 애니메이션'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호소다 감독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쉽습니다
위의 두 가지 관점... '일본 드라마에서 종종 보이는 신파적인 정서'와 '일본 소년 만화의 열혈 정서'가 거슬리지 않고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번 작품 '썸머워즈'는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재미있는 시납시스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열광했던 케로군에게는 몇 가지 면에서 몹시 아쉬운 작품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케로군이 생각하는 썸머워즈의 아쉬운 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인공 성우들의 미스 캐스팅. 그나마 남자 주인공 켄지는 적당할 수도 있지만... 여주인공 나츠키의 성우는 너무 흡입력이 없습니다. 존재감 떨어지는 연기 덕분에 나츠키가 싸움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장면에서조차 전혀 흥분이 되지 않고, 나츠키와 켄지의 소년 만화다운 러브 라인이 그려지는 막판에도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미스 캐스팅이거나 연출/연기 지도를 잘못한 것이겠죠.
2.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제가는 케로군이 싱글 CD를 따로 구입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고... 이야기의 흐름에 맞는 영화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잘 유지해주지만... 썸머워즈의 음악은 영상과 따로 노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특히 강렬한 액션 씬의 음악은 그다지 강렬하다는 느낌이 없고, 마지막 엔딩 씬의 연출은 시달소와 비슷한데... 주제가의 느낌은 완전한 이질감을 선사합니다. 갑자기 이건 무슨 음악?
3. 어수선하다. 썸머워즈엔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만... 그 어느 캐릭터에도 충분한 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시달소의 경우 단 세 명의 캐릭터 묘사에 대부분의 런닝 타임이 투자되었지만... 썸머워즈에는 몇 배나 많은 캐릭터들이 비슷한 런닝 타임을 쪼개가진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 그나마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가 나쁜 편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만... ) 이야기의 구성도 캐릭터만큼이나 어수선해서... 이 얘기 저 얘기들이 다소 난잡하게 흩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4. 연출의 매너리즘? 혹은 한계?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호소다마모루 감독은 과연 전작 연출의 수준에서 발전하지 않고 그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 누가 보더라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색깔에 많이 의존한 듯한 결과물이 나와버렸습니다. 작가색이 분명하다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영 딴 판의 이야기에 비슷한 색깔을 씌우려다가 실패한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큽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아티스트의 작품이 계속 소개되면 그 중에 잘된 작품이 있고 조금 모자르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연기나 연주, 연출이란 것의 레벨이 부침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이번 작품 '썸머워즈'가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호소다마모루 감독이나 스탭들의 모든 것을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후속작의 아쉬운 모습들을 확인하는 가운데, 전작이었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었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썸머워즈'는 같은 호소다마모루 감독의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은 점에서 비교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케로군의 평가는 전작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것이었죠.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는... '일본 극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신파적인 정서'와 '소년 만화적인 요소들'에 대한 면역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로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으나 영화 자체를 높게 평가하기는 어렵고... 블루레이라도 나오면 구입해 줄 정도...의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점수로 평가해 본다면 10점 만점에 6점 정도로... '범작'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람하시거나 이후에 미디어를 구입하실 분들에게 참고가 된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