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모터스포츠에서 엔진의 힘, 타이어의 그립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로 공기 역학( Aerodynamics ) 부분입니다. F1에서 2009년 초 최대의 화두였던 이른바 '디퓨저' 논란 역시 공기 역학의 얘기였지요.
그런데, 애시당초 역학( dynamics ) 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에... 그 역학 중에서도 특히 골치 아픈 게 유체 역학의 일부인 공기 역학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케로군도 능력이 안 되거니와...( 대학 때 늘 펑크를 내던 역학... oTL )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혹은 모터스포츠 입문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최대한 단순화해서 쉬운 부분으로 딱 두 가지만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물론, 필수적인 두가지 요소만 단편적으로 이해한다면 이해불가의 영역까지는 아니니 과도한 걱정은 마시고 케로군의 설명에 귀를( 눈을? )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 F1/모터스포츠 입문 ] 6편 - 공기 역학( Aerodynamics )
( 공기 역학 설명을 위해 F1 머신 중에서도 페라리 F60의 아웃라인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
모터스포츠를 언급하기 전에 모든 운동체가 중요하게 여길만한 공기역학 요소는... '얼마만큼 공기 저항을 줄일 것인가'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공기 저항만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서... 유선형을 비롯한 매끄러운 바디 디자인과 진행 방향 기준의 단면적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에서의 공기 역학은 좀 더 복잡한 요소들이 가미됩니다.
모터스포츠의 공기 역학에서 가장 먼저 언급할만한 주제는 "다운포스( Downforce )"입니다. 다운포스란 말 그대로 머신이 고속으로 주행할 때 차량의 아랫쪽( 지면 쪽 )으로 가해지는 힘을 가리키며, 비행기의 날개가 받는 양력( 지면 반대쪽으로 작용하여 물체를 뜨게 만드는 힘 )의 반대 개념입니다. F1과 같은 오픈 휠 포뮬러 머신의 경우 비행기의 날개와 반대의 힘을 받도록 앞뒤로 날개를 달고 그 영향으로 차체가 보다 지면에 가깝게 달라붙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운포스의 가장 큰 효과는 F1/모터스포츠 입문 4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타이어가 지면과 닿는 면적을 넓혀 그립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가속과 감속이 빨라지고 스티어링이 쉬워지며, 결과적으로 차량의 조종성이 향상되게 되는 것이죠. 최근 F1 논란이 되었던 디퓨저의 문제도 결국 상대적으로 많은 다운포스를 만들어서 그립을 높이는 데 있었고, 페라리의 키미가 계속 언급하던 '우리 머신은 그립이 부족하다'는 것도 같은 원리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다운포스의 원리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행기의 날개가 양력을 받는 것과 반대'의 원리입니다. ( 쉽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비행기의 날개와 거꾸로 날개를 단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 차량이 고속 주행을 하면서 다운포스에 의해 양력과 반대로 지면 쪽으로 힘을 받게 되면... 지면과 접촉하는 타이어의 면적이 넓어지고 그립은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F1과 같은 오픈휠 머신은 앞바퀴 쪽의 경우 프론트윙, 뒷바퀴 쪽의 경우 리어윙을 통해 다운포스를 생성하고, 상용차 형태의 차량은 보통 리어 스포일러와 바디 디자인과 스커트의 장착 등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리어 스포일러의 원래 목적은 차량 뒤쪽의 와류를 없애 차량 조종성을 향상 시키는 데 있습니다. ) 위의 그림에서 설명하는 것이 오픈휠 머신의 다운포스입니다. A에서 보여지는 것은 앞바퀴 앞부분에 달린 프론트윙으로 앞바퀴의 다운포스를 증가시키는 것이고, B는 리어윙과 디퓨저의 효과에 의존해서 뒷바퀴의 다운포스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다운포스의 원리를 응용해서, 극단적인 공기 역학의 효과를 노른 것이 '그라운드 이펙트( ground effect )'입니다. 그라운드 이펙트는 머신의 바닥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극단적인 다운포스를 생성시키는 것으로 그라운드 이펙트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엄청난 그립과 속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로터스가 F1에 처음으로 그라운드 이펙트를 도입했을 때는 비교 불가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 이펙트는 그 효과가 순간적으로 상실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효과가 순간적으로 상실될 경우 그립을 급격하게 잃고 차량이 고속 슬립하면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F1에서는 금지되었습니다.
모터스포츠에서 다운포스 못지 않게 자주 언급되는 공기 역학의 효과는 "슬립스트림( Slipstream )"입니다. 슬립스트림이란 고속으로 주행하는 한 머신의 뒤에 다른 머신이 따라 붙었을 때, 순간적으로 뒤에 따르는 머신이 기본적인 머신의 성능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효과를 말합니다.
슬립스트림의 원리는 위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빨간색 차량이 화살표 방향으로 고속 진행하게 되면 A로 표시된 차량의 앞부분은 급격하게 기압이 상승하고 반대로 B로 표시된 차량의 뒷부분에는 급격하게 기압이 떨어지게 됩니다. ( 순간적인 진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이 때, B의 위치로 바싹 붙어 접근하는 파란색 차량이 있다면, 차량 앞부분의 기압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효과와 진공 상태에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효과에 의해 앞으로 당겨지는 효과가 겹쳐져서 순간적으로 진행 방향으로 빨려들어가게 되고, 이를 슬립스트림이라고 부릅니다.
일정 속도 이상의 모터스포츠에서는 상당수의 추월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슬립스트림을 이용하고 있으며, 추월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슬립스트림 효과를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엔진에 부담을 덜주고 연료를 아낄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이 몸에 익혀둘 필요가 있는 공기 역학적인 효과입니다.
슬립스트림을 이용한 추월은 아래 그림처럼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위 그림은 빨간색 머신이 회색 머신을 뒤쫓는 경우를 나타낸 것입니다. )
1.의 위치에서는 회색 머신과 빨간색 머신의 간격이 벌어져 있으므로 슬립스트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게 되면 뒤따라 오는 머신의 경우 공기 저항 감소와 함께 앞으로 빨려드는 슬립스트림이 발생하고, 2.에서 3.의 위치로 진행하면서 급격하게 머신 사이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4. 위치처럼 일정 순간만큼 머신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뒤따르는 빨간색 머신의 속도가 기본적인 머신 성능 이상을 내게 되었을 때, 뒤따르던 빨간색 머신은 주행라인을 바꿔 옆으로 빠지면서 추월을 시작합니다. 타이밍을 맞춰서 슬립스트림을 제대로 이용했다면, 5. 위치에서 머신이 옆으로 충분히 바질 때 쯤 빨간색 머신은 회색 머신보다 눈에 띄게 빠른 속도를 갖게 되고, 이어지는 평행 주행에서 보다 빠른 가속을 하고 있는 빨간색 머신이 6.에서 7.의 위치로 이어지면서 회색 머신을 앞지르게 됩니다.
에어로다이나믹스의 정점에 달해있는 F1 레이스의 경우 직선주로에서의 추월은 대부분 이 슬립스트림을 이용하므로 앞으로 중계를 보시면서 눈여겨보시면 뒤에서 따르던 차량이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면서 옆으로 빠져나와 추월하는 모습을 자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런 슬립스트림을 활용해서 전회에서 언급했던 코너에서의 추월의 원리와 접목시키면 보다 깔끔하고 멋있는 추월의 장면을 연출하게 됩니다.
2009년 F1 규정 변화는... 공기 역학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결과 이런 슬립스트림을 이용하려고 따라붙는 차량이 제대로 그 효과를 보지 못하도록 리어윙 쪽을 개량하여 자신의 다운포스만 향상시키고, 리어윙 뒷쪽에는 차량 조종성을 떨어뜨리는 와류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것을 금지시킨 것이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다운포스를 극대화시키는 더블 덱 디퓨저의 등장으로 원하던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공기 역학적인 효과가 케로군이 생각하기에 모터스포츠 입문자 수준에서 알아둘만한 요소들인 것 같습니다. 케로군이 이번 회에 설명한 정도만 파악하더라도 이번 주말 샤키르의 바레인 GP를 보다 재밌게 관람하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이버들이 얼마만큼 이런 공기 역학적 효과에 영향을 받고, 레이스의 결과가 달라지는지...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