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모터스포츠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하는 건 아마도 짜릿한 추월의 순간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추월을 꼽지만, 사실 실제 레이스에서... 특히 F1과 같은 정예 드라이버들의 레이스에서는 그리 쉽게 목격할 수는 없습니다. 덕분에 단 한 번의 추월을 보기 위해 몇 십 분을 꾸준히 기다리기도 하지요.
이런 이유로 2007년 초 FIA는 OWG( Overtaking Working Group )라는 이름의 TFT를 구성해서, 좀 더 추월이 수월해지도록 여러 가지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 2009 시즌의 F1 규정은 크게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F1의 추월 문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는 문제라서 결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일단 모터스포츠에 입문 하는 분들이 가장 기본적인 추월을 이해할 수 있도록 코너의 공략과 코너에서의 추월의 기초적인 원리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 F1/모터스포츠 입문 ] 5편 - 코너의 공략과 추월
누구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추월의 상황은 직선 주로에서 앞서 가는 차량보다 뒤에 가는 차량이 일정 수준 이상 빠른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진로의 방해만 없다면 뒤에 가는 차량은 손쉽게 앞 차량을 추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레이스는 차량을 같은 규격으로 제한하거나, 아예 동일 차종, 혹은 동일 엔진을 사용해서 성능을 비슷하게 맞추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F1에서 이런 추월을 본다면... 앞선 차량의 구동 계통에 문제가 있거나, 우천 시나, 비가 갰을 때 타이어 선택을 잘못 했다거나, 아니면 타이어의 마모 상태와 탑재 연료량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정도겠네요.
'실력으로' 만들어지는 추월은 대부분 직선 주로보다는 '코너' 전후에 이뤄집니다. 덕분에 케로군은 코너의 공략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모터스포츠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가장 일반적인 코너의 공략을 설명하면서 일반적인 추월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코너 공략의 기본 중 기본은 아래 그림과 같은 "out-in-out"입니다.
'out-in-out'은 코너 진입 시 가능한 한 코너에서 먼 쪽( out )으로 접근하고, 스티어링을 하면서 클리핑 포인트에서 코너의 가장 안 쪽( in )을 통과, 코너를 지나면 다시 코너에서 가장 먼 쪽( out )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은 'out-in-out'의 원리에 충실하게 코너를 공략한다면, 코너 공략 중 가장 속도가 낮게 떨어지는 클리핑 포인트 부근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속도를 유지, 결과적으로 코너 이탈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코스에서 레코드 라인은 대부분 'out-in-out'에 충실하게 그려지게 됩니다. 'out-in-out'에 의한 코너 공략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위치를 지난 차량은 코너에 접근하면서 일정 시점부터 가속을 중단하고 브레이킹을 시작합니다. [2] 부근에서 코너 공략이 시작됩니다. 코너 종류와 상황에 따라 브레이킹을 계속합니다. 오버 / 언더 스티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스티어링을 계속하면서 [3] >> [4]로 클리핑 포인트로 접근합니다. 이 때 브레이킹을 계속하거나 쓰로틀을 적절하게 열어줍니다. ( 앞으로 '악셀레이터를 밟는다'라는 표현보다 '쓰로틀을 연다'라는 표현에 익숙해지시면 좋습니다. ) [4]의 클리핑 포인트를 지나고 [5]로 진행하면서 서서히 쓰로틀을 더 열면서 스티어링을 풀어줍니다. [5]에서 [6]으로 코너를 탈출하는 과정에서는 적절한 포인트에서 쓰로틀을 완전 개방합니다. ( 일반인이 익숙한 용어로는 '악셀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는 얘깁니다. ) 오버 / 언더 스티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6] 지점에서 스티어링 휠은 중앙으로 돌아옵니다.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 분석을 한다면 대부분의 코스에서 가장 빠른 레코드 라인에 가까운 주행 라인을 어렵지 않게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능이 비슷한 차량들이 모두 같은 레코드 라인을 따라간다면... 도대체 추월은 어떻게? 라는 궁금증이 생기시나요? 처음 모터스포츠 이론을 읽으시면서 그런 궁금증이 생기신다면 모터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분이십니다. ^^; F1을 포함한 실제 레이스에서 차량이 경합하면서 주행할 때에는 'out-in-out'을 따르지 않고 주행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때, 많이 사용되는 코너 공략법이 바로 "in-in-out"입니다.
'in-in-out'은 코너 진입 시 코너에 가까운 쪽( in )으로 접근하고, 스티어링을 하면서 좀 더 깊은 클리핑 포인트에서 코너의 가장 안 쪽( in )을 통과, 코너를 지나면 다시 코너에서 가장 먼 쪽( out )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in-in-out'은 'out-in-out'에 비해 클리핑 포인트에서의 속도도 더 느리고, 코너 탈출 속도도 더 느리기 때문에 다른 차량과의 경합이 없다면 결코 택해서는 안 되는 라인이지만, 추월을 노리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래 그림으로 앞선 차량이 'out-in-out' 라인을 택했을 때, 뒤에 가는 차량이 'in-in-out' 라인을 이용해 추월하는 경우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위치에서 회색 차량이 확실히 붉은 차량을 앞서 있습니다. [2] 부근에서 앞선 회색 차량은 브레이킹을 시작했지만, 붉은 차량은 좀 더 늦게 브레이킹을 시작합니다. [3] 부근에서 회색 차량이 스티어링을 시작할 무렵, 이미 붉은 차량이 코너를 선점하고 앞서 나갑니다. [4] 위치를 지나며 회색 차량은 코너를 원하는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앞선 붉은 차량 때문에 주춤 거리는 동안 붉은 차량은 원하는대로 'in-in-out' 대로 코너 공략을 계속합니다. [5] 부근에서 붉은 차량은 원하는대로 먼저 가속을 시작하지만 뒤쳐진 회색 차량은 붉은 차량에 가로막혀 충분히 쓰로틀을 개방할 수 없습니다. [6] 위치에서 붉은 차량은 회색 차량을 확실히 추월하고 코너를 탈출합니다.
위의 설명만으로는 회색 차량이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 자신의 레코드 라인은 잘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코드 라인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붉은 차량이 무리한 늦은 브레이킹으로 정확한 'in-in-out' 라인을 지키지 못하거나 추월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다면 추월은 이뤄지지 않거나, 추월 후 재추월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추월 후 비교적 불안정한 코너 탈출의 순간은 라인 선택과 머신의 조종에 따라 바로 재추월이 잘 일어나는 타이밍으로 아주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곤 하죠.
어쨌든, 이와 같은 기본적인 추월 방법은 코너 공략에 여러 가지 변수를 가져 옵니다. 앞선 차량은 뒤에 오는 차량이 코너를 앞두고 안쪽으로 붙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이 안쪽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이런 움직임을 파악한 뒤쪽 차량이 다시 바깥쪽의 레코드 라인을 공략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블로킹만을 위해 차량을 지그재그로 몰면서 뒷 차량의 운행을 계속 방해하는 것은 매너가 아닐 뿐 아니라 많은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규칙을 통해 일정하게 제한,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리전은 코너의 공략 하나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요.
재밌는 것은 앞선 두 차량이 코너에서 위와 갈은 신경전을 벌이면서 레코드 라인을 벗어나 기록이 나빠질 때, 뒤에서 좇아오는 차량들은 앞선 차량을 따라붙을 기회가 생깁니다. 반대로 뒤쪽 차량들이 여러 코너를 거치며 위와 같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면, 앞선 차량은 부담 없이 레코드 라인을 밟으면서 간격을 벌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코너의 공략은, 가장 기본적인 코너에 대한 기초적인 공략일 뿐... 실제 레이스에서는 굉장히 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보통 한 코스에 적게는 10 개에서 많게는 30 개 이상의 다른 구조의 코너가 존재하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공략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가장 기본적인 위의 두 가지 공략과 추월의 원리... 그리고, 거기서 추론할 수 있는 드라이버의 심리를 가지고 따져본다면... 레이스 중 드라이버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코너를 어떻게 공략하는지가 좀 더 이해될 수도 있고, 이런 이해가 곁들여진다면... 모터스포츠가 더 재밌어질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이번 일요일 오후 다섯 시, MBC ESPN의 F1 2009 시즌 개막전 호주 GP 지연 중계를 보신다면... 케로군이 설명한 것 처럼 코너에서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