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방송과 언론 매체, 서적들이 사회 불안과 범죄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모든 미디어에 대해 무차별적인 검열을 자행하는 세력과, 그들에 대항해 도서를 보호하고 도서 열람의 자유를 지키려는 세력이 대립하는...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또는 보호하기 위해 중화기로 무장하고 대립하고, 각각의 무장 세력의 대치와 충돌이 일상화되어버린 가상 세계...
이런 다소 황당무계한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하는 소설이 바로 오늘 소개할 아리카와히로(有川浩) 님의 소설 '도서관전쟁(図書館戦争)'입니다.
일본풍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목이나, 역시 제목에 들어있는 '전쟁'이라는 단어, 그리고, 무장 조직과 전투라는 다소 밀리터리적인 소재까지... 꽤나 투박하고 전문적일 것 같은 선입관을 갖게 만드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엉뚱하게도 '러브 코메디'입니다. ( 위의 표지 일러스트 속에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을지도... )
더군다나, 홍보하는 띠지의 문구부터 '라이트 노벨'을 전면에 내세우는만큼, 읽기 쉽고, 이야기도 가볍고(?), 단어와 문장이 길거나 어려운 것이 없어서... 책의 두께에 비해서는 상당히 읽기 쉬운 소설입니다. 2006년 출간된 '도서관전쟁'은 일본에서도 나름 인기를 얻어서, 이후 '도서관전쟁 시리즈'가 되어 2007년까지 세 권의 책이 더 등장하게 됩니다. 도서관내란(図書館内乱), 도서관위기(図書館危機), 도서관혁명(図書館革命)등이 같은 시리즈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밀리터리적인 가상 역사를 소재로, 러브 코메디를 펼쳐가면서도... 이 소설이 담아내고 있는 주제와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점에서... 케로군은 '도서관전쟁'의 가치를 높이사고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스포일러 혹은 네타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소 들어있습니다. )
표현의 자유
'도서관전쟁'의 주인공인 '카사하라이쿠'와 주변 인물들이 지키려고 하는 '도서관법'이 상징하는 것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부당한 검열...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고 얘기한다면, 아이들은,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들은... 책을 포함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언제든 폭력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으므로... 현명하신 어르신들과 검열 기관이 미리 확인하고, 제한된 미디어, 도서만을 일반인이 접근하게 해 준다는 지극히 계몽주의적이고 권위적인 발상...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법/제도의 모순...
이런 부당한 검열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바로 '도서관전쟁'입니다. '도서관법'이 제시한 도서 열람의 자유 등이 생각 있는 독자에게 깊이 와닿는 이유는...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바로 이와 같은 검열의 시도와 갈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검열의 ( 모순된 ) 이론에 설득되어 얼마나 많은 검열이 자행되고 있는지... 얼마나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지...
그래서, 부당한 검열에 대항하는 '도서관법'과 '도서특수부대'의 모습은 억압당하던 표현의 자유... 억압당하던 모든 권리에 고민하던 이들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심각한 소재를... 머리 아프게 만드는 이론과 설교가 아니라... 귀여운 러브 코메디와 아기자기한 액션으로 풀어내는 소설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됩니다...
이런 재주를 가진 소설가가 있었다니... ㅎㅎ
정의와 정론(正論)
'도서관전쟁'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중에는 '정의의 사도'라든가 '정론'에 대한... 과도하게 냉정한 현실적인 언급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라든가... '정론은 옳지만 정론을 무기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든가... 정의롭게 살고, 정론을 펼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온갖 벽에 부딪히고, 변형되고, 좌절해 버리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주인공 '이쿠'나, 교관 '도조'가 '정의와 정론'에 대해 느끼고 변해가는( 혹은 성장해가는 ) 과정은 평범한 사람들도 종종 경험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그리고, 보통 현실에선... 정의와 정론이 매몰되어버리지만... 하나의 판타지로서, 소설 속에선 어떤 식으로든 정의와 정론이 매몰되어버리지는 않기에, ( 승리한다든가... 하는 표현은 이 소설의 관점에선 그닥 바람직해보이진 않습니다. ^^ ) 독자들은 희망을 발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종 많은 소설이나 문학, 영화 작품들에서... 정의를 쫓고 정론을 추구하다가 끝내 처절하게 실패하고 패배하는 ( 매우 현실적인... ) 모습을 그리거나, 너무나 인간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나, 혹은 정확히 반대편에서... 정의가 완벽하고 깔끔하게 승리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도서관전쟁'이 보여주는 판타지는... 온갖 시련을 겪고도 정의가 '생존'하는 수난사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정의'를 상징하는 '이쿠'와 '정론'을 상징하는 '테즈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 어느 정도까지 ) 끌고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보입니다. 결국은... '정론'은 이야기의 주류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지만... 말이죠...
아이들같은 마음
'도서관전쟁'의 주인공 '카사하라이쿠'가 대변하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나 정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비열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 혹은 청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가혹한 실제 상황 앞에서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 짓밟히고, 꿈이 좌절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대치시키던 소설은... 마치 밝게 끝나는 뮤지컬을 보듯 주인공이 간직해온 순수함과 꿈들에 희망을 안기면서 종결됨으로써, 역시 순수한 독자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고 기대를 충직시키는 정직한 결말에 도달합니다. 답답한 현실에 갈증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소설을 읽고나면, 독특한 소재, 재미있는 캐릭터, 그리고 시원시원한 이야기... 이거 애니메이션을 한 편 찍어도 되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계실만하고, 역시나 얼마 전에 Production I.G.에 의해 전 12화로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방영이 되었습니다. ( 도서관전쟁 애니메이션 홈피이지 바로 가기 )
결국은... 앞서 얘기한 어려운 얘기들( 소설에 비해 케로군의 칼럼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만 하고 있네요. ) 복잡한 이론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내러티브 앞에서 무의미해집니다. 소녀의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해서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는 없으니...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라이트 노벨이든, 그림책에 담긴 동화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애니메이션이든 소설이든... 그 어떤 이야기이든... 제일 중요한 가치는 '재미있는가?'라는 명제에 대한 답일 것이고, '도서관전쟁'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예'가 될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케로군이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도서관전쟁'만큼 균형잡힌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당히 읽기 편하고,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충분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고, 내러티브도 단단한 편이지만, 결말만큼은 독자의 마음을 심하게 무겁게 만들지 않고... 과도하게 닭살 돋게 만들지 않는 러브 코메디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밌고, 읽고 나면 남는 것도 없지 않은 소설... 케로군은 강력 추천 도서로서 별점이 10점 만점이라면 9점 이상을 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을 가지신 분은 꼭 한 번 구입해서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