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러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쿠이마사미 (奥井雅美)라는 가수가 없었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의 오늘은 어떻게 되었을까? ... 물론 그 한 사람 때문에 넓은 시장과 많은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활동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계가 흔들리고 좌지우지 될 리는 없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오쿠이마사미라는 가수가 없었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은 지금과 분명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정도는 충분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우도 아니고, 팝 가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록 일반 팝 활동이 왕성하지는 못했지만 ) 애니메이션 주제곡과 삽입곡만으로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쟝르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의 흥행작에서 주제곡을 불렀다는 것도 기억해 둘만한 점이죠. ( '특촬물'이나 '용자~~' 쟝르에서는 나름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 있습니다만 ) 그런 그녀의 스타일과 느낌을 가장 잘 담은 앨범이 바로 이 "마사미코부시 (マサミコブ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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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대신 리메이크
한 가수의 과거를 집대성한다거나, 자신의 스타일을 정리해서 음반을 내놓는다고 하면... 보통은 '베스트' 앨범의 형식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가수의 애창곡을 모아서 내놓는 '리메이크' 앨범이라고 한다면, 보통은 원곡의 분위기를 리메이크 하는 가수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분위기로 녹음하곤 하죠. 그런데, 이 "마사미코부시"라는 앨범을 '리메이크' 앨범으로 만들면서, 왠지 오쿠이마사미 님은 재해석이라든가 그런 작업을 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원곡의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리메이크 앨범입니다. 덕분에... 이거 어디 좋은 노래방에서 녹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구입 직후에 쓴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아주 널리 알려졌거나 그녀와 연관이 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원곡의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도' 딱히 누구의 흉내를 낸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 덕분에 다카하시요코 님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곡들은 느낌이 조금 이상합니다. )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그녀 자신이 이런 애니메이션 음악의 흐름에 충실하게 노래하는 가수였고, 또, 그녀의 스타일이 다시 다른 애니메이션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리메이크 아닌 리메이크 음반이 되었습니다. 원곡과 크게 다르지도 않으면서, '오쿠이마사미'라는 가수의 스타일로 분명 재해석되긴 된 것이니까요. 덕분에 열 두 개의 다른 애니메이션 주제곡, 삽입곡을 연달아 부르는 이 앨범은, 마치 하나의 튼튼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정규 앨범처럼 자연스레 곡들을 이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냥 손쉽게 편집만 해서 베스트를 내도 될 일이겠지만, 이런 식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 혹은 상술? ^^ ) 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가 없네요.
애니메이션의 역사 + 오쿠이마사미의 역사
앨범 '마사미코부시'의 수록곡들을 보면 전성기 혹은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전후의 곡들이 중심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 그 시기는 오쿠이마사미라는 가수의 전성기이기도 합니다. 2000년대가 되어서는 ( 물론 아직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 왠지 이런 곡들이 '향수'라는 단어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케로군 뿐일까요?
어쨌든, 첫 곡부터 '향수'에 어울리는 곡이 들어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수십년 동안 리메이크가 거듭된 곡이고, 최근에는 코다쿠미 씨의 노래도 유행했던, ( 한국에서는 아유미 씨가 불렀던 '-' 부타카께의 바로 그 곡... ) "큐티하니(キューティーハニー)"로부터 시작합니다. 실은... 이 한 곡만 들어도... 오쿠이마사미 님이 노래를 '가지고 놀 줄 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그 뒤의 곡들은 주로 90년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의 주제곡, 삽입곡 들인데.... 따지고 보면, 그 곡들이 실렸던 애니메이션의 주위에 오쿠이마사미 님도 함께 있었던... 말하자면 '함께 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구입했을 때의 글을 참고해 주세요. ^^ )
특히나, 하야시바라메구미라는 걸출한 성우( 이자 가수 )와의 친밀한 관계가 느껴지는 곡 배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쿠이마사미' 님과 '하야시바라메구미' 님의 듀엣은 슬레이어즈 시절의 듀엣 곡을 비롯해, 서로 이어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과 상호 게스트 출연, 당대의 최고 이슈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나눠서 부르는 등, 9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 보컬이자 애니메이션 계의 최고 스타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런 관계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미 90년대에 대한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후반부에 배치된 포스트 에바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동전함 나데시코'의 오프닝곡 "You Get to Burning" 저는 이 곡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얘기했죠... ^^ ) 원곡을 불렀던 마츠자와유미 씨도 훌륭한 애니메이션 전문 가수이긴 하지만, 왠지, 오쿠이마사미 님의 리메이크는 원곡의 가수를 울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 '-'
향수... 그렇지만 힘차게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케로군보다도 연상인 오쿠이마사미 님은 우리나라의 세는 나이로는 벌써 40줄에 들어섰고, 테이프가 우는 LD 녹화판 VHS 테잎을 한 장에 만 원 씩 주고 어렵게 구입해 보던 게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같은 값에( 물가를 비교하면 그렇죠 ) 일본에서 정품 DVD를 이틀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되었고, 애니메이션 관련 산업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큰 입지를 갖추게되었지만. (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많이 다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예전처럼 애정과 애착이 가는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만나기 어려워진 것 같네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케로군이 너무 늙어서 새로운 음악이나 애니메이션에 적응을 못한 것이거나... ( 그래도 난 SEED가 싫어요 ㅠ.ㅠ ) 아니면, 정말 90년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아니메'에는 무언가 있거나... 둘 중의 하나겠죠... 뭐, 물론 70년대 아니메에 열광하는 사람, 80년대 아니메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종류별로 다 있지만... 케로군은 확실히 90년대 아니메에 마음이 쏠립니다. 그런 사람이 저 말고도 여럿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그런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대변해 주는 노래들, 그리고, 그런 노래들과는 어떻게든 연관이 되는 가수 '오쿠이마사미' 님의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면... 아래와 같은 메인 이미지가... 왠지 행복했던 옛 기억을 추억하는 느낌을 주더군요...
그렇다고, 이 앨범의 노래들이, 오쿠이마사미 님의 노래들이... 멜란콜리 + 우울 계의 노래는 아닙니다. 언제나 힘차게... ( 언제나 '스레'풍? ) 언제나 밝고 자신있게... 무슨 광고 문구 같지만... 어쨌든 그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활력소가 될 것 같은 '강함'이 담겨있기 때문에 오쿠이마사미님의 노래라면 언제든 부담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옛 향수에 빠지면서도 힘이 솟는 묘한 체험... 이 앨범 속에 있습니다. ^^
전반적으로 이 앨범 '마사미코부시'는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도 90년대의 중심에 있었던 애니메이션의 팬으로 한정해야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일반인이 듣기에 거북하거나 싫증이 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얼마만큼 열광할지... 그다지...
이런 엄청난 음반을 평가한다는 게 무척 외람된 일이긴 하지만... 굳이 평가를 해 보자면...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에게는... 나름 가창력과 개성을 겸비한 가수의 음반이라는 점에서... 별 다섯 개 기준으로 네 개 정도... 애니메이션의 사전 지식... 특히 90년대 애니메이션 음악을 사랑한다면.... 필수 소장... 완전 소중 앨범으로... 만점이 얼마든 만점을 줘야 하는 앨범입니다. 이런 스타일 음악을 싫어하더라도 애니메이션 팬, 오타쿠 팬이라면... 공부를 위해서라도 사야 하는 겁니다. -_-
간만에 완전 소중 음반이 하나 생겨서 ... 저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일본 출장 가서 노래방에라도 가면... 다른 사람의 노래를 오쿠이마사미님이 부르는 마음으로... 오쿠이마사미님의 노래를 한 번 불러보고 싶네요... ^^;;; 8년 전에 싱글CD를 구입했던 "輪舞-revolution" 같은 노래가 좋긴 한데... 과연 가사를 제대로 읽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