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론소가 지난 이탈리아GP에 이어 싱가폴GP도 우승하면서 2연승을 기록했습니다. 두 그랑프리 연속으로 폴투윈을 거둔 알론소와 페라리는... 시즌 4승째를 올리면서 시즌 막판 확연한 상승세를 나타냈고, 드라이버 챔피언십 도전의 꿈은 이제 꿈이 아닌 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특히, 2008년 첫 싱가폴GP의 우승이 '크래시게이트' 때문에 빛이 바랬던 알론소에겐, 자력으로 이룬 이번 우승이 그 어느 우승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레드불의 베텔과 웨버는 각각 2위와 3위로 포디움의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면서... 드라이버 챔피언십 경쟁을 생각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선 2위 맥라렌과의 격차를 크게 벌이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습니다. 반면 버튼이 4위에 그치고 해밀튼이 리타이어한 맥라렌으로선, 비록 수세의 마리나베이에서 방어적인 성격으로 치른 그랑프리였지만 뼈아픈 결과를 얻게 되었네요.
그러면 아래 숨긴 글 속에서 적지 않은 이벤트가 함께했던 이번 싱가폴GP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Free Practice
이번 싱가폴GP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될 이슈는 닉 하이트펠트의 복귀가 아닌가 하네요. 지난해 BMW의 F1 철퇴 선언 후 메르세데스GP의 테스트 드라이버 자리로 1선에 물러서 있다가, 피렐리의 F1 진출을 위한 테스트 드라이버로 F1 복귀 가능성을 높이더니... 끝내 BMW 자우버의 델라로사와 자리를 바꿔 거의 11개월만에 F1에 복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BMW 자우버는 이름은 작년까지 퀵닉이 함께했던 그 팀의 이름 그대로지만, BMW 철퇴 후 많은 부분이 바뀌면서 C29는 물론 퀵닉에겐 전혀 새로운 머신임에 분명했기에... 과연 싱가폴GP에서 어느 정도 적응하는 모습을 보일지는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죠.
그런데, 프랙티스가 시작되기 전 HRT의 야마모토가 식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오랜만에 1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재규어에서 레드불로 넘어오는 초창기 2004 시즌부터 2006 시즌까지 F1에서 활약했던 크리스티안 클리엔이 HRT의 시트를 차지했는데... 임시라고는 하지만 반가운 장면이었네요. 또, 야마모토보다 공백이 좀 더 컸던 드라이버인지라 세나와의 비교를 통해 야마모토 등과의 드라이빙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었죠.
한편 싱가폴GP를 앞두고, '로터스 레이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던 로터스가... '팀 로터스'라는 이름을 내년부터 사용하기로 하면서 이슈가 되었는데... 전설적인 '팀 로터스'의 복귀 소식 또한 반가운 드라이버들의 복귀 이상으로 흐뭇한 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트 그랑프리와의 소송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맘편한 소식만은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시작된 프랙티스 세션은 낮에 내린 폭우가 변수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프랙티스 시작 전에 비가 그치긴 했지만, FP1이 시작된 시간에도 트랙 곳곳에 물이 잔뜩 고여있었죠. 물이 고여있지 않은 곳도 대부분 젖어있어 트랙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FP1의 초반 인터미디어트 타이어가 사용되다가 곧 드라이 타이어가 등장했는데... 슬릭 타이어로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간은 FP1 종료시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또 올 싱가폴GP를 앞두고 트랙의 40% 정도가 재포장된 관계로... 트랙이 마른 이후에도 여전히 미끄러운 트랙 상태는 머신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게 했죠.
이런 비와 재포장으로 좋지 않은 트랙 상황을 좀 더 지켜보려는 생각과 더불어 이전 이탈리아GP까지 챔피언십 경쟁자로 압축된 다섯 드라이버의 눈치작전까지 겹쳐지면서 FP1의 초반 세션은 굉장히 루즈하게 진행됐습니다.
덕분에 경쟁력이 확실히 떨어지는 버진의 티모 글록이 FP1 한동안 P1에 올라서 자리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슬릭 타이어를 장착한 다수의 드라이버는 세션 후반에야 트랙에 등장했고...
눈에 띄게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FP1의 기록은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처음 달리는' 마리나베이의 첫 세션에서 P2에 오른 슈미는 기분좋은 스타트를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몇 번의 시케인 숏컷, 스핀 등의 소소한 이벤트 외엔 사건이 없었던 FP1에 이어진 FP2에선 FP1보다 조금 더 큼지막한 이벤트(?)들이 펼쳐졌습니다. FP1보다 좋아진 트랙 상황 덕분에 머신들은 훨씬 빠른 스피드로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고, 소위 5강 드라이버들의 성적은 점점 향상되어가는 게 눈에 띄었고, 베텔과 알론소의 스피드가 분명하게 빨라보였죠. 그런 와중에 드디어 사건이 터졌습니다.
올 마리나베이에서 눈에 띄는 첫 사고는 악명 높은 턴 10 싱가폴슬링에서 벌어졌습니다. 높은 연석을 밟고 위 사진처럼 높게 튀어오른 수틸의 머신이 떨어지면서... 머신의 왼쪽 앞 서스펜션이 완전히 파손되었고, 수틸은 곧 FP2 세션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많은 드라이버들이 스핀하거나 코너 탈출구에서 리어가 밀리면서 방호벽을 스치긴 했지만, 방호벽과 관계 없이 순전히 연석의 영향만으로 머신이 완전히 파손되는 건 보기 힘든 장면이었죠... 물론, FP2의 볼거리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FP2 중후반 머신들이 옵션 타이어로 바꿔끼고 나와서 기록을 크게 단축시키던 타이밍,
알론소가 턴17에서 오버스티어와 함께 엔진이 멈추면서 트랙에 머신을 세웠는데...
마샬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외면(?)한 덕분에...
알론소가 직접 휠을 굴리면서 위험 지역 밖으로 머신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화면에 비춰졌습니다.
완전히 박자를 놓쳐 멈춰선 F10으로 달려온 마샬들이 결국 머신을 끌어냈지만,
인기 있는 관중석인 베이 그랜드스탠드에 앉은 관객들은 오랫동안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 같네요.
물론, 이런 마샬들의 박자를 놓친 행동은 위험한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한국GP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FP2에서 이벤트가 모두 지난 시점의 상위권엔, 베텔 - 웨버 - 버튼 - 알론소 - 해밀튼이 차례로 P5까지의 순위를 형성했는데... 예상되었던 레드불, 페라리, 맥라렌의 퍼포먼스가 그대로 드러난 가운데, 페라리의 마싸를 제치고 P6를 차지한 윌리암즈의 바리첼로 옹의 분전이 돋보였습니다.
토요일 이어진 FP3의 성적 역시 FP2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있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낮에 내린 비 때문에 트랙은 충분히 마르지 않은 상태였는데... 5강 드라이버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며 세션의 절반이 지나서야 트랙에 나온 가운데, 마지막 10분 옵션 타이어를 통해 대부분의 순위권 기록이 결정됐습니다. 우선 베텔이 다른 드라이버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빠른 스피드를 보여줬고, ( 팀메이트 웨버와도 1초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 알론소만이 유일하게 베텔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0.6초의 갭은 작지 않아보이더군요.
짧고 굵게 진행된 FP3의 톱텐은... 베텔 - 알론소 - 해밀튼 - 마싸 - 장미군 - 웨버 - 헐크군 - 쿠비차 - 수틸 - 부에미 순으로 결정되었는데... 베텔에 비해 느렸던 웨버, P3의 해밀튼에 비해 P13에 그친 버튼의 부진이 눈에 띄더군요. 싱가폴GP에서 다크호스로 예상되었던 쿠비차의 경우 생각만큼 강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웠고, FP1에서 눈부신 선전을 펼쳤던 슈미가 P15로 다소 부진했지만... 10위권 이후 중위권 몇 명의 드라이버들의 기록이 거의 의미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Q2에서의 접전이 예상되는 FP3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베텔이 폴포지션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 FP2, 3의 결과였으나... 역시 연습은 연습일 뿐이었죠.
- Qualifying
폴포지션과 출발 그리드가 절대적인 시가지 + 저속 써킷인 마리나베이에서, 퀄리파잉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덕분에 퀄리파잉 세션은 긴장감이 넘치며 시작되었고... 다수의 드라이버들이 Q1 세션 초반부터 일찌감치 트랙에 나왔습니다. 아웃랩의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죠. 5강 드라이버들을 포함해서 강팀 드라이버들도 비교적 빨리 트랙에 나와 랩타임을 기록해가는 가운데, 최근 Q1부터 페이스가 좋지 않았던 슈미가 초반 P3에 오르면서 비교적 좋은 스타트를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Q1 9분이 흐른 시점에서 갑자기 옐로우 플랙이 나부꼈는데...
화면에 마싸가 턴08 부근에서 머신을 세우고 걸어나오는 장면이 비춰지면서 곧 레드플랙이 선언되었습니다. ( 마싸의 문제는 이후 기어박스 문제로 리포팅되었습니다. ) 랩타임을 기록하지 못한 마싸는 최하위 그리드 출발이 결정되었고... 모두의 예상대로 추가적인 피해 없이 아홉 번째 새 엔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 최하위 그리드 출발이기 때문에 10 그리드 페널티가 의미가 없는 상황 ) 덕분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Q2 진출이 어려웠던 신생 3팀 여섯 명의 드라이버들과 함께, 마싸가 Q1 탈락자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Q1 후반부엔 일찌감치 P1의 기록을 냈던 베텔이 개러지를 떠나지 않은 가운데... 알론소가 베텔의 기록을 앞서면서 P1에 올라섰고, 알론소와 베텔의 뒤를 이어 웨버, 쿠비차, 헐크군, 버튼, 알게수아리, 해밀튼, 슈미, 수틸이 톱텐을 차지했습니다. Q1 탈락자들 중 신생 3팀의 경쟁에선 주말 내내 빨랐던 글록이 앞선 가운데, 코발라이넨, 디그라씨, 트룰리가 그 뒤를 이어 버진이 로터스를 조금 앞서는 양상을 보였고... 최하위팀 HRT에선 4년만에 돌아온 클리엔이 세나를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상대적으로 야마모토의 경쟁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고, 세나 역시 아직까지 F1 드라이버로는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 들기도 했습니다.
Q2에선 페트로프가 중반 턴05에서 방호벽에 접촉하면서 머신을 세운 것 외에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톱텐은 베텔, 알론소, 웨버, 해밀튼, 버튼, 장미군, 쿠비차, 바리옹, 슈미, 코바야시가 차지했는데... 소위 5강 드라이버가 P5까지를 차지한 외에... P8에서 P10의 성적으로 Q3에 진출한 바리옹, 슈미, 코바야시의 선전이 돋보였습니다. Q2에서 탈락자는 알게수아리, 헐크군, 페트로프, 부에미, 하이트펠트, 수틸, 리우찌가 차지했는데... 주말 내내 코바야시와 비슷한 속도를 내던 하이트펠트가 Q2에서 다소 부진했고, Q3 진출을 노리던 토로로쏘와 헐크군의 분전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것도 안타까워보였습니다. 포스인디아는 다시 한 번 저속 써킷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죠.
마지막 10분간의 Q3는 더더욱 타이트하게 진행됐습니다.
아웃랩과 인랩에 4분을 소모해야 하는 마리나베이이기 때문에,
최대한 짜내더라도 두 번의 트라이밖에 할 수 없었는데...
앞이 깨끗한 이른바 'clean zone'의 좋은 자리를 차지해서 트라이하기 위한 신경전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첫번째 트라이에서 알론소는 부족한 연습에서의 단점을 극복하고 1분 45초 390의 굉장히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고, 해밀튼과 웨버가 다소의 시간차를 두고 P2, P3를 차지한 가운데... 주말 내내 탁월하게 빨랐던 베텔은 첫 트라이에서 앞선 슈미의 트래픽에 걸리면서 첫 트라이 기록을 버려야했습니다.
긴장된 첫 트라이가 끝나자 모든 팀들이 정신 없이 두 번째 트라이를 준비했고, 레드불은 신속하게 머신을 정비하고 재빨리 머신들을 클린 존에 내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웨버는 끝내 Q2의 기록을 갱신하지 못했고, 방호벽을 스치듯 최대한의 스피드를 짜내던 베텔은 섹터 2에서 리어 휠이 방호벽과 접촉하면서... 머신이 파손되거나 스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간 손실을 보고 P2 기록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알론소가 이탈리아GP에 이어 두 그랑프리 연속 폴포지션을 차지하는 순간이었죠.
해밀튼과 버튼은 Q2에서의 기록을 크게 갱신하면서 나란히 3, 4그리드를 차지했는데, 상대적으로 맥라렌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었던 싱가폴GP에서 상당히 좋은 출발 그리드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6그리드를 차지한 바리첼로 옹이었습니다. 새로운 프론트윙과 디퓨저의 영향으로 머신 성능이 향상된 점도 있겠지만, 최근 몇 년의 윌리암즈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스피드를 보여준 드라이버가 있었냐 싶은 퍼포먼스로... 5강 드라이버 바로 뒷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갈네요. 메르세데스GP 역시 두 드라이버를 모두 Q3에 진출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던 반면... 르노는 페트로프가 Q2에서 실수로 탈락한 이후, 쿠비차 역시 Q3에서 8그리드를 차지하는데 그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싱가폴GP에서 기어박스 교체로 일찌감치 페널티를 받은 헐크군 외에 특별한 그리드 변화 없이 이어질 결승 레이스에서는... 알론소가 가장 유리한 1그리드, 베텔이 더티사이드인 2그리드에서 프론트로우를 차지, 클린사이드의 3그리드 해밀튼까지 스타트에서 경합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60%의 비예보가 베텔의 뜻대로 맞아떨어질지가 관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 Sunday Race
계속되었던 비 예보와 높은 습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싱가폴의 밤은 완전한 드라이 컨디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랙티스와 퀄리파잉 때처럼 트랙이 젖어있는 곳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변수가 적은... 그래서 다소 밋밋한 레이스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죠. ( 물론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 추월이 어려운 마리나베이이기 때문에 스타트의 중요성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는데, 더티사이드에서 출발하는 2그리드의 베텔이 올해는 자신감을 보였고... 경쟁하는 3그리드의 해밀튼이 자신들의 스타트에서의 장점을 통해 베텔 추월을 자신한만큼 스타트 장면에서 두 드라이버간의 자리싸움이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개의 빨간불이 꺼지고 긴장된 스타트가 시작되자 그 결과는...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해밀튼이 의외로 스타트가 늦은 반면 베텔의 스타트가 빨라... 오히려 베텔과 알론소의 배틀이 벌어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알론소는 베텔의 진로를 잘 블로킹해내면서 순위를 지켜냈고, 해밀튼 역시 버튼에게 자리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자신했던 스타트에서의 베텔 추월이 실패하면서 레이스가 처음부터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게 되었죠. 스타트 직후 순위는 폴포지션 알론소부터 5 그리드 웨버까지는 그대로였고, 쿠비차가 P6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첫 랩에서 장미군에게 다시 자리를 내준 가운데... 바리첼로의 스타트가 좋지 않아 P8까지 떨어진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 랩 동안에는 늘 그렇듯이(?) 이런 저런 접촉 사고들이 다수 발생했고, 첫 희생자는 포스인디아의 리우찌와 자우버의 하이트펠트였습니다. 하이트펠트는 프론트윙 손상으로 첫 랩에서 바로 피트를 해야 했고, 타이어를 잘못 가져오는 핏크루의 실수, 이어진 다음랩에서 두번째 핏스탑 등 암울한? 스타트가 되어버렸죠. 물론, 서스펜션 손상을 버티지 못하고 리타이어한 리우찌에 비해서는 조금 더 나은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엔진과 기어박스를 페널티 없이(?) 교체한 마싸는... 모나코에서 알론소가 그랬듯 첫 랩에 핏스탑을 하는 작전을 쓰면서 초반 세이프티카를 기대했는데, 바로 리우찌의 리타이어가 첫번째 세이프티카를 불러내면서 마싸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랩째에 등장한 첫 세이프티카는 등장 타이밍에 너무 빨랐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많은 드라이버들이 핏스탑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을 깨고 중하위권 대부분의 머신이 이 타이밍에 핏스탑을 했고... 더 놀랍게도 5위로 달리던 웨버 역시 세이프티카 등장에 발맞춰 첫 핏스탑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순위 싸움에 여념이 없는 다른 상위권 머신들은 핏스탑을 하지 못하면서, 이른 핏스탑 타이밍에 따른 타이어 상태와 뒤늦게 핏스탑 하는 머신의 위치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죠.
세이프티카가 들어간 시점의 톱텐은 알론소, 베텔, 해밀튼, 버튼, 장미군, 쿠비차, 바리옹, 슈미, 코바야시, 글록의 순이었는데... 핏스탑을 하지 않은 글록이 뒤따르는 많은 드라이버들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게 됩니다. 핏스탑을 한 웨버는 11위... 그리고 최하위에서 출발한 마싸는 15위까지 올라온 상태였죠. 웨버는 글록을 쉽게 추월한 뒤 바로 다음 랩에선 코바야시도 추월하며 9위까지 올라갔고, 11랩에선 슈미의 실수를 틈타 8위까지 올라서면서 포디움 입성 가능성을 점치게 했습니다. 같은 시간대 알론소를 뒤쫓고 있던 베텔은 팀라디오를 통해 브레이크 온도를 낮추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미 지난해 웨버가 마리나베이에서 브레이크문제로 리타이어한 것을 떠올리면... 올해 이런저런 문제로 리타이어와 손해를 봐야했던 베텔에겐 굉장히 섬뜩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베텔은 15랩 쯤 패스티스트랩을 기록하면서도... 조금도 무리하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팬들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줬습니다.
대열 중반에서 글록이 한동안 중위권 드라이버들의 발목을 잡았는데, 퍼포먼스가 확연히 떨어지는 버진 머신으로 수틸, 후켄버그, 마싸, 페트로프 등 퍼포먼스가 앞서는 머신들을 10랩 가량 붙잡아 두는 훌륭한 블로킹을 통해... 트룰리 트레인, 수틸 트레인에 이은 '글록 트레인'의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올해 머신의 성능이 떨어져서 그렇지 글록의 테크닉은 결코 녹슬지 않은 걸 보여줬달까요? 한 편 P8의 웨버는 P7의 바리첼로 뒤에서 발이 잡혀 있었는데... 선두권 알론소, 베텔과 7, 8위의 바리옹, 웨버의 간격은 랩당 2, 3초 씩 크게 벌어지고 있었죠.
29랩째 생각보다 빠른 맥라렌 듀오의 핏스탑이 이루어지면서 드라마가 시작됐습니다. 팀라디오에서의 푸시 요구에도 불구하고 웨버와의 간격을 벌이지 못한 해밀튼은 결국 핏스탑 후 웨버의 뒤로 트랙에 복귀하면서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웨버는 이미 26랩 이상을 달린 타이어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해밀튼은 싱싱한 타이어로 웨버를 점점 따라붙었습니다. 30랩째 함께 핏스탑한 베텔과 알론소의 핏스탑에선 베텔의 핏스탑이 좀 더 빨랐지만, 베텔이 2단 기어로 출발하는 실수로 엔진이 꺼질뻔한 아찔한 순간을 지나 그대로 순위를 유지한채 핏레인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베텔로선 시동이 꺼지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죠.
베텔과 알론소가 핏스탑을 진행할 즈음 대열 중반에서 코바야시가 슈미를 추월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두 드라이버 사이엔 분명한 접촉이 있었고, 슈마허는 타이어월에 부딪힌 뒤 다시 트랙에 복귀해 핏스탑할 수 있었지만... 겨우 추월에 성공했던 코바야시는 베이그랜드스탠드 앞 턴18에서 약간의 언더스티어와 함께 그대로 방호벽을 들이받고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어서 달리던 머신 중 세나가 멈춰선 코바야시의 후미를 그대로 들이받은 점인데요... ( 세나의 앞뒤 머신들이 모두 무리 없이 사고 차량을 피해갔으나 세나만 정면으로 들이받았죠. ) 혼란스러워진 베이그랜드스탠드 앞 상황 때문에 다시 세이프티카가 출동하게 됩니다. 사고 직전 핏스탑을 했던 알론소와 베텔, 맥라렌 듀오로서는 다행스러운 타이밍이었지만, 핏스탑을 하지 않고 P3, 4에 위치했던 쿠비차와 바리첼로는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핏스탑하면서 P7, 8로 다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36랩 두번째 세이프티카가 들어가는 상황에서의 톱텐은 알론소, 베텔, 웨버, 해밀튼, 버튼, 장미군, 쿠비차, 바리옹, 수틸, 후켄버그의 순이었고, 최하위로 출발했던 마싸는 이미 11위까지 올라와 포인트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이프티카가 들어간 바로 그 랩, 타이어 상태가 좋지 않은 웨버를 바짝 좇던 해밀튼은... 웨버가 백마커를 디그라씨를 추월하면서 다소 속도가 늦었던 타이밍을 잡아 직선주로에서 추월에 성공했죠. 그러나 추월의 기쁨도 잠시... 턴07에서 인코스를 잡고 늦게 브레이킹한 웨버가 다시 추월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레코드라인으로 달리던 해밀튼은 웨버와 접촉하고 말았습니다.
웨버는 머신에 충격이 예상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이 페이스를 되찾은 반면... 해밀튼은 웨버와의 접촉에서 타이어 펑처가 나면서 머신을 세우고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빠른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완주율이 특히 높았던 해밀튼으로서는 이탈리아GP에 이은 두 그랑프리 연속 리타이어... 또 헝가리GP부터 네 번의 그랑프리 중 세 번의 리타이어라는 커리어에서 가장 좋지않은 시기를 맞게 된 셈이죠. 해밀튼은 보기 드문 격앙된 표정으로 트랙을 빠져나갔고, 스튜어드들은 이 사건을 조사했으나 결국 특정 드라이버에게 페널티를 부과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밀튼이 리타이어한 바로 다음랩에선 슈미와 하이트펠트가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하이트펠트는 방호벽에 충돌하면서 레이스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고, 슈미는 프론트윙이 크게 손상되었으나 노즈를 교체한 후 레이스를 재개할 수는 있었습니다. 자우버로서는 두 명의 드라이버가 모두 슈미와의 배틀 후에 리타이어르 하게 되었으니, 슈미가 다소 원망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튜어드들은 앞선 해밀튼과 웨버의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 역시 조사 후 추가 조치 없이 마무리 지었습니다.
웨버가 해밀튼과의 충돌에서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된 타이어로 낼 수 있는 스피드에 한계가 있었고, 뒤따르는 버튼 역시 머신 퍼포먼스에서 레드불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이후 레이스의 관심사는 베텔과 알론소의 추격전이었습니다. 레이스 초중반은 안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던 베텔이 레이스 막판 알론소를 강하게 압박했고, 알론소 역시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큰 실수 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잘 지켜내는 가운데... 레이스 마지막까지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난하게 달리던 P6의 쿠비차가 갑자기 두번째 핏스탑을 했는데, 레이스 후 인터뷰에 따르면 쿠비차의 핏월에서 타이어 펑처가 감지돼 어쩔 수 없이 핏스탑을 했다고 하네요. 덕분에 쿠비차는 13위까지 순위가 떨어졌으나... 싱싱한 타이어의 힘을 빌어 매 랩 한 대씩의 머신을 추월하는 괴력(?)을 발휘... 결국 P7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볼거리는 로터스의 코발라이넨이 제공했는데, 파이널 랩을 한 랩 남기고 섹터3부터 로터스 머신의 후미에서 푸른 불꽃이 보이더니 이내 엔진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코발라이넨은 홈스트레이트에 머신을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핏월로 다가간 코발라이넨은 소화기를 건네받고 직접 불을 끄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시가지 써킷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은 있겠지만... 앞서 연습 때의 알론소 건도 있고 코발라이넨의 건까지 마샬들이 신속하게 커버를 해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드네요. 한편, 싱가폴이 거의 홈 그라운드와 다름 없는 로터스로서는... 일찌감치 리타이어한 트룰리에 이어 코발라이넨의 화재까지 악재가 겹친 주말이 되고 말았네요.
막판까지 추격전을 벌인 알론소와 베텔의 선두 경쟁은 결국 끝까지 큰 실수가 없었던 알론소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베텔은 마지막 랩, 마지막 코너까지 최선을 다했으나 2위에 그쳤고, ( 덕분에 알론소는 몬짜에서처럼 결승선을 넘으며 세레머니를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 ) 베텔의 뒤로는 30초 가량 뒤처진 웨버, 버튼, 장미군이 뒤를 이었습니다. 톱 텐의 나머지 다섯 자리는 바리첼로, 쿠비차, 수틸, 헐크군, 마싸가 차지했는데... 수틸이 레이스 직후 '첫 랩'에서 턴07을 넓게 돈 문제로 20초 페널티를 받고, 이어서 포스인디아의 항의에 따라 이뤄진 대질 심문 끝에 후켄버그 역시 첫 랩에서 리우찌와의 접촉과 코스 이탈 문제로 역시 20초 페널티를 받으면서, 10위로 결승선을 넘은 마싸는 8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게 되었죠. 마샬도 굼뜬 게 문제였던 싱가폴GP였는데... 스튜어드들의 판정도 상당히 타이밍이 늦었던 것 같긴 하네요. 첫 랩에서의 문제를 레이스 끝나고 페널티라니...
초고속 써킷인 몬짜에 이어 초저속 써킷인 마리나베이까지 제패한 페라리와 알론소는 싱가폴GP에서 ( 중계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 가장 돋보였던 팀과 드라이버임에 분명합니다. 레이스 내내 알론소의 꼬리를 붙잡고 괴롭혔던 베텔 역시 안정적인 드라이빙을 선보였고, 레이스 초반 핏스탑으로 포디움 등극에 성공한 웨버까지 '스타트 문제까지 해결한' 레드불 듀오의 퍼포먼스도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최하위에서 출발했지만 큰 사고에 얽히지 않고, 레이스 후반까지 타이어 관리를 잘 했던 마싸는 소중한 4포인트를 얻었고, 윌리암즈 듀오는 또다시 두 드라이버가 모두 포인트 피니시를 하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죠.
반면, 웨버와의 배틀로 리타이어한 해밀튼은 타격이 클 것 같은데, 아직까지 포인트 경쟁에서는 큰 부담을 가질 수준은 아니지만... 강경한 배틀이 계속 리타이어로 이어지면서... 앞으로 이전처럼 강력한 배틀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말하자면 심리적인 문제(?)가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버튼은 불리한 마리나베이에서 선전하면서 4위라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지만, 이제 5강 대결 구도에서 포인트 선두 웨버와 25포인트 차이까지 벌어진 상태로 레드불이 분명하게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스즈카로 이동하게 되면서 부담감이 커질 것 같네요.
싱가폴GP 결과 WDC 포인트 경쟁은 여전히 5강 구도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쯤되면 누가 치고 올라갈 것인가보다... 누가 떨어져나갈 것인가에 관심이 가는... 보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커지는 레이스들이 앞으로 계속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네요. 선두권 5명의 포인트 차이는 25포인트 차이로 5위 버튼을 제외하면 모두가 단 한 번의 그랑프리에서 선두에 올라설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현재 포인트 순위는 웨버( 202 ) - 알론소( 191 ) - 해밀튼( 182 ) - 베텔( 181 ) - 버튼( 177 ) 순입니다.
WCC 경쟁에서는 33 포인트를 추가한 레드불이 맥라렌과의 간격을 크게 넓히면서 선두를 질주했고, 반면 페라리가 29 포인트를 추가하면서 맥라렌과의 격차를 크게 줄이는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순위는 레드불( 383 ) - 맥라렌( 359 ) - 페라리( 319 )로... 페라리는 WCC 선두 도전까지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맥라렌은 완전히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고 보이고... 레드불은 이제 조금만 더 포인트를 쌓으면 대망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네 번의 그랑프리 결과에 따라 또다른 드라마가 펼쳐질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싱가폴GP를 시작으로 F1 2010 시즌은 아시아-남미 라운드를 시작했습니다. 네 번의 그랑프리가 남은 가운데... 몬짜와 마리나베이에서 증명했듯이 페라리는 이제 모든 타입의 써킷에서 최강의 퍼포먼스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기존의 레드불 RB6의 퍼포먼스 역시 남은 네 써킷 모두에서 페라리 못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머신 특성상 다소 불리한 맥라렌은 스즈카를 앞두고 기대되는 업데이트에 승부수를 걸어볼 것 같습니다. 2주 뒤 그랑프리가 펼쳐질 스즈카가 스파와 함께 가장 재미있는 써킷으로 인정받고 있고, 사상 유례가 없는 점입가경의 챔피언십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만큼 다가오는 일본GP도 많이 기대가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