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드라이버들에게, 또는 F1 팬들에게...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써킷 중 가장 좋아하는 써킷을 고르라고 했을 때, 벨기에의 스파와 일본의 스즈카입니다. ( 케로군 역시 스파와 함께 스즈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 ) 그리고, 바로 이번 주말... "스즈카 써킷( Suzuka International Racing Course : 鈴鹿サーキット )"에서 일본GP가 열리게 되죠.
스즈카는 시계 방향도, 반시계 방향도 아닌 8자 형태의 써킷이라는 것부터 굉장히 독특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써킷 중 가장 두드러지는 캐릭터를 가진 써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속 써킷이면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레이아웃... 많은 코너가 존재하지만 모든 코너가 서로 다른 의미가 있는 지루하지 않은 코스... F1 드라이버들에게도 상당한 도전이 되는, 드라이버를 검증하는 코스가 바로 스즈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높은 인기와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건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쨌든, 시즌 막판... 치열한 챔피언십 타이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운 결전이 펼쳐질 스즈카 써킷의 특징에 대해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즈카 써킷( Suzuka International Racing Course : 鈴鹿サーキット )"은 일본 중부 미에현 스즈카시에 자리잡고 있는... 혼다의 창업자 혼다소이치로의 도전 정신이 담겨 있는 38년 역사의 써킷입니다. ( 이하 '스즈카'로 부르겠습니다. ) 혼다가 '기술의 혼다'라는 이름을 얻기 전, 무모하기까지 했던 모터스포츠에 대한 도전과 투자를 계속하던 시기...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공을 위해 머신을 제대로 테스트할 수 있는 본격적인 써킷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지금의 스즈카가 탄생할 수 있었죠.
스즈카는 총 길이 5.807 km로 스파와 사키르, 실버스톤에 이어 네 번째로 긴 써킷으로 시계 방향도 아니고 반시계 방향도 아닌 '8자 형태'의 써킷을 총 53랩 돌게됩니다. 8자 형태라는 것은 써킷의 한 부분에서 트랙이 교차해 진행한다는 의미인데... 올 시즌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써킷 중에 이처럼 8자 형태로 이루어진 써킷은 스즈카가 유일합니다. 스즈카의 랩 레코드는 2005년 페라리의 키미가 기록한 1분 31초 540으로... 앞선 싱가폴GP가 열렸던 마리나베이보다 훨씬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10초 이상 더 빠른 랩타임에서 스즈카가 상당한 '고속 써킷'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스즈카에서 F1 머신은 평균 220 km/h 이상으로 한 랩을 주파하게 되는데, 몬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스파나 실버스톤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속 써킷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스즈카에는 단지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한 독특한 캐릭터가 담겨있기 때문에, 스파나 실버스톤, 몬짜나 질빌너브 써킷 등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도 하죠.
스즈카의 특징을 알아보기에 앞서 최근 여섯 시즌 동안 스즈카에서 열렸던 일본GP의 주요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 2008, 2009 시즌 일본GP는 후지스피드웨이에서 열렸기 때문에 기록을 제외했습니다. )
일단, 위 테이블에 기록된 네 번의 그랑프리만 해도 상당히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시즌에 걸쳐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랄프 슈마허 한 명 뿐이고, 무언가 특징이나 흐름을 찾아내기는 어렵죠. 하지만, 위 표에 드러나지 않은 중요한 기록이 있는데... 2000년부터 2002년까지의 3연패를 비롯해, 스즈카에서만 무려 여섯 번 포디움 정상에 섰던 미하엘 슈마허의 강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써킷에서는 몇 명의 강자(?)들이 기록에 나타나곤 하는데, 스즈카에서만큼은 아직까지 슈미와 견줄만한 기록을 가진 드라이버는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슈미가 복귀한 올 시즌, 적어도 스즈카에서만큼은 슈미가 강세를 보여줄까 기대할 수도 있겠는데, 하염없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메르세데스GP의 머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스즈카는 써킷 레이아웃을 포함한 여러가지 특징들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써킷이지만, 최근 몇 번의 그랑프리에서는 이런저런 '사고와 이벤트' 장면도 충분히 제공하면서 그 재미를 배가시켜줬습니다. 2004년의 경우 페라리 F2004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챔피언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레이스 자체로도 슈미의 무난한 폴투윈으로 끝나 밋밋한(?) 레이스였다고 할 수 있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토요일 퀄리파잉이 열리지 못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고, 대신 일요일 오전에 진행된 퀄리파잉도 비의 영향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워지면서... 보기드문 볼거리와 얘깃거리만큼은 충분히 제공했던 그랑프리였습니다.
2005년의 일본GP는 케로군이 뽑는 베스트 그랑프리입니다. 2004년과 마찬가지로 강한 비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토요일 퀄리파잉에선, 바로 이전 시즌 일곱번째 챔피언십을 거머쥔 슈미와 2005년 챔피언으로 확정된 알론소... 그리고, 알론소와 어깨를 나란히한 유일한 드라이버였던 키미를 모두 그리드 후미로 몰아냈죠. 슈미가 14그리드, 알론소 16그리드, 키미 17그리드에서 각각 출발한 가운데, 레이스 중에는 수많은 배틀과 추월 장면, 사고가 이어졌고... 특히 슈미, 알론소, 키미의 추격전, 배틀과 추월이 이어지면서 흥미를 더했던 그랑프리였습니다. 일본 그랑프리 53랩 동안 여섯 명의 드라이버가 대열을 선도하면서 아홉 번 선두가 바뀌는 대접전이 벌어졌고, 마지막 두 랩 동안 선두 피지켈라와 미칠듯한 속도로 선두를 따라잡은 키미가 배틀을 벌인 끝에... 결국 마지막 랩에서 추월에 성공한 키미가 17그리드 출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죠. 2005년 일본 그랑프리는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06년의 일본GP는 2004, 2005 시즌과 마찬가지로 시즌 마지막에서 두 번째 그랑프리의 자리에 있었는데, 일본GP를 앞둔 챔피언십 포인트 경쟁 상황은 이전 두 해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여덟번째 챔피언에 도전하는 슈미는 116 포인트로 챔피언십 포인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2005년 챔피언 알론소가 같은 116 포인트로 2위에 위치해 챔피언십의 향방은 오리무중이었고,. ( 우승 횟수에서 슈미가 1번 더 많은 상태였습니다. )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의 경우에도 179 포인트의 르노와 178 포인트의 페라리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퀄리파잉에선 슈미의 팀메이트 마싸가 폴포지션, 슈미가 2그리드를 차지했고, 알론소는 5그리드 출발에 그치면서 불리한 입장이었던 데다가... 레이스 초반 슈미가 마싸를 추월하고 선두에 나서면서 슈미의 챔피언십 희망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레이스가 중반을 조금 넘겼을 무렵 슈미가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 우승은 알론소에게 넘어가면서 챔피언십의 무게추는 알론소 쪽으로 90% 이상 넘어가게 되었죠. 슈미의 엔진 문제 리타이어는 2000년 프랑스GP 이후 6년만에 처음으로 벌어진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2년의 공백을 거쳐 벌어졌던 2009년 일본GP에서는 많은 사고들이 함께했습니다. 시즌 마지막에서 세번째로 펼쳐지는 일본GP 전까지 챔피언십 경쟁에서는 버튼이 여유있게 선두를 지킨 가운데, 2위 바리첼로( 15점 차 )와 3위 베텔( 25점 차 )이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강한 비로 금요일 연습 주행이 많이 제한되었던 가운데 드라이 컨디션으로 바뀐 토요일 FP3에선 버튼과 부에미의 접촉 사고로 시작하더니, 웨버가 데그너 커브에서 큰 사고로 차량이 파손되면서 퀄리파잉에 나가지 못하는 불상사로 이어졌습니다. Q2에선 알게수아리가 웨버와 같은 데그너 커브에서 사고로 레드 플랙을 불러내더니, 재개된 Q2에선 티모 글록이 마지막 턴18을 탈출하다가 큰 사고를 내면서 두번째 레드 플랙이 등장했습니다. 이 사고로 티모 글록은 헬기 후송으로 치료 받았으나, 다리 골절상으로 시즌 아웃 되고 말았고... 이어진 브라질GP에 코바야시가 글록을 대체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Q2 말미엔 부에미가 스푼 커브와 130R 사이에 데브리를 양산하면서 옐로우 플랙이 선언됐는데, 이 황색기 상황에서 '단 한 번의 트라이'로 Q3에 진출한 수틸, 버튼, 바리첼로 등이 그리드 페널티를 받고 말았습니다. Q3에선 코발라이넨이 데그너 커브에서 사고를 내면서 또다시 레드 플랙이 선언됐고, 마지막 5분동안 집중하면서 단 여덟 명의 드라이버가 경쟁한 Q3는 결국 베텔의 폴포지션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결승 레이스 자체는 결과만 놓고보면 굉장히 재미없게 끝났습니다. 퀄리파잉에서 1, 2, 3 그리드를 차지한 베텔, 트룰리, 해밀튼이... 결승 레이스 후에도 그 순서 그대로 포디움에 올라간 셈이니까요. 베텔은 스타트가 빨랐던 해밀튼에게 첫 랩 첫 코너에서 위협받았지만, 이후 매 랩 S커브가 나올 때마다 다른 머신들과의 격차를 벌이며 비교적 무난하게 선두를 지켜 우승을 차지했고... 팀메이트 웨버는 핏레인 출발에 첫 네 랩 동안 세 번 핏스탑 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레이스 완주에는 성공했습니다. 수틸과 코발라이넨이 카시오 트라이앵글에서 접촉한 것 외엔 큰 사고가 없었던 결승레이스는, 알게수아리가 130R에서 큰 사고를 내면서 세이프티카가 발령되는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레이스가 재개된 마지막 랩까지 큰 순위 변동은 없었고, 베텔은 일본 그랑프리에서 귀중한 10포인트를 올리면서 챔피언십 경쟁에 마지막 불씨를 살리게 되었죠.
그러면, 그렇게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스즈카가 도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길래 케로군이 이리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지... 스즈카의 특징을 정리할 수 있는 몇 개의 키워드들을 먼저 정리해보겠습니다. -상당한 고속 써킷이다 - 다양한 특성을 가진 코너들이 고루 등장한다 - 대부분의 런오프가 그래블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대로 스즈카는 고속 써킷입니다. 100 km/h 이하로 공략하는 저속 코너가 헤어핀과 카시오 트라이앵글 두 곳 뿐이고 ( 카시오 트라이앵글이 시케인이므로 턴 수로는 세 곳 ) 트랙의 2/3 이상을 풀쓰로틀로 공략해야 하죠. 특히, 중고속 코너이면서도 좌우로 무게중심 이동이 심한 S 커브나, 300 km/h 이상의 속도로 풀쓰로틀 상태에서 공략해야 하는 130R 등은 짜릿할 정도로 빠른 느낌을 전달합니다. 더구나, 스즈카는 산이나 나무로 조경된 곳이 적고 주변이 탁트인 써킷이기 때문에... 체감상 스피드가 몇 십 퍼센트는 더 빠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빠른 스즈카에는 매우 다양한 코너들이 존재합니다. 긴 오르막 직선 구간과 헤어핀, 시케인, 슬라럼과 같은 S 커브, 두 개의 에이펙스를 지닌 넓은 복합 코너, 두 개의 코너가 연달아 나타나는 중고속 코너, 그리고 악명 높은 130R까지... 모든 코너들이 분명한 개성을 가진 코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존재 의의가 분명한... 말 그대로 '드라이버들을 테스트하는' 느낌의 써킷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단순한 평면도에서의 레이아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적지 않은 고저차 때문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데... 고저차의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한 오르막이나 리막이 계속되는 코스와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각각의 코너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래에 이어지는 레이아웃 분석을 통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런오프가 그래블이라는 점은, 안 그래도 드라이버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복잡하고 빠른 써킷의 난이도를 더욱 높여줍니다. 약간만 코스아웃을 심하게 하더라도 그립을 잃고 그래블에 빠지게 되어 있고, 많은 경우 그대로 레이스를 끝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레이스 전용 써킷임에도 불구하고 시가지 써킷과 같이 한 순간의 실수로 리타이어하는 상황이 종종 연출 되곤 하죠. 게다가 고속 코너들이 많고 선회 각도도 큰 덕분에, 상당수의 코너 공략 과정에서 매우 높은 G포스가 발생하는데... 전후좌우로 번갈아 발생하는 높은 G포스는 드라이버의 목에 부담을 주는 동시에 정교한 드라이빙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는 스즈카의 레이아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즈카는 열여덟 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 레이아웃 이미지의 왼쪽이 시계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오른쪽 나머지 부분은 반시계 방향으로 되어 있는 셈이고... 데그너 커브의 두번째 코너와 130R 부근에서 좌우의 코스는 서로 교차하게 됩니다. 스즈카의 턴01부터 턴07까지는 섹터 1, 턴08부터 턴14까지는 섹터 2, 턴15부터 턴18까지는 섹터 3으로 구분됩니다만... 케로군의 글에서는 중요한 이름들을 턴 넘버 대신 사용하고, 섹터 구분보단 이름을 가진 주요 코너나 구간들을 기준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요한 코너들의 이름을 아래처럼 레이아웃 이미지에 표기하도록 할테니... 가능하다면 아래의 이름들만큼은 기억해두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주요 코너들의 이름을 사용해서 섹터를 다시 구분해보자면... 섹터 1은 첫 복합 코너에서 시작해 S-curves를 지나 Dunlop으로 이어지고, 섹터 2는 두 개의 Degner 커브를 통과한 뒤 헤어핀과 Spoon 커브까지, 그리고 마지막 섹터 3는 130R과 Casio Triangle, 그리고 마지막 코너 턴18로 구성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A. 섹터 1 : First Curve ~ S-curves ~ Dunlop 스즈카의 첫 코너는 턴01과 턴02의 복합 코너로 볼 수 있습니다. 첫 코너 턴01은 300 km/h 전후에서 공략하게 되는데, 홈스트레이트부터 이어진 풀쓰로틀 상태를 유지하면서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기 때문에 5G 가까운 G포스가 발생하면서 드라이버에게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턴01의 에이펙스 직전까지는 풀쓰로틀을 유지하지만, 선회를 완료하기 전 턴02를 위해 감속에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머신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하기 어렵게 되죠. 턴01이 상당한 고속 코너였던 것과 달리 턴02는 160 km/h 정도로 통과하는 중저속 코너로... 브레이킹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됩니다. 약간의 실수만 있더라도 첫 복합 코너에서 코스 아웃하게 될 가능성은 높습니다. 이 처럼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크게 감속하는 특징 때문에 첫 복합 코너는 좋은 추월포인트로 작용합니다. 2005년 마지막 랩 키미의 피지켈라 추월도 바로 이 첫 복합 코너에서 이뤄졌죠.
머신의 컨트롤을 잘 유지하면서 첫 복합 코너를 통과했다면, 다음에는 F1 최고의 구간이라고도 불리는 S-Curves를 만나게 됩니다. 레이아웃 이미지를 통해 볼 때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S자 형태를 띄고 있어 S커브로 불리죠. ( 영문으로는 S's 또는 Esses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 얼핏 보기에는 실버스톤의 마곳&베켓을 연상시키는 슬라럼 같은 느낌이지만, 스즈카의 S커브는 독특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S커브는 좌우로 선회하는 각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슬라럼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도입부는 240 km/h 이상의 고속으로 진입한 뒤, 조금씩 낮은 속도로 좌우로 번갈아 나타나는 코너들을 공략하게 되는데... 3G ~ 4G의 높은 G포스를 이겨내야 하는 것은 물론 풀쓰로틀과 브레이킹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적용해야만 무난한 공략이 가능하죠. 두번째로 S커브는 약간의 오르막 구간에 해당하는데, 지속적으로 일정한 오르막이 이어지는게 아니라 각각 다른 오르막 경사를 가지고 있고... 각 코너들의 진입과 탈출 각도까지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리듬을 타는 것만으로는 완벽한 공략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S커브의 공략은 이론상의 속도와 레코드 라인보다 상당부분 드라이버의 감각에 의존하게 되고, 아주 사소한 실수로도 속도 손실을 크게 보기 때문에... S커브의 공략에서는 같은 퍼포먼스의 머신이라고 하더라도 심할 경우 1초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스즈카의 여러 구간들이 이른바 '드라이버들의 테스트'로 불리며 뛰어난 능력을 가진 F1 드라이버들까지 시험에 들게 한다고 하지만... 그 중에 으뜸은 역시 이 S커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S커브의 종반 코너는 종종 '역 뱅크'라고 불리는데, 사실 스즈카의 여러 코너가 코너의 바깥쪽이 낮은 역 뱅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S커브만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S커브를 돌파하면 섹터 1의 마지막 코너인 Dunlop Curve를 지나게 되는데 본격적인 오르막이면서 왼쪽으로 크게 선회하는 코너입니다. 섹터 1의 마지막에서 짧은 가속 구간을 진행하기 위해 풀쓰로틀로 지나고 싶은 구간이지만, 아주 약간의 '졍형화하기 힘든' 머신 컨트롤이 요구되기 때문에 결코 공략이 만만치 않은 코너라고 할 수 있죠.
B. 섹터 2 : Degner ~ Hairpin ~ Spoon Curve 스즈카 섹터 2의 첫 구간에는 악명 높은 Degner Curve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그러고 보면 스즈카엔 드라이버의 실수와 사고를 유발하는 악명 높은 코너가 꽤 많은 셈이네요. ;;; ) 데그너 커브는 턴08과 턴09의 두 개의 코너로 이루어져있는데, 던롭에서부터 이어진 짧은 가속 구간을 지나 180 km/h 정도로 통과하는 첫 코너와 조금 더 감속해서 120 km/h 수준에서 통과해야 하는 두번째 코너가 이어져 있습니다. 데그너 커브의 전반적인 느낌은 몬짜의 레스모와 비슷하기도 한데... 레스모보다 조금 더 속도가 느리고 완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너 공략의 난이도는 오히려 레스모보다 높은데, 앞서 2009년의 일본GP 기록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데그너에서의 사고 위험도 레스모를 상회하죠.
데그너를 통과한 뒤에는 풀쓰로틀로 우회전하는 턴10을 지나 헤어핀이 이어집니다. 턴10의 에이펙스를 통과한 직후 머신은 강한 브레이킹을 하면서 내리막에서 헤어핀을 만나는데, 강한 브레이킹, 내리막, 방향 전환의 조합은 언제나 실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정확한 속도와 주행 라인으로 헤어핀을 공략하기 어렵기 때문에 헤어핀 역시 상황에 따라 좋은 추월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헤어핀을 통과한 뒤에는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는 턴12를 지나는데 턴12의 에이펙스를 통과하면 트랙은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져 속도는 다시 300 km/h에 육박하면서 섹터 2의 마지막 구간인 스푼 커브를 만나게 됩니다.
Spoon Curve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커다란 숫가락 모양을 띄고 있죠. 스푼 커브에 진입하는 과정은 역시 강한 브레이킹과 왼쪽으로의 선회가 포함되어 있어 머신 컨트롤이 어려운데, 두세 개의 복합 코너라고 할 수 있는 스푼 코너에서 제 속도를 내려면 우선 진입의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스푼 커브의 진입에서 컨트롤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보다 중요한 부분은 긴 오르막 직선 가속 구간을 위해 빠른 가속이 필요한 스푼 커브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푼 커브에서 얼마만큼 실수 없이 빠른 속도로 탈출하느냐에 따라 섹터 3의 기록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죠.
C. 섹터 3 : 130R ~ Casio Triangle ~ Final Corner 섹터 3는 또 하나의 스즈카를 대표하는 코너 130R로 시작됩니다. 긴 오르막 구간에서 풀쓰로틀로 달리면서 310 km/h를 상회하는 속도에 도달한 F1 머신은, 130R에서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크게 선회를 하게 되죠. 에이펙스에서의 속도도 300 km/h를 육박하기 때문에 4G의 G포스가 발생하고,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컨트롤을 잃으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원래는 130m 반경의 코너로 되어 있어서 붙은 130R은 2000년대 초반 보다 각도가 큰( 반경이 작은 ) 첫번째 에이펙스와 각도가 완만한( 반경이 큰 ) 두번째 에이펙스를 가지는 복합 코너로 변경되어 사고 위험을 줄이려고 했지만... 2009년 일본GP에서 레이스 후반 알게수아리가 비교적 큰 사고를 낸 것을 보면, 이런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 위험이 큰 구간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30R의 런오프가 스즈카의 대부분의 런오프와 다르게 타막으로 되어 있다는 점인데, 간혹 언더스티어로 코스아웃한 머신들이 약간의 시간 손실을 감소하고 트랙에 복귀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네요.
130R을 무사히 통과한 뒤에는 Casio Triangle이라고 불리는 시케인을 만나게 되는데, 스즈카에서 시케인이 이곳 카시오 트라이앵글 하나 뿐이기 때문에... 종종 그냥 '시케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00 km/h 이상의 고속 구간에서 90 km/h 이하로 감속하면서 만나는 시케인이란 점에서 카시오 트라이앵글 역시 분명한 추월포인트로 볼 수 있는데... 의회로 시케인을 통과하는 라인이 좁은 느낌이기 때문에 실제로 추월 포인트로 애용되지는 않는 느낌이 드네요.
카시오 트라이앵글을 통과하고 나면 마지막 코너 턴18만이 남아있는데... 살짝 내리막에서 190 km/h까지 급가속을 하면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턴18은, 의외로 언더스티어와 함께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2009년 일본GP 퀄리파잉에서 글록이 큰 사고를 당한 지점도 마지막 코너였고... 시케인에서의 추월 시도에 뒤따른 접촉이나 자리 싸움의 여파로 종종 사고가 발생하는 지점도 바로 이 턴18이었죠. 턴18을 통과하면서 빠른 가속을 해야만 홈스트레이트에서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고, 이어지는 첫 복합 코너에서의 추월시도도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마지막 코너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머신의 컨트롤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결국 스즈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특징의 코너들을 통해, 드라이버들이 실수하지 않고 공략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물론 그런 실수가 무서워서 조심성 있게만 공략한다면 랩타임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될 것도 분명하고요... 이래저래 드라이버들에게 난해한 써킷이 아닐 수 없는 스즈카는 덕분에 보는 이들에게는 더 큰 재미를 선사하는 써킷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빨간색 볼드로 표기한 주요 코너들의 공략을 중심으로 스즈카의 코너 구성을 살펴봤는데... 마지막으로 베텔이 소개하는 '레드불 시뮬레이터 공략 영상'을 첨부하면서 레이아웃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중에 높은 G포스가 발생한다는 뜻에서 사용한 'pain in the neck'이란 표현이 재밌군요. ^^
지금까지 살펴본 스즈카 써킷의 특징들과 일본GP를 보기 전에 염두에 둘만한 다른 특징들을 모아모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올 시즌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8자 형태의 써킷'
- 스파와 함께 F1 드라이버,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써킷 중 하나
- 실버스톤, 스파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고속 써킷'
- 오르막과 내리막을 포함해 개성이 분명한 다양한 형태의 코너들이 잘 조합된 써킷
- 긴 오르막 직선 구간을 위한 엔진 출력, 중저속 코너를 위한 높은 다운포스, 고속 코너를 위한 밸런스까지 '머신의 모든 퍼포먼스가 고루 중요한 써킷'
- 머신 퍼포먼스가 같더라도 ( 특히 섹터 1에서 ) 드라이버의 역량에 따라 상당한 랩타임 차이가 발생하는 써킷
- 가장 좋은 추월포인트는 첫 복합 코너와 카시오 트라이앵글
- 데그너 커브의 공략에 따라 헤어핀에서도 추월 시도 가능
- 높은 G포스가 발생하는 코너가 많아 드라이버에게 상당한 부담이 주어지는 써킷
- 대부분의 런오프가 그래블로 구성되어 있어, 언제든 코스아웃을 한다면 엄청난 시간 손해를 보게 되는 써킷
- 데그너 커브, 130R, 마지막 코너인 턴18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써킷
최근 경제 위기와 뒤따른 일본 경기 침체의 여파로 2009년까지 일본GP의 스폰서였던 후지TV가 발을 빼면서, 올 시즌 일본GP는 메인 스폰서 없이 진행되고... 앞으로 일본GP의 미래도 안개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스즈카의 범세계적인 인기와 드라이버들의 선호도를 생각한다면, 이런 일시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스즈카와 일본GP가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죠. 어쨌든, 케로군의 개인적인 바람은... 스즈카가 F1 캘린더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올 시즌 스즈카에서의 판세를 대략 예상해보자면... 2009년부터 고속 코너에선 절대적인 강세를 보였던 레드불이 조금이나마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스즈카 역시 고속 써킷인만큼 일본GP를 앞두고 많은 업데이트를 준비한 맥라렌도 충분히 도전 가능할 것 같고, 최근 초고속 써킷 몬짜와 저속 써킷 마리나베이에서 연승을 거둔 페라리가 강한 출력과 높은 다운포스, 강력한 브레이크 성능을 앞세워 레드불, 맥라렌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스즈카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던 베텔과 해밀튼의 질주에... 웨버와 알론소가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랄까요? 약간의 변수들이라면... 이미 몬짜에서 새로운 엔진을 모두 사용한 페라리의 엔진이 잘 버텨줄까 하는 점, 최근 눈에 띄는 상승세를 이어온 윌리암즈가 스즈카에서도 다크호스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 그리고, 전통적으로 스즈카에서 강했던 슈미가 머신 퍼포먼스 부족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단 네 번의 그랑프리를 남기고 있는 가운데, 5위까지 25포인트 차이의 드라이버 챔피언십 경쟁과 레드불, 맥라렌, 페라리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경쟁의 향방도... 일본GP가 끝나고 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안 그래도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스즈카의 일본GP라지만... 올 시즌엔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치열한 챔피언십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그 어느해보다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팬들에게 제공해 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