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드라이버가 되려면?

최근 무한도전 멤버들이 F1 드라이버에 도전한다는 기사가 나면서
갑작스레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인 F1 드라이버 육성 계획에 따른
'한국인 F1 드라이버 선발전'에 게스트 형식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이 참여하는 것일텐데...
레이싱 자체에... 특히 오픈휠 머신에 대해서는 불모지 중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 정도의 홍보라도 감지덕지 고마울 따름이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인 F1 드라이버 탄생의 꿈은 굉장히 요원합니다.
축구에 비교하자면... 부탄에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이 탄생하는 꿈이나,
야구에 비교하자면... 캄보디아에서 메이저 리그 홈런왕이 탄생하는 꿈에 버금가지요...
물론 불가능한 목표는 아닙니다만... 굉장히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F1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되는 걸까요?

- F1 드라이버가 되는 왕도는 없다.

우선 분명히 이해해야되는 것은 'F1 드라이버가 되는 절대적인 루트는 없다'는 겁니다.
상당히 많은 케이스에서
a. (고)카트 등으로 오픈휠 레이스에 입문해서 경험을 쌓은 뒤
b. 포뮬러 시리즈에 입문해서 성적을 올리고
c. F3나 포뮬러 니뽄 등의 상급 포뮬러 시리즈에 진출...
d. F2, GP2 등의 F1 피더 시리즈에서 F1 팀의 부름을 기다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꼭 이런 루트가 아니더라도...
미국만의 오픈휠 시리즈인 인디카를 통해 오픈휠 드라이버로 명성을 쌓을 수도 있고,
지금은 존폐를 ( 심히 ) 걱정해야 하는 A1의 경우도 F1 드라이버가 되는 등용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루트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적어도 F3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는 것은 필수 과정인 것 같지만...
키미의 경우에는 포뮬러 포드와 포뮬러 르노만을 거치고 바로 F1 드라이버가 되기도 했지요.
( 그리고, 포뮬러 포드/르노에서의 레이스 횟수도 단 23회에 불과했습니다. )
상대적으로 해밀튼의 경우에는 포뮬러 A, 포뮬러 르노, F3, GP2까지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루트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항상 90% 이상이고,
그랑프리의 우승이나 시리즈의 우승도 다음 단계로의 진출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루트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왕도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트 써킷도 충분하지 않고, 제대로 된 써킷도 몇 없는...
게다가 오픈휠 경기는 맥이 끊긴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의 스텝을 밟고 올라가는 것도 여의치 않지요.
현재 한국인 F3 드라이버 한 명이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천재성을 보이지 않는 다음에야( 그것도 10대 후반에... )
F1 드라이버를 기대하는 건 너무 욕심이 큰 것 같습니다.


- 사업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재능과 경험만 가지고 F1 드라이버가 될 순 없습니다.
케로군은 이 부분이 한국인 F1 드라이버가 탄생하는데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F1 피더라고 할 수 있는 GP2와 F2의 수십 명 드라이버들의 기량이 만만치 않지만,
상당수가 F1 머신에 타고 테스트조차 받아보지 못한 게 현실이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 마케팅적 효과와 사업적인 결정으로 F1 드라이버가 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2007년 나카지마(카즈키) 같은 경우는 체계적인 성장을 건너 뛰고 변변한 F3 성적도 없이 F1 드라이버가 되었죠.
일본 F1 드라이버의 개척자 나카지마사토루의 아들이라는 점과
대형 F1 시장 중 하나인 일본인 드라이버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토요타의 엔진을 윌리암즈가 채택하면서 함께... 라는 요인이
재능과 경험이 검증되지 않은 어린 드라이버를 F1 드라이버의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한국인 F1 드라이버를 기대하기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당장 한국에 F1 매뉴팩쳐러도 없는 데다가...
한국의 F1 시장이 일본, 중국은 고사하고 말레이지아나 싱가폴에도 미치지 못하는 후진국 수준이니
이런 여건을 고려하면 왠만한 팀이 한국인 드라이버를 시트에 앉힐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말레이지아의 경우에 알렉스융( 스타스포츠 F1 해설로도 활동하는 )이 기업의 후원을 입고 F1 드라이버가 되었으나
단 1포인트도 얻지 못하고 2001년엔 26명 중 26위, 2002년엔 23명 중 20위의 하위권을 맴돌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일단 알렉스융의 케이스가 가장 근접한 모델이겠으나...
그 성적으로 과연 1위 지상주의 한국에서 F1에 관심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입니다.


- 스타성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언급하는 사람은 없지만 결과적인 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스포츠이면서도 상업적, 공업적 성격이 강한 F1의 경우...
단순한 사업적 효과나 드라이버로서의 기량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스타성입니다.
맥라렌의 귀공자로 키워진 해밀튼이나 레드불 영 드라이버 육성의 기린아 베텔 같은 경우는
드라이버로도 훌륭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스타로 보아도 부족할 데가 없어보이지요.
브루노 세나의 경우에는 외모도 출중하지만, 삼촌의 이름값이 어느 정도 스타성을 보장해주는 느낌도 있습니다.

꼭 잘 생기고 멋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수려한 외모가 아니더라도 뭔가의 특징적인 매력이 있어야...
상업 스포츠의 최고봉인 F1에서 드라이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공식들까지 고려해서
F1 드라이버가 되려고 한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리해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 어렸을 때부터 카트 등을 통해 레이싱 경험을 쌓아야 되고
- 충분한 기량과 함께 상위로 진출할 수록 요구되는 강한 체력을 쌓아야 하고
- 그와 동시에 유창한 영어( 공식적인 F1 팀들의 의사 소통 언어 )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 기존 레이싱 주류, 특히 F1, FIA, FOMA 쪽에 인맥을 쌓아야 하고
'주변'에서는
- 몇 년 동안 수 억 원 이상이라도 꾸준히 지원해 줄 든든한 스폰서가 있어야 하고
- 국가적으로 충분한 레이싱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며
- 이 모든 과정을 도와줄 매니지먼트와 지원 인력이 수 년 동안 자리를 지켜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드라이버가 아직 10대일 때, 늦어도 20대 초반에 준비 완료가 된다면 더욱 좋겠죠.
( F1 드라이버로 입문하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
이런 밑바탕은 단순한 필요 조건으로... 조건을 다 갖추었다면

남은 것은 하늘이 도와서 F1 팀들로부터 낙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F1 드라이버 육성 계획이 너무 기술적인 능력과 신체 조건, 언어 구사 능력에만 촛점을 맞춘다면
현실적으로는 F1 드라이버로 테스트조차 받을 기회가 없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거나
F1에 입성하더라도 알렉스융의 경우처럼 결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
레이싱 팬이라면 한국인 드라이버 중에 SA 라이센스를 딴 드라이버가 단 한 명만 등장해도 굉장히 흥분될 겁니다.
다만, 한 명의 F1 드라이버를 통해 국내 레이싱 시장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뭔가 굉장한 업적( 야구의 박찬호나 피규어 스케이팅의 김연아처럼 )을 기록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 이번에 무한도전의 홍보성 참여로 소개되는 '한국인 F1 드라이버 선발전'인만큼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육성이 미래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하염 없이 힘들고 먼 길이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겠지요...
( 실은 너무나 황당한 제목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말이죠... )
더불어, 개인적으로 버라이어티를 즐겨 보지 않지만,
이런 홍보에 함께해 준 무한도전과 김태호 PD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