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끼" - 결코 원작을 따라잡지 못하고 강우석표 영화에 머물다

만화 "이끼"의 작가 윤태호님은 가히 현재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인기나 판매 부수, 인터넷에서의 조회수 이런 기준이 아니라,
그가 담아내는 윤태호적인 이야기, 그가 그려내는 윤태호만의 필체에서...
평단으로부터나 독자로부터나 찬사를 받기도 하고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그런 복합적인 의미에서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분명하다고 케로군은 감히 단언합니다.
윤태호님의 작품 중에서 케로군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야후'입니다만...
최근작이면서 인터넷에 연재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걸작 "이끼"가 영화화되었기에,
놓치지 않고 극장을 찾아 문제의 영화 "이끼"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알고 있던 사전 정보는...
배우 정재영 씨의 미스캐스팅 논란이었는데...
케로군이 보기에 진정한 미스는 감독 '강우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흥행 성적이나 영화계에서의 영향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그의 손에서 원작이 가진 음습함과 기분 나쁜 여운이 남겨지리란 기대는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겠죠.
여튼 원작의 힘에 많이 기대었기에... 나름 괜찮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는 영화가 완성되었지만,
결코 좋은 평을 많이 하기엔 부족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 된 것 같네요.
케로군은 영화 이끼에 대해 어떤 면을 나름 좋게 평하고,
또 어떤 면이 그렇게 불만스러운지 아래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래 숨긴글 속에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

감독과 연출

강우석 감독은 우리나라 굴지의 흥행 감독입니다.
감독의 연출작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이점만은 분명하죠.
하지만, 흥행 성적을 떠나서 영화 자체에 대해서 평가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초기작 투캅스나,
근작인 실미도,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자기색, 자기만의 연출이라고 할만한 것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주류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가 만들어 놓은 초기 코미디 연출의 스타일 역시...
케로군이 동의할 수 없는 '속시원한 비판을 하는 듯 하면서도 양비론으로 빠지기'에
매우 싫어하는 '코미디 영화 후반의 감동 짜내기 스토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좋은 소리를 할 수 없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죠.
아마도 흥행을 위해, 일반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흥행 감독의 연출이 그런 관객들의 입맛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근작들에서는 다행히? ( 별다른 색이 없던 ) 연출에서 벗어나,
배우의 힘에 많은 의존을 하는 영화로 좋은 평을 듣기도 했었는데...
공공의 적 1편이 그런 케이스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 강우석의 색은 없고 설경구의 색만 있었던... )
반면 또 뭔가 해보려고 했던 '한반도'나 '실미도'는 그 흥행 성적을 떠나서...
무슨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영화가 되기도 했죠.

그에 비해 이끼에서의 연출은 '원작에 기댄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그 연출 방향이 약간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원작의 텍스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배우에게 읊도록 하고,
만화에서의 색, 앵글, 장면 연출까지 그대로 재현해내는 게 감독의 연출 목표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원작의 스토리가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감독의 연출력과 무관하게 원작을 대부분 재생산한 영화의 스토리 역시 튼튼해진 건 긍정적인 효과였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그런 편집증적인 재생산이 원작의 힘을 빌어오는 것 이외에 무슨 효용이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화의 텍스트로 읽을 때는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실사 영화에서 배우의 입으로 나올 때는 어색하기 그지 없는 대사가 적지 않았고,
장면과 미장센에서 만화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노력하다보니
그대로 재현되지 않은 부분, 변형된 부분, 각색된 이야기가 눈에 너무 크게 걸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만화 원작이 유려한 필체로 묘사한 풍경이나 캐릭터의 세밀한 외모 묘사에 방점을 둔 게 아니라,
짙은 연무가 깔린 듯한 음습한 마을의 분위기와 절제된 대사 중에 느껴지는 섬뜩함을 원했는데...
어째서 영화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듯 하면서 외적인 면에만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 모를 일이네요.

게다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과도한 애드립성 유머...
관객을 바보로 아는지 과도하게 친절한 설명을 추가한 말 그대로의 사족...
그리고, 정작 중요했을지 모를 씬들의 과감한 삭제를 포함한 각색의 실패까지 더해져,
영화는 원작의 참 맛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런 흥행 영화로만 남아버린 것 같습니다.
물론 원작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작과 윤태호님의 만화들을 보며 환호했던 관객들에게는 영화의 연출에 아쉬움이 너무나 남게 되었네요.



배우와 연기

사실 케로군은 원작과 얼마나 비슷한 외모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했는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박해일의 경우 주인공 유해국과 싱크로율이 100% 이상이라거나,
정재영이 이장과 싱크로율이 제로라거나...
이런 건 어짜피 원작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순간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영화화가 되었을 때 배우들이 살렸어야 하는 건 원작 캐릭터의 외양이 아니라,
그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려내는가 하는 부분인데...
감독의 연출이 빗나간 건지 배우들이 연기 방향을 잘못 잡은 건지...
많은 배우들이 원작 흉내만 낼 뿐 그 느낌은 재생산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박해일은 외모상의 잇점에 비해서 연기는 과도하게 무난했습니다.
주인공 유해국이 결코 무난해서는 안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튈 때는 강함이 부족하고... 움추를 때는 공포에 떠는 모습이 부족한...
평범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듯한 모습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만화에서 한 컷의 주인공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서 긴 대사를 읊는 건 제발...
(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자주 보이는 바 감독의 문제라고 봅니다. -_-; )

박해일의 상대역이자 이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이장을 연기한 정재영은...
원작과 굉장히 동떨어진 이장의 캐릭터를 그려냅니다.
물론 각색이 이뤄진 영화의 캐릭터인만큼 원작과 어느 정도 다른 캐릭터라는 건 환영할만한 일인데,
정작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사는 그대로! 라는 점이 상당히 어색하고
각색이 되더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할 캐릭터의 느낌을 많이 상실했다는 건 너무 많이 아쉽습니다.
이장의 캐릭터에게 관객도 공감이라도 하고 동정이라도 받길 원했던 건지...
아니면 이장을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관객들을 웃기려한 건지 모르겠으나,
이런 이장으로는 원작 만화 이끼의 그 밑도 끝도 없는 나락의 캐릭터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각색이 있었지만 원작 만화의 느낌-광기에 가장 근접한 배우는 유해진이었습니다.
케로군이 지금까지 영화에서 봤던 유해진의 연기 중 단연 최고라고 꼽을 수 있는 연기가 이끼에 담겨 있죠.
영화를 보시면 중후반 단 몇 분의 연기 속에 케로군이 칭찬하기에 충분한 명연기를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또 한 명, 인상적인 캐릭터는 박 검사 역의 유준상입니다.
이 영화에서 다소 많이 각색된 박 검사의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연기가 출중했다 할만한 장면은 없었지만 그 목소리 그 표정 그 눈짓 한 번을 보고 있자니,
유준상을 주연으로 복잡한 액션 영화를 한 번 찍으면 정말 독특한 색깔이 나오겠다...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우로서 낙제점을 줘야 하는 배우라면,
영지 역의 유선을 들 수 있겠습니다.
긴 말이 필요없고 제 2의 김태희에 도전하는지 표정이 똑같습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줘야 할 때도 같은 표정...
혹시 이게 모든 걸 감추려는? 연기라면 오히려 대단한 거겠지만... 말이죠. ;;;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불만스러웠지만,
앞서 적었듯이 이것이 감독의 연출의 잘못인지 배우들의 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유해진의 중후반 연기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
꼭 원작과 같진 않더라도 관객들을 섬뜩하게 만들만한 광기와 기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다른 캐릭터들로 봐선,
배우들의 연기에 잘못이 없다라고는 결코 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코믹 잔혹극...은 아니었겠죠?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위의 두 단락에서 케로군이 매우 좋지 않은 평을 많이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객들이나 평단에서의 영화 이끼에 대한 반응은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아직 개봉 초기이긴 하지만 결코 손해보지 않을 수익은 보장 받고 있는 것 같고,
유수의 평론가들이( 아마도 원작이나 원작자의 다른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 호평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케로군이 너무 독특한 관점으로 평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이 작품을 강우석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했더군요. ;;;
( 원작의 어두운 색을 제거해서 아주 좋았다나 뭐라나... ;;;; )
흥행에 대해서는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평단의 호평( 케로군이 보기엔 이 정도면 대 호평입니다. )은 정말 예상 밖이네요.
한 편 영화 '이끼'는 요즘의 흥행 대작치고는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하네요.
15 억 정도의 예산으로 시작했다는데 실제로 얼마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정부지로 제작비가 치솟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나름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의 영화를 이 정도 규모로 시작할 수 있다면 희망적(?)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흥행과 비평의 성공을 나름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거둘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_-;

만화의 원작자 윤태호님은
만화의 첫 장면 이장이 유해국에게 부친의 부고를 알리는 일이 플롯의 핵심임을 후기에서 표명했었는데,
영화의 첫 장면... 너무 자세히 캐릭터들을 다 설명, 설정해버리는 플래시백이나
유해국에게 전화를 한 게 영지였다는 설정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힘을 흔들어버렸습니다.
원작 만화와는 전혀 다른 엔딩 장면에서의 묘사는,
오히려 영지가 이전에 좀 더 표독스럽거나 좀 더 강력하게 행동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원작 만화보다 물러진 영화의 영지에게는 너무 뜬금없는 작위적인 장면이 되어버린 것 같네요.
케로군은 이장 아들의 과거, 유목형과 영지의 대화, 첫 장면의 플래시백으로 마무리 되고,
이장이 창고의 증거들 얘기를 듣고 죽음에 이르는 신속한! 연출의 만화의 엔딩이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종합하자면...

영화 '이끼'는...
만화 이끼의 힘을 빌어 튼튼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수많은 만화 속의 장면과 대사를 동일하게 복재해내는데 성공했으나...
원작 만화가 전달하려고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거세해버린 아쉬운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그 거세의 이유가 흥행을 위해서였는지 모르고,
강우석 감독의 선택에 비평이 호의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원작자의 팬이라고까진 못해도 원자작 윤태호님의 작품을 높이 사는 케로군에겐...
이 영화 이끼의 방식이 결코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 주류 문화의 기준으로 보면 독특하기 그지 없는 원작 덕에
영화 이끼 역시( 아무리 강우석 감독이 무난하고 평범하게 연출했더라도 ) 상당히 독특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영화의 독특함을 원하고 무난한 영화를 선호하는 한국 관객에게라면...
원작을 접하지 말고 영화를 보기를 추천하고 싶네요.
( 원작을 접한 뒤라면 아무래도 좋게 보기가 ㅠㅠ )


올해 지금까지 극장에서 감상했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이끼'에 별점을 줘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영상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사실 케로군의 기대는... 윤태호님의 대표작 '야후'가 영화화되는 겁니다.
장벽은 아무래도 CG가 많이 필요하기에 높은 제작비와...
액션과 정치적/사회적인 메시지, 인간 드라마를 함께 성공적으로 연출할 작자를 찾는 일일텐데요...
영화 이끼가 성공해야 야후의 영화화도 기대할 수 있을테니,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끼의 성공을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