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아바타'를 시작으로 '앨리스'에 이어 세번째로 3D 영화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로...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지만, 높은 완성도로 꾸준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였죠. 워낙에 전반적인 평이 좋았기 때문에, 정작 극장에서 관람하고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평이 좋고 꾸준한 인기를 끄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드래곤 길들이기는 케로군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3D를 강조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3D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아바타'와는 다른 의미로 3D의 가능성의 한계를 확장시킨 훌륭한 3D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3D의 기술적인 측면에 방점을 두지 않고 동화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재미있는" 영화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던 게 특히 마음에 드네요. 지금까지 등장했던 3D 영화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스토리가 탄탄했다고 생각되는... 드래곤 길들이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래 숨긴글 속에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
감독과 연출
디즈니, 픽사와는 다른 길을 가려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노력은... 이미 '슈렉' 시리즈와 '쿵푸팬더' 등을 통해서 그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탭들과 마찬가지로, 디즈니 출신의 두 감독 Chris Sanders와 Dean DeBlois이 '릴로&스티치'에 이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면서 걸출한 3D 애니메이션을 완성해냈습니다.
두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디즈니에서의 '릴로&스티치'는 다소 이질적인 작품으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들이 8년만에 다시 손을 잡고 각본과 연출을 해낸 '드래곤 길들이기'는 전작과 비슷한 구석이 많이 보이면서도 보다 안정되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습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라면 원작인 2003년의 소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디즈니와는 정서가 맞지 않는 두 감독이 드림웍스에서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네요.
원작 소설인 히컵의 모험 시리즈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드래곤 길들이기의 이야기는 완연하게 동화적입니다. 물론 어린이들도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는 다소 순진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약간이나마 정치적인 메시지를 심어 놓은 점은 드림웍스의 정서에 맞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이킹들과 드래곤들이라는 종족(민족) 대립의 구도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지배자(계급)에게 종속되어 있는 드래곤(피지배 계급)들과 바이킹들이 일종의 계급 연대를 이루는 모습은... 드림웍스다운 반골기질이 담겨있는 부분이라는 느낌입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상당히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의 감정선의 변화와... 심지어는 대사가 없는 드래곤들의 감정들마저도 매끄럽게 발전해나가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대사 하나하나와 캐릭터의 변화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절정과 결말로 치닫는 동안 무난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네요. 'UP'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따듯한 이야기가 잘 연출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배우와 연기
목소리 연기에 참가한 배우 중에 케로군이 이름을 알만한 배우는 히컵의 아버지이자 족장인 스토익을 연기한 300의 Gerard Butler가 유일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히컵 역의 Jay Baruchel은 케로군에겐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데 목소리 연기는 무난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지장을 주진 않더군요. 캐릭터에는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단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아주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제이 바룬첼이라는 (케로군 입장에서) 나름 무명의 배우는 올해 판타지 기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견습 마법사'( 우리나라에 소개될 제목을 잘 모르겠네요.)의 주연을 맡았는데, 실사 영화에서의 연기는 어떨지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은 듭니다.
케로군이 잘 아는 배우는 아니지만 목소리 연기를 참 잘한다는 느낌이 드는 배우는 고버 역의 Craig Ferguson였습니다.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튀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어려운 연기였을텐데... 스토익과 히컵의 사이에서 조절하는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냈습니다. 덕분에 드래곤 길들이기의 전체적인 감정선이 잘 유지됐다는 느낌이랄까요?
그에 비해서 아스트리드나 스토익은 크게 문제는 없지만 뭐랄까 2% 부족한 느낌까지 듭니다. 오히려 투슬리스의 말 없는 연기 아닌 연기가 더 인상적이었는데, 목소리로서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더군요. 마치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케로군이 키우던 고양이와 하는 짓이 매우! 미슷했었습니다. ㅠㅠ ) 연기로, 대사 한마디 없이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고 캐릭터가 제한적이다보니 배우와 연기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할 게 없네요.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드래곤 길들이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바타'와 비교되는 영화였습니다. 물론 CG의 물량면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자연스러운 3D에서는 아바타 이상이라는 느낌까지 들더군요. 특히 배경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데 공을 들인 아바타와 달리 드래곤 길들이기는 불필요한 배경을 정밀하게 묘사하기 보단 주요 피사체에 확실하게 촛점을 맞췄고, 적절하게 아웃 포커싱까지 덧붙여지면서 오히려 3D의 장점을 잘 살렸다는 생각입니다. 아바타에서와 유사한 '드래곤을 타고 비행하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드래곤 길들이기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드래곤 길들이기는 미주 지역 오프닝 성적 면에서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중에서 7위에 불과했지만, 꾸준한 관객 몰이로 개봉 5주차에 다시 한 번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스테디셀러로서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해서... 다른 화제작들 사이에서 비교적 조용히 3D 개봉한 뒤, 페이스가 꺾이지 않고 꾸준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로 이미 4억불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드래곤 길들이기가 어디까지 매출을 올릴지 알 수 없지만, 만국 공통의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동화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다 높은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원작 소설은 히컵의 모험을 다룬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시리즈물로 영화가 등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속편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드래곤'이라는 3D로 인상적인 소재의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속편의 소설들 때문에 영화 속편을 만들기를 꺼려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드네요.
종합하자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케로군이 보았던 3D 영화 중 최고로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 면에서 아바타보다 확실히 재미있었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3D에서도 아바타보다 나아보였습니다. 연출도 매끄럽고, 연기에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반대로 잡다한 이야깃거리나 볼거리가 부족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것 같습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물론 당연히 강력 추천할만한 작품이고, 성향에 관계 없이 동화적이면서도 아주 살짝 진지한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 자녀와 어린이를 동반한 관객들에게도 적극 추천할만한 영화였습니다. 기술적으로 꼭 봐야 하는 영화였던 아바타와 다르게... 영화 자체로도 드래곤 길들이기는 보지 않고 지나가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영화인 것 같네요.
올해 보았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전에 평가했던 것처럼 별점을
줘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영상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아직까지는 극장에 많이 걸려있지만 또 다른 3D 영화가 개봉하면 상황이 어떻게될지 모르니... 아직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어서 극장에 달려가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혹시 여건이 안된다면 Blu-ray/DVD가 발매됐을 때라도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