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군은 '아이언맨' 시리즈 첫번째 작품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블루레이로 보고나니 꽤나 재밌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감상하지 못했던 걸 아쉬워했죠. 그런데 속편이 소개되고 미키루크가 카리스마 있는 악역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국내 개봉하면 꼭 놓치지 말고 극장을 찾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고... 지난 주 개봉하자마자 극장을 찾아 "아이언맨 2( Iron Man 2 )"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하지면, 영화를 본 감상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망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불만들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액션 영화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더군요.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킥애스'를 보았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지 모르겠지만, 킥애스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인 아이언맨 2가 훨씬 더 재미없는 것은 물론 이런저런 볼거리도 부족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 아래 숨긴글 속에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
감독과 연출
전작 아이언맨을 연출했던 Jon Favreau 감독이 속편 아이언맨 2까지 연출을 했습니다만, 속편에서의 연출은 전작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안전한 블록버스터의 공식만 따라가겠다는 시도조차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네요. 아쉽게도 케로군은 존 패브로우 감독의 다른 영화를 알지 못해서 이 감독의 원래 스타일이 그런진 모르겠지만, 영화의 흐름과 내러티브는 군데군데 끊기고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도 부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편보다도 못한 연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에는 매우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각 캐릭터간의 '케미스트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각자 따로따로 노는 바람에 오히려 이야기에 방해만 됩니다. 가장 눈에 걸리는 것은 새롭게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 특히 '어벤저스'와 관련된 부분으로... 전편의 엔딩 크레딧이 지난뒤 잠깐 얼굴을 비췄던 'Nick Fury'가 2편에선 주요 캐릭터가 되었고, 'Black Widow'라는 어벤저스 캐릭터와 'Captain America'의 방패와 'Thor'의 망치같은 아이템까지 등장시키면서 아이언맨 2는 '아이언맨의 속편'이 아니라 '어벤저스 예고편'으로 전락해 버렸고 이야기는 완전히 산으로 가버렸죠. 이런 방해물들을 최소화하고 미키루크가 연기한 'Whiplash'와 토니스타크, 로디 정도의 캐릭터에 집중했다면... 아이언맨 2도 훨씬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쯤되니 나중에 '어벤저스'가 따로 개봉하더라도 절대 보고싶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언맨 2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액션 장면이 재미없다는 겁니다. -_- 일전에 '스파이더맨 3'와 관련된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슈퍼 히어로 액션 무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멋지고 통쾌한 액션 장면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언맨 2에서는 액션 장면들이 전혀 멋지거나 재밌지가 않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하일라이트 씬에 잘 보이지도 않는 적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Whiplash가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연출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더군요. 그 외에 무려 '신물질'을 만들어내는 장면에서도 어짜피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연출하면서 사설이 길고 쓸데 없는 설명 장면들에 시간을 할애한 것도 빠른 호흡으로 넘겨버리느니만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의 연출이 하염없이 아쉽고 재미가 없다보니... 이 감독이 연출은 하지말고 계속 'Hoggan' 캐릭터로 배우로만 남는 건 어떨까 하능 생각이 듭니다. 이런 연출 스타일이 크게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면, 차기작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해리슨 포드를 캐스팅했다는 'Cowboys and Aliens'도 심히 우려가 됩니다.
배우와 연기
전작 아이언맨의 경우 주연인 토니스타크 역의 Robert Downey Jr에 전적으로 의존했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 연기를 충실히 수행한 덕분에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속편에서는 왠일인지 토니스타크의 카리스마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고뇌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산만한 주변 캐릭터에 매몰되어서 어렵게어렵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 자체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독특한 그 무엇, 재미를 주는 그 무엇은 보이지 않더군요.
위플래시=이반 반코의 캐릭터를 연기한 Mickey Rourke는 역시 기대했던대로 원숙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마치 원래 러시아인인듯한 느낌을 주는 완벽한 표정 연기와 대사... 60을 바라보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몸매와 액션 씬... 그리고, 이런저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종의 카리스마까지 정말 괜찮은 캐릭터 연기였습니다. 다만, 그런 캐릭터에게 주어진 시간과 장면이 너무 적었던 게 아쉬웠는데, 심지어는 주인공 캐릭터인 아이언맨과의 마지막 대결에선 대사조차 몇 마디 주지 않더군요. 미키루크는 80년대 에로틱 무비의 섹시한 이미지에서 확실하게 변신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씬시티', '레슬러' 등으로 이어지는 중년 액션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번 아이언맨에서도 비록 기회가 많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오히려 위플래시보다 연출자에게 사랑받은 캐릭터는 Scarlett Johansson이 연기한 블랙위도우였던 것 같은데요, 앞서 킥애스를 관람한 뒤에 아이언맨 2를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블랙위도우의 캐릭터는 킥애스의 '힛걸'에 비해 현격하게 매력이 떨어졌습니다. 단순히 캐릭터가 약한 것은 물론이고 스칼렛요한슨의 연기도 불만이어서... 일반적인 대사 씬에서는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것 밖에는 연기랄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액션 연기에선 안쓰러울 정도로 불필요한 똥폼을 잡는데 집착하면서... 열 세살짜리 아역배우가 연기한 힛걸보다 대사 연기든 액션 연기든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습니다.
그 외의 캐릭터들의 존재감은 거의 바닥을 칩니다. 전편부터 아이언맨을 보좌(?)하는 페퍼포츠 역을 맡았던 기네스펠트로는, 전작에 비해 비중도 증가하고 다양한 장면에 등장하지만...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은 떨어져 보이고 연기는 제자리 걸음을 한 것 같습니다. 로디=워머신을 연기한 Don Cheadle은 캐릭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연기 뿐 아니라 외모나 인상, 목소리까지 워낙 어울리지가 않은지라... 차라리 전편에서 로디를 연기했던 Terrence Howard가 최소한 외모라도 그나마 어울렸던 것 같네요. 역시 아이언맨의 적수인 '해머'를 연기한 Sam Rockwell의 경우에도 보다 눈에 띄는 악당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상당히 어색한 연기에 머물렀습니다. 인상적일 수 있었던 많은 조연 중에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연기를 보인 배우가 없었다는 점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아이언맨 2는 액션 블록버스터답게 물량에서만큼은 확실히 전작보다 앞서는 CG가 투입된 액션씬을 보여줍니다. 전작에선 최대 두 기의 로봇형 캐릭터의 비행과 전투를 보여줬던 것에 비해, 속편에서는 수십대의 머신들이 등장해 복잡한 전투 장면을 보여주고... 워머신과 아이언맨이 위플래시까지 다양한 주인공급 캐릭터의 CG에도 공을 쏟았습니다. 보기에 가장 괜찮았던 캐릭터는 역시 빛나는 채찍을 휘두르는 위플래시였는데 매력적인 캐릭터에 CG도 볼만했던 위플래시를 왜 그렇게 쉽게 죽여버렸는지는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_-a
그리고, F1이나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 위플래시가 처음 등장하는 모나코 씬인데요, 올 초 F1팬들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선택된 모나코 그랑프리가 열리는 바로 그 시가지 써킷에서 ( 비록 F1 머신은 아니지만 ) 오픈휠 머신이 달리는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좋더군요. 영상이나 사운드도 포뮬러 머신의 강렬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이 영화에서 오직 하나 괜찮은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내내 (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데도 ) 꾸준히 홍보에 힘쓴 '어벤저스'는 현재 2012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가 추진 중이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진행 상황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벤저스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가 대거 출연하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아이언맨, 헐크 등 기존에 이미 영화화되었던 캐릭터들은 물론... 2011년에 영화로 등장할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등이 한꺼번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상당한 팬층을 보유한 만화 시리즈들의 결합으로 이슈가 될만하겠지만, 마블 코믹스도 제한적으로만 알려진 우리나라에서까지 제대로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여튼, 이번 아이언맨 2를 크게 실망스럽게 만든 주범이 어떻게든 어벤저스와 무리하게 이어붙이려는 시도 때문이었으니, 적어도 케로군에게는 어벤저스가 영화화되더라도 왠만해선 좋게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해 보입니다.
종합하자면...
아이언맨 2 자체가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졸작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제작비로 보든 관객의 기대치로 보든 크게 실망스러운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특히, 아이언맨 2를 보기 전에 킥애스를 보신 분이라면 그 실망의 정도는 몇 십배는 더 클 것 같네요. 야심차게 준비했던 여성 히어로 블랙위도우의 캐릭터는 힛걸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수준이었고, 관객들을 휘어잡는 연출도 킥애스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올 봄 최고의 기대작 블록버스터 중 하나였던 아이언맨 2가 비교적 저예산인 킥애스만 못했다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미키루크, 스칼렛 요한슨을 보기만 해도 좋으신 분들... 어벤저스나 마블 코믹스와 관계된 영화들이 나오기만 하면 쉽게 만족하실 수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을 제외한다면 아이언맨 2를 보려고 극장을 찾으시는 것을 극구 말리고 싶습니다. 대실망 그 자체였던 아이언맨 2에 대해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부문별 별점을 매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영상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초반 물량 공세만으로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될지 모르겠지만... 케로군에겐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영화였네요. 극장에서 만날 다음 블록버스터인 리들리스콧 감독의 '로빈훗'은 이렇게 실망스럽지 않으리라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