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축구는 철저히 미국적인 스포츠입니다. 미국에선 그냥 Football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에선 꼭 '미국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죠. 단지 규칙이 복잡하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규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열광하는 종목이 바로 미식 축구입니다.
케로군이 이번에 보고 온 "블라인드 사이드( Blind Side )"는 미식 축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미식 축구를 안다면... 그래서 블라인드 사이드의 의미가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면 더욱 감동적일 수 있는 영화겠죠. 하지만, 미식 축구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이 영화를 감상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초반에 필요한 미식 축구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어서라기보단...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이 영화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가... 스포츠라기보단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아주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어찌보면 아주 평범한 스토리의 휴먼 드라마로, 평일 밤 자정을 넘겨 TV 전파를 타는 무슨무슨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지만... 왠만한 휴먼 드라마를 내세운 영화, 심지어는 다큐멘터리보다도 훨씬 더 감정이 절제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신파를 싫어하는 케로군조차 좀더 감정을 자극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신파와는 반대의 극한을 달리더군요.;;; )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재밌다, 엄청나게 볼만한 영화다... 이런 말은 근본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영화였지만, 반대로 특별한 고민 없이 조용히 사색하면서 즐기기에 아주 좋은... 전형적이고 굉장히 잔잔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휴먼드라마 한 편을 보고왔다는 느낌이 드네요.
감독과 연출
John Lee Hancock이란 감독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감독입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아마 많은 분들이 연출에 감동해서 감독을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고, 케로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감독이었던만큼 당연히 그의 영화도 본 적은 없었는데, 일단 이번에 관람한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보여지는 연출의 특징은... '굉장히 전형적이고 장르적인 연출'이라는 점과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는 연출'이라는 점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연출에서 크게 흠을 잡을 곳은 없지만... 아무래도 '굉장히 전형적이다'라는 문제점은 연출에서 그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평범해도 이렇게 평범할 수가 없고, 딱히 모난 곳도 없으니 비판할 구석도 없달까요? '극도로 감정을 절제했다'는 면이 그나마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야기의 흐름이 고조되고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데도 영상이나, 배우들의 감정선이나... 무엇보다 음악에서 그 어떤 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군요. 이게 그럴 능력이 없어선지 일부러 그런 방향을 피해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깔끔한 영화를 만드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드가 스포츠 드라마로 기록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다고는 하지만, 사실 스포츠 자체에 대한 묘사는 그 양도 많지 않고 이렇다하게 인상적인 연출이 없습니다. 스포츠=미식 축구는 철저히 '소재' 역할에 머물고 대부분의 영상은 드라마에 투자가 되기도 했지만, 저예산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일부 소개된 미식 축구의 영상은 평범하기 그지 없죠. 그러나 이것도 감독의 재주라면 재주랄지... 미식 축구 장면에서조차 튀거나 크게 문제될 장면은 보이지 않게 무난하게 커버한 게 그나마 다행인 것 갈습니다.
케로군은 나쁜 것만큼이나 평범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런 점에서 블라인드 사이드의 연출은 낙제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닥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연출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는 훨씬 돋보일 수 있었단 생각도 듭니다. 일부러 그렇게 연출할리야 없겠지만... 말이죠. 배우와 연기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배우와 연기
블라인드 사이드는 Sandra Bullock을 위한 영화입니다. 이전까지의 산드라 블록의 연기와는 확실하게 무게감이 다른 연기를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는지...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을 수여했죠. '-' 평단의 찬사 뿐 아니라... 여성 주연 한 명의 이름을 건 드라마로는 최초로 박스오피스 2억불 고지에 오른 영화가 되는 등, 흥행에서도 - 그러니까 대중들 역시 그녀의 연기에 전반적으로 호평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까지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스피드'에서의 선머슴같은 어설픈 연기는 찾아볼 수 없고... 영화 내내 WASP 상류층 가정의 '부인'이면서 입체적인 캐릭터의 연기를 아주 잘 소화해냈습니다.
마이클오어 역을 맡은 Quinton Aaron은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만, 덩치는 크지만 다분히 내성적이고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강한 보호본능을 가진 주인공의 연기에 제격이었습니다. 특히, 퀸튼 아론이 자주 보여주는 그 처량한 눈빛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기 힘들 정도인데요... 실제로도 이 영화에 오디션을 보고난 뒤 퀸튼 아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함께 사는 집의 전기가 끊기고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는 등... 어찌보면 마이클오어와 거의 같은 힘든 시기를 보냈기에 가능했던 눈빛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기면에서 분명히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1999년생의 Jae Head였습니다. WASP 상류층 집안의 밝은 아들 S.J. 역을 수행한 제이헤드는... 자칫 침울해지고 가라앉을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끝까지 밝고 신나게 만드는데 기여했고, 거침 없는 대사 연기와 편안한 외모 덕에... 유일하게 영화가 끝나고 배우 프로필을 찾아보게 할 정도로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전에 '킥애스'에서 1997년생의 Chloë Moretz가 장래가 촉망된다고 했는데, 또다른 의미로 제이헤드군을 기대 리스트에 추가해야 될 것 같네요^^
그 외에 지명도가 높은 배우로는 Kathy Bates가 등장하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는 아니지만... 나름 재미있는 조연으로 빈틈 없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네 명의 배우를 빼고는... 딱히 문제점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얘기하기 미안하지만 병풍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 같네요. 연출도 튀지 않게 깔아주기만 하고, 주조연 네 명을 제외한 배우들도 병풍 역할에만 충실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문제의 주조연 네 명에게 영화의 운명을 맡긴 셈이 되었는데, 이들이 맡은바 임무 = 역할에 맡는 연기를 잘 소화해내면서 영화는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딱히 볼거리가 없는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회자될만한 얘기는 영화의 롱런에 대한 부분입니다. 무슨 타이타닉처럼 슈퍼 롱런을 기록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2009년 최고의 히트작이자 화제작 중 하나였던 '뉴문'과 같은 주말에 개봉해 3천만불 이상의 흥행으로 2위에 올랐고, 2주차에는 개봉주보다 더 많은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이면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하지만 블라인드 사이드의 롱런 흥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7주간 주말 1천만 불 이상의 극장수입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Top 5의 자리를 지킨데 이어... 10주간 박스오피스 Top 10에 머물면서 미주에서만 총 2억5천만불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 영화의 예산이 채 3천만불도 들지 않은 저예산(?) 영화였던 걸 생각하면 초대박 흥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뉴문' 뿐 아니라 '아바타', '셜록홈즈' 등 대형 흥행작들 사이에서 보여준 성과라... 블라인드 사이드의 놀라운 흥행 성적은 산드라 블록의 아카데미 수상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원래, 산드라 블록이 맡은 '리앤'의 역할은 줄리아로버츠에게 제안되었었다고 하고, 산드라 블록 역시 여러 차례 영화의 출연을 고사했었다고 하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초대형 흥행작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인 것 같네요^^
종합하자면...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국에선 엄청나게 흥행에 성공했지만 국내에서의 흥행은 ( 꼭 케로군이 극장에 갔을 때 자리가 많이 비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 쉽지 않아보입니다. 꼭, 미식 축구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미국 상류층의 정서를 이해하고 영화의 감동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조금 냉정한 시각으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다분히 미국스러운 미국인 입장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그리 맘 편하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 각종 영화 평론 사이트에서 블라인드 사이드에 나쁜 점수를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하네요. ) 결국... 편안하게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는 꿈꾸고 싶은 기적(?)을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매력이 아주 높은 흥행작이겠지만 우리네 정서로 볼 때는 적응하고 따라가기도 어렵고, 경우에 따라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영화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전제로 막이 오르고, 엔딩에 실존 인물들의 사진으로 공감을 더하게 하지만... 중간에 냉혹한 시선으로 바꿔타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살짝 부족해 보이기도 하네요.
물론, 그렇게까지 실눈을 뜨고 보지 않는다면... 그저 단순하게 영화의 이야기만 따라간다면... 블라인드 사이드는 보편적인 영화 관객이 어렵지 않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 케로군도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합니다. ) 간혹 너무 매정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자신의 성공이 전부인 사람들에겐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고요. 종종 TV 전파를 타는 신파적인 다큐멘터리보다는 훨씬 더 좋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니까, 보통의 영화팬들께선 기회가 되신다면 (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어서 -_-a ) 꼭 한 번 보시길 권해봅니다.
연출 ★★★☆ 연기 ★★★★ 영상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감독의 연출이 너무 차분하기만 하지만 주요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상쇄하고, 딱히 영상미나 작품성이 뛰어나진 않지만, 누구나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기에... 마케팅만 잘 해준다면( 국내에선 실패했지만ㅠㅠ ) 적당한 흥행성까지 갖춘 괜찮은 영화로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