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도 헐리우드 기대작들이 여럿 쏟아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인크레더블 헐크'의 감독인 루이 레테리에가 연출하고... '터미네이터 4편'과 '아바타'로 이젠 익숙한 얼굴이 된 '샘 워딩턴'이 주연을 맡아... 1981년작으로 반 고전(?)인 'Clash of the Titans'를 리메이크한다기에 유난히 기대가 컸던 "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을 보기로 하고, 다시 한 번 사운드에 신경을 써서 지난 주말 다시 영등포 CGV THX관을 찾았습니다.
4K로 촬영했다는 이슈도 있고... 위 포스터에 써 있는 것처럼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3D 상영도 있었지만, 반 고전의 리메이크이기도 하고 고풍스럽게 제대로 감상하려고 2D 관람을 선택했는데요... 하지만, 이건 왠걸... 어린이들을 위한 올림포스 가디언의 실사판을 보는 듯한 영화에 헛 웃음만 흘리고 극장을 나섰습니다.
감독과 연출
Louis Leterrier 감독은 연출작이 많지는 않았지만, 데뷔작이었던 'Danny the Dog'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액션 영화였고... 'Transporter 2'의 액션 연출 역시 꽤 괜찮았기 때문에 다소 기대할만한 감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The Incredible Hulk' 전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리앙 감독의 'Hulk'에 비해 낫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 그 말이 루이 레테리에 감독이 리앙 감독보다 낫다는 뜻은 결코 아니죠. ) 판타지 액션에 까지 진출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했죠.
그.러.나. '타이탄'에서 레테리에 감독이 판타지 액션 영화다운 연출을 거의 해내지 못합니다. 10년 정도 과거로 시계를 돌릴 듯한 구태의연한 장면, 뻔한 대사, 맥을 끊는 편집 등... 그 어느 면에서도 제대로 된 연출을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그나마 화려하고, 환상적이고, 멋있는 장면이나 액션씬이라도 있었으면 모르겠으나... THX 관이 민망할 정도로 사운드에서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예고편에 나왔던 '로빈 훗'의 액션 장면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 역시 리들리 스콧 -_-b )
뒤에 볼거리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의 CG는 결코 수준 이하거나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꽤 괜찮은 CG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역시 연출이었는데요... 특히 '신'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 가장 문제였는데, 올림포스의 신들이 꼭 특촬물을 보는 같은 후광을 달고 다니셔야 했는지는 정말 의문입니다. 기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대체한 새로운 이야기들도... 새로운 감흥을 주거나 기막히 반전을 연출하지 못하고, 그나마 그리스로마 신화에 의지해 어렵게 끌어가던 내러티브마저 무너뜨리고 맙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이 감독이 연출을 통해 성공적으로 보여 준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인데요, 아무래도 판타지적인 연출은 레테리에 감독과는 궁합이 영 맞지 않나봅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각본, 연출은 맨 마지막의 결론부인데요... 안 그래도 어이 없던 이야기는 마지막( 차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만 )에 이르러 완전히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그렇다고 무슨 반전도 아닌 헉 소리 나오는 뻔한 결론에 도달하니,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게 뭔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더군요. 감독과 연출에 대해선 절대 기대해서도 안 되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없습니다.
배우와 연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의 주연으로 낙점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남아 있는 작품 '터미네이터'에 주요 배역으로 추천하면서, Sam Worthington은 2009, 2010년 스크린을 장악한 배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의 속편에서는 비중이 매우 큰 '조연'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힘을 빌어야 했고, '아바타'에서는 본인의 동작과 얼굴을 스캔하긴 했지만 왠지 본인의 연기라는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요... 드디어 또 하나의 대작 '타이탄'에서 확실한 단독 주연을 맡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샘 워딩턴의 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그냥'의 범주를 넘지 않는데요, 페르세우스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에서의 마커스나, 아바타에서의 제이크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연기력의 한계인지 연출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샘 워딩턴의 연기에 기대를 하고 이 영화를 보는 것만은 만류하고 싶네요.
조연 중에서는 Liam Neeson과 Ralph Fiennes가 각각 제우스와 하데스로 등장하는데, 이름값과 연기력을 익히 인정받았던 이런 대형 배우들조차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기대 이하로 보이더군요. 앞서 잠깐 얘기했던 특촬물같은 '신' 연출도 이 분들의 연기를 가리는데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여성 조연으로 등장한 안드로메다 역의 Alexa Davalos나 이오 역의 Gemma Arterton가 그나마 분위기라도 화사하게(?)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연기가 일단 밋밋하고 너무 평면적인 캐릭터인데다가( 이 영화에 입체적인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_- ) 그리스의 초절정 미녀나 반인반신의 아름다움 같은 느낌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딱히 누구의 이런 연기가 문제였다고 이야기 할 것은 없지만... 배우들의 이름 값과 연기력을 생각하면 확실하게 기대 이하의 연기들을 보여줬던 것 같고, 특히 주요 배역의 샘 워딩턴, 리암니슨, 랄프 파인즈 등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작품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지난 '셔터 아일랜드'에 이어서 영등포 CGV THX관에서 '타이탄'을 관람했는데요, 디지털 3D까지 포기하면서 찾은 THX관의 막강한 사운드 시스템이 무색하게... 이 영화에선 일단 사운드에서의 감흥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영화도 디지털 상영이 아니어서 더욱 아쉬웠는데요... 기왕이면 THX 상영관에선 디지털 상영을 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3D 상영까지 고려한 판타지 액션 영화 답게 '타이탄'은 상당한 양의 CG로 범벅을 했는데요... 어이 없는 연출과 무난하기만 한 배우들의 연기에 비해서 CG의 질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생뚱맞은 장면에 등장한 CG들과 편집에 문제가 있는 영상 몇 개를 빼고 나면... 전반적으로 어색하지 않고 신화적인 이미지를 잘 살려냈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다만, CG와 특수 분장을 동원해 만들어낸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에는...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화면, 다른 영화에서 등장했을 법한 디자인 등이 곳곳에서 눈에 띄어 독특한 이 영화만의 세계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라이아이 자매들이 등장할 때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이미지가 느껴지고, 다른 많은 장면들은 WoW나 온라인 게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 몇몇 대사도 그렇지만 그라이아이 자매나 메두사를 찾아 갈 때는 40인 레이드 가는 느낌이... ) '크라켄'의 얼굴이 처음 등장할 때는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Gears of War의 '버서커'가 생각나더군요. -_-a
영화가 끝나고 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풋' 하고 헛웃음을 터뜨리더군요. 한 마디로 '유치하다'고 까지 할 수 있는 '뻔뻔하게 평범한' 이야기가 우선 어이 없고, 거기에 대충대충 만든 것 같은 어설픈 연출과 편집, 특징 없는 연기가 곁들여져... 헐리우드 대작 '특촬물' 한 편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유치함도 종종 맘 편히 즐길 때는 나름 재미있기도 하니... 꼭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종합하자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영화...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올림포스 가디언'과 비교할 때나 써먹을 영화... 딱히 나쁜 것도 없지만, 그렇게 특징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영화가 '타이탄'이었습니다.
물론 1981년작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리스로마 신화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기도 하죠.
무념무상의 세계로 약간 비꼬듯이 얘기해서 재미있게 볼 수도 있는 영화지만... 두고두고 생각해 보면 진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에, 올해 최악의 영화 후보 중 하나로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지간히 궁금하지 않으시면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