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에 이어서 계속해서 봄 기대작들을 극장에서 만나고 있습니다만... 지난 주 졸작 타이탄의 압박에 워낙 크게 치였던지라 완성도가 떨어지는 흥행성 위주의 영화는 피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완성도 면에서는 충분히 기대할만한 검증된(?) 감독과 배우가 함께하는 영화지만... 다소 불편한(?) 소재와 주제 덕분에 흥행성에서는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일찍부터 알려진 영화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선택된 영화는 이미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이미 멋진 호흡을 보여줬던 Paul Greengrass 감독과 Matt Damon 주연의 "그린 존( Green Zone )"이었는데요, 밀리터리/스릴러/액션이라는 장르에 매우 껄끄러운 소재인 이라크전의 뒷얘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아주 제한적인 관객들에게만 사랑받을 수 있는 영화로 보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케로군에게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자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감독과 연출
폴 그린그래스 감독하면 역시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시리즈를 시작했던 Doug Liman 감독의 '본 아이덴티티'의 성공을 이어, 두 편의 속편을 전작에 부끄럽지 않게 성공적으로 연출해냈죠. 그리고, 본 얼티메이텀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신작 '그린 존'의 연출도 훌륭합니다.
일단, 그린 존의 연출은 본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그 느낌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핸드헬드로 캐릭터들을 따라다니는 기본적인 연출 방법은 그린 존에 그대로이어지고, 필름그레인 가득한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사실적인 액션도 제이슨 본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타겟을 좇는 정보 기관의 모습 역시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한 가지 전에 보지 못한 연출이라면... 이라크전을 묘사하는 밀리터리 액션의 연출인데요, 아마도 미군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는 않았을텐데도 꽤나 실감나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액션 씬에서의 사운드와 현장감 넘치는 화면은 어떤 면에선 '블랙 호크 다운'에 견줄만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린 존을 통해 감독이 전달하려고하는 메시지는 물론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하지만, 그 정치적일 수 있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은 그다지 딱딱하지만은 않아서 좋더군요. 격렬한 포화의 한 가운데에서, 혹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짧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 은근히 주제 의식을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음모론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그 속에서 다소 직접적으로 음모론의 대상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렇게 어색하고 딱딱하지 않게 이런 이야기를 끌어낸 점은 연출이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본 시리즈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메시지가 너무 분명해 다소 뻔하고(?) 스릴러다운 반전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영상 자체도 약간 푸른 느낌의 본 시리즈가 약간 누런 느낌의 그린 존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이런 면들 때문에 본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면서, 기막힌 반전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배우와 연기
그린 존은 '맷 데이먼'을 위한 영화입니다. 앞으로 그린그래스 감독의 페르소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맷 데이먼'이 홀로 이야기를 이끌고 홀로 고생하며, 마지막까지 홀로 돋보입니다. 맷 데이먼은 자신의 연륜이나 이미 검증된 연기력에 부족하지 않은 열연을 보여주는데요... 간혹 영화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너무 '제이슨 본'과 비슷해서 아쉽다고 느끼시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하지만, 정작 그린 존에서 맷 데이먼의 연기와 비슷한(?) 연기라면 초인적인 특수 요원이었던 제이슨 본보다는 오히려 2005년작 '시리아나'의 브라이언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혹자는 이 모든 걸 통틀어서 멧 데이먼의 연기가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마스크에 따라다니는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요구하는 연기에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만큼은 결코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맷 데이먼 외에 눈에 띄는 조연은 많은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던 'Brendan Gleeson' 정돈데요, 브렌든 글레슨의 이름 값이나 익히 알려진 연기력을 생각하면... '그린 존'에서는 굉장히 화끈한 연기를 보여줄 뻔 하다가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더군요. 차라리 '갱스 오브 뉴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의 연기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기타 영어권 배우들의 연기는 그냥 그렇게 무난한 정도로, 기억에 남을 정도의 인상적인 연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랍어로 이야기하는 이라크인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현장감 넘치고 인상적이었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진 아랍권 배우들의 연기는 '서구인들이 보는 관점'에 맞게 맞춰진 건지... 아니면 정말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건지... 케로군에게 충분한 배경 지식이 없는 것 같네요.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눈에 걸리는 연기를 하지 않고... 무엇보다 밀리터리 액션에 걸맞는 병사들의 움직임과 액션 연기는 매우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대사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몇몇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 '튀는 게 없어서' 아쉬운 정도일까요? 맷 데이먼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너무너무 멋지고 인상적인 연기였다고 따로 언급할 일은 별로 없는... 그런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현장감 넘치는 짜릿한 영상과 그에 걸맞는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근처 극장들에선 디지털 상영을 찾기 힘들더군요. ( 이런 영화를 CGV THX관에서 디지털로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 게다가 대부분의 극장에서 교차 상영 대상이었고, 그나마 좌석이 절반 이상 비어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는 영화를 피하고 밀리터리 액션도 인기가 많지 않은... 전반적인 우리나라 관객들의 성향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성향은 사실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아카데미에서 작품, 각본,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The Hurt Locker' 역시 저예산(?) 영화라고는 하지만... 정작 북미에서의 흥행 수익은 1,600만불에 불과했었죠.
하지만, 이 영화의 영상, 사운드를 포함한 전반적인 전쟁의 묘사와 연출은 앞서 언급했던 '시리아나'나 '블랙 호크 다운' 같은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본 시리즈의 느낌까지 반쯤 혼합되면서 굉장히 사실적이라는 느낌까지 덧씌워진 느낌입니다.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하더라도( 아마도 월드와이드 흥행으로도 본전 뽑기가 힘들어보입니다;; ) 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소장해야할 DVD/Blu-ray 리스트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린 존 = '본 시리즈' + '이라크전의 황토색 밀리터리 액션'
가장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은... 역시 제이슨 본의 배우가 주연을 연기하지만, 제이슨 본같은 초인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이 단점만 참아줄 수 있다면... 많은 영화 팬에게 그린 존은 아주 좋은 영화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합하자면...
몇 주 간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타이탄'이 흥행에서 제법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무거운 소재와 주제 때문인지 '그린 존'은 오히려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판단이야 어찌됐건 케로군에게는 몇 배나 재미있는 영화였고,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기도 한 영화였습니다. '본 시리즈'와 '제이슨 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격렬한 밀리터리 액션과도 잘 어울렸던 것 같고... ( 케로군 생각으론 그다지 저치적이지도 않은 ) 영화의 주제 의식에도 상당 부분 공감하기 때문에, 살짝 무거운 액션 스릴러나 밀리터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