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대니 보일, 샘 멘더스, 샘 레이미, 바즈 루어만까지... 헐리우드 거장들의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했고... 또 한 명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조만간 공개할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 된 배우는? 글의 제목을 보고 들어오셨다면 어렵지 않게 맞추셨겠지만, 이 문제의 정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입니다.
그렇게 흥행성은 따지지 않고 거장들의 ( 종종 난해한 ) 작품들을 연달아 선택해 온 DiCaprio를 다시 선택한 거장 Martin Scorsese 의 신작 스릴러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가 국내에 개봉됐습니다. 꽤나 기다려 온 영화기도 하고,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영화기도 해서... 매우 피곤하긴 했지만, 개봉 첫 주말을 놓치지 않고 CGV 영등포에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이번에는,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특히 사운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 케로군은 왠지 액션보단 스릴러의 사운드가 더 중요하단 생각입니다. ) 다행히 디지털 상영을 하고 있는 THX관을 선택했습니다.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를 가진 영화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 '참 잘 만들었구나~'란 말이 절로 나오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습니다. 어렵고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영화적 장치... 특히 강력한 배경 음악과 격한 영상들을 잘 배치해 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근 많이 접했던 SF나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 영화들과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오랜만에 정통 드라마/스릴러의 수작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감독과 연출
Martin Scorsese 감독은 거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감독입니다. 이미, 30년 전에 '택시 드라이버'나 '성난 황소'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고... 이후에도 선굵은 작품들을 꾸준히 연출해 온 헐리우드 영화의 최고의 정통파 감독 중 한 명입니다. 최근(?)에는 케로군이 아주 좋아했던 음악 영화( 다큐멘터리와는 좀 다른 접근이라 ) '샤인 어 라이트'를 연출했고, 20여 년 이상 인연이 없던 오스카와도 2007년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이제는 더 아쉬운 게 없는 거장 감독의 반열에 오른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팀 버튼 감독이 기괴한 어른들의 동화 세계,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규모있는 화려한 영상, 리들리 스콧 감독이 스펙타클과 대하드라마라는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한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색깔은 정통파 드라마와 스릴러를 ( 종종 다소 마초적인 ) 자신만의 강렬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중에는 '디파티드'처럼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하거나 '셔터 아일랜드'처럼 소설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소재라도 스콜세지 감독의 손을 거친 뒤에는 '마틴 스콜세지스러운 영화'로 만들어지는 느낌이랄까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은 정통파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정공법을 따르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상 가능한 영화적 방법이라면 도입하지 못할 것이 없는 듯, 원칙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상당히 자유분방한 다양한 요소들을 도입합니다. 또, 이야기의 흐름, 이미지, 음악, 음향 효과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어떻게 완성하는가'에 집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셔터 아일랜드'에서는 우선 강렬한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데요, 이야기의 선을 따라 강렬한 음악과 섬세한 음악이 일상의 한계보다 조금 더 나아가면서 긴장을 유발하는데, 특히 영화 도입부 '테디'가 배에서 내려 수용소(?)로 들어갈 때의 강렬한 음악이나, 박사의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하지만 기괴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말러의 음악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어두운 밤의 검푸른 빛깔과 '광과민반응'을 상징하는 매우 밝은 흰색의 대비나... 영화 전반에서 '테디'를 감싸고 있는 '환영'과 '기억'의 이미지 연출처럼 영상의 연출도 매우 강렬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영화 전체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는 각 요소들의 높은 완성도 덕분인지... 어려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고, 결론에서 감독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들을 보고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와 연기
30년 전부터 걸작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여러 영화들을 만들어왔고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스콜세지 감독이 2000년대 들어서만 무려 네 번째 주연으로 선택한 배우가... 바로 Leonardo DiCaprio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로미오+줄리엣'이나 '타이타닉'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캐릭터가 살아있는' 역할에 도전하기 위해 때론 흥행성을 포기하면서도 작품성에 집착한 덕인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눈에도 들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이제는 디카프리오가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가 아닌가하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8년 전 '갱스 오브 뉴욕'에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했을 때만 해도 그 선택에 상당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비난을 견뎌내면서 도전을 계속한 덕인지 이제는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다하면 왠지 작품성 있는 영화(?)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디카프리오를 위한 영화입니다. 앞선 '디파티드'가 스콜세지 감독에겐 오스카 감독상을 안겨줬지만... 쟁쟁한 조연들을 거느리고 주연을 맡았던 디카프리오는 오스카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었는데요, 딱히, 오스카 도전을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에선 주연 한 명에게 확실하게 시선이 모아집니다. 디카프리오는 ( 이제는 익숙해진 ) 성격파 배우로서의 연기를 잘 수행해내는데요, 튀지도 않고, 멋부리지도 않으면서 복잡하게 뒤엉킨 캐릭터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반전이란 것이 다른 스릴러에 비해 대단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객은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디카프리오와 동화되어 극중 '테디'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하고, 마지막에는 함께 충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조연 중에서는 아무래도 짬밥이 있는(?) 연기파 배우 벤 킹슬리가 눈에 띄는데요, 워낙에 인상이 강하다보니 늘 그 역할이 그 역할이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중요한 배역을 잘 연기해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다보니(?) 어쩔 수는 없지만, 벤 킹슬리 외에는 그닥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 준 배우는 없었다는 정도겠네요. ( 사실상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 줄 기회 자체를 다른 배우들에겐 주지를 않습니다. ) 남은 배우들은 병풍 연기에 걸맞는 캐스팅(?)을 해서인지 두 시간의 런닝 타임 동안 조금씩 튈만도 한데
결과적으로 디카프리오의 모노드라마 +@ 정도의 영화였던 덕분에 돋보이는 주인공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디카프리오의 훌륭한 연기와 그를 받쳐주는 벤 킹슬리의 적절한 조연만으로도 배우와 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앞서 적었듯이 '셔터 아일랜드'는 영등포 CGV THX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이전에 THX관에서 관람했던 '서로게이트'의 경우처럼... 사운드는 나름 좋으나 화면이 흐릿(?)한 경우도 아니고 디지털 상영의 쨍한 화면에 격렬하면서도 섬세한 사운드가 곁들여지니 스릴러에 대한 몰입감은 왠만한 공포 영화의 그것을 훨씬 상회했던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영상을 종종 사용하기는 했지만 따로 볼거리가 있었다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영화에, (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섬이 멋지고 바다가 아름답고... 그런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 '들을거리'가 있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조금은 눈에 걸렸던 장면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눈에 걸리는 CG도 있었고, 아역 연기자들의 시체 연기가 살짝 부족해서 엄한 곳에서 시선이 가기도 했습니다. 다만, CG나 특수효과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참아줄만한 정도였달까요? 그다지 욕을 먹을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덕에, 차기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함께 하는 '인셉션'이 기대되네요. 영상미나 소재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은데, 여러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봤던 디카프리오가... '한계가 없다는' 영화에서는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지... 올 여름이 기대됩니다.
종합하자면...
거장의 영화답게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디카프리오를 중심으로 연기도 인상적인 영화... 물론 기본적으로 흥행을 추구하는 그런 종류의 영화는 아닙니다만... 이 영화의 이야기 흐름과 반전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꼭 재미없는 영화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근래에 본 영화 중에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균형 잡힌 보기 드문 수작이었던 것 같은데요, 앞서 평가했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부문별로 별점을 매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화면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마지막으로 위의 포스터와 묘한 대비를 이루는 또다른 포스터 이미지를 하나 더 첨부하겠습니다. ( 국내에는 위에 첨부한 이미지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해외에서는 아래 이미지가 주된(?) 포스터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