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들어서면서 은근히 극장을 자주 찾는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극장에서 채 열 편의 영화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올해는 벌써 다섯 편째 극장에서 감상을 했군요. 2월 들어 처음 보게 된 영화는 송강호, 강동원 주연, 장훈 감독 연출의 "의형제(義兄弟)"였습니다.
의형제라는 영화를 본 뒤에 케로군에게 인상적으로 남는 두 개의 키워드는 '무난함'과 '강동원'이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기 전에 한 마디로 영화가 굉장히 무난한데요, 다행히 나쁜 쪽으로 무난한 뻔함과 특징 없음 보다는... 별다른 부담 없이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무난함이나 헐리우드 영화의 각본을 보는 것같은 꽤나 잘 다듬어진 이야기의 무난함이란 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동원의 우월한 기럭지... 남자가 보기에도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더군요. 눈에 거슬리지 않는 무난한 이야기와 강동원의 기럭지 덕에... 또 하나의 힘있는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감독과 연출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으로 소개를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케로군은 '영화는 영화다'를 보지 못했습니다. ( '장훈'이라는 이름에는 전설적인 야구 선수의 이름만 떠오르는 게 현실... oTL )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트레일러를 통해 접한 '영화는 영화다'는 관심이 가는 영화긴 했는데, 그렇다고 굉장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 한 편으로 장훈이라는 이름이 평단에서 부각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에 이은 장훈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 바로 이 '의형제'입니다. '데뷔작에 이은 두번째 연출작'이라는 타이틀에서 케로군이 쉽게 예상하는 이미지는... 어쩌면 앞서 '페어러브'의 신연식 감독이 보여줬던 것 같은... 어느 정도는 미숙하지만 실험적인(?) 그런 느낌인데, '의형제'에서 보여주는 연출은 완전히 그 반대편에 서있다...는 느낌입니다. 너무나도 무난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살짝 밋밋한 것도 사실입니다. ) 원숙하고 노련한(?) 연출이랄까요? 요즘 충무로에 발을 들인 한국 감독들의 기본기가 탄탄한 건지 시스템이 잘 받쳐주는 건지 관객들을 무난하게 이야기에 잡아두고, 무난하게 결말까지 끌고가는 힘에서... 최근 등장한 감독들은 신예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영화의 연출에 좋은 점수를 줄 수만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너무 무난한 연출, 너무 적당한 유머, 너무 눈에 보이는 이야기의 흐름,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전까지... 무난한 것만으로는 '매력'으로 작용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 자칫하면 특징 없음으로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 젊은 신인(급) 감독으로서의 패기와 독특한 자기 영화 세계 구축을 위한 도전 같은 것이 없는 것도 아쉽고요. 너무나 안전한 길로 갔기에 흠잡을 구석이 많지 않은( 없는 건 아닙니다만 )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그런 비판이나 지적을 피해가기 위해 너무 안전빵의 연출에만 전념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또 아쉽습니다.
배우와 연기
이제 배우 이름만으로도 무슨 연기를 할지가 짐작되는 중견 배우 송강호... 이 영화에서도 예의 그런 연기를 보여 줍니다. 캐스팅의 목적이 그러했을 것 같기도 하고 감독의 의도도 그러했을 것 같지만, 이번 영화에도 '새로운 연기 도전'은 전혀 보이지 않는 대신... 무난하게 중심을 잡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 무난함이라는 키워드에서 감독의 연출 방향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
반대로 강동원의 연기는 확실히 눈에 띕니다. 전작들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전우치'의 중간 쯤 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현대판 '슬픈 눈'의 느낌을 잘 드러냈다고 할까요? 현재의 강동원의 연기가 결코 완성형의 '절정의 연기'까지는 아님이 분명하지만, 영화 하나가 나올 때마다 성장해 왔고 의형제에서 또 한 단계 발전한 연기가 보이면서... 이제는 자기 연기 세계가 분명한 송강호와 짝을 이뤄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는다'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할만한 연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게다가 연기력이 부족하던 시절에도 눈을 즐겁게 해 주던 강동원의 기럭지... 이 영화에서는 연기력까지 뒷받침해주면서 상당한 상승 효과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차세대 장동건'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
무난하게 중심을 잘 잡은 송강호의 딱 기대만큼의 연기와 우월한 기럭지에 한층 성장한 연기력으로 무장하고 핵심 캐릭터를 잘 연기해 준 강동원의 호연은 칭찬할만 합니다. 다만, 이 영화에 딱 두 사람만 등장하는 게 아닐텐데 조연들에게는 아쉬움이 아주 많이 남습니다. 일단, 조연들의 출연 분량이나 역할 자체가 굉장히 제한되어 있고, 충분히 설명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각각의 조연 캐릭터들이 좀 더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여지도 분명히 있지 않았나 싶은데, 결과적으로는 눈에 띄는 조연이 별로 없었던 게 아쉽습니다. 다만, 전작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장훈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고창석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 이러다가 배우 고창석이 장훈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는 건 아닐지... )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영화의 소재는 남북 첩보 요원의 대결(?)이라는 살짝 민감한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의 지향점이 이념이나 임무보다는 인간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에... 민감하다 싶은 부분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버립니다. ( 이것 역시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는 무난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 덕분에 몇 부분에서는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비약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이야기 진행과 연출의 힘으로 덮어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영화의 화면은 예의 그 한국 영화다운 '살짝 인화 잘못한 느낌'에 더해서 채도가 떨어지는 화면으로 일관합니다. 영화의 색감만으로 얘기하자면, 올해 보았던 '전우치', '페어러브' 등 한국 영화와 비교해도 좀 더 떨어지는 느낌? 어쨌든, 영화의 연출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법론에서 ( 어떤 면에서 ) 헐리우드적인 완성도(?)를 보여줬다면, 반대로 영화의 화질은 고질적인 한국 영화의 색감 부족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사운드에 있어서도 대단한 기대를 한 건 아닙니다만, 많은 도심 총격씬과 자동차 추격씬까지 있는데... 살아있는 사운드(?)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도 아쉽네요. ( 물론, 영상과 사운드도... 눈과 귀를 거슬리게 하지는 않는... 무난한 레벨이긴 합니다. )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얘기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비교적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은 덕분에... 각종 매체에서는 이 영화가 '아바타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얘기를 하는데... 그런 표현과 기대는 오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난한 영화의 힘에 강동원이라는 ( 이제는 흥행카드로 인정받을만한 ) 배우의 힘에 더해, 아바타 말고는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는 상황에 치닫다가 몇 주만에 개봉한 기대작이라는 점 정도... 그 이상의 기대를 하는 건 영화의 감상을 오히려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분명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무난한 영화겠지만, 아바타와 경쟁하는 무슨 대단한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으신다면 크게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종합하자면...
신예답지 않은 노련한 연출을 보여 준 장훈 감독과 그가 이뤄낸 무난한 결과물에 더해 송강호의 충실한 연기 + 강동원의 우월한 기럭지에 성장한 연기력까지... 최근의 한국 영화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수작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피가 튀는 몇 개의 액션 씬을 제외한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영화의 /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무난하게 즐기고, 종종 즐겁게 웃고, 영화가 끝나면 가볍게 자리를 뜰 수 있는... 충분히 재밌는 영화로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무난해서 살짝 아쉬웠던 연출과 빛바랜 화면, 살짝 주제 의식이 희미하다는 점을 제왼한다면 어느 부분에서도 나쁘지 않은 수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영화들처럼 부문별로 별점을 주면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