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올렸던 '파라노말 액티비티'에 이어 자의 반 타의 반 바쁜 일들을 피해(?) 심야에 관람한 두번째 영화는 신연식 감독, 안성기-이하나 주연의 "페어러브( Fair Love )"였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이 영화는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아쉬움을 적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른바, 교차 상영으로 개봉하자마자 조조와 심야밖에는 상영하지 않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 작품인데... 주로 공략할만한 나잇대의 관객들이 과연 조조와 심야에 극장을 찾게 될 일이 없는 이상, 이런 교차 상영으로는 흥행 참패는 불보듯 뻔한 것이었죠. 덕분에(?) 케로군은 극장에 채 스무 명이 들지 않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렇게 감상한 영화 얘기를 해 보지요.
감독과 연출
페어러브는 신연식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지만... 케로군은 감독의 전작 '좋은 배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영화에 대한 정보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두 영화 모두 저예산으로 신연식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정도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 애매하긴 하지만 페어러브도 나름 저예산...인 편이죠 ) 그렇게 감독과 연출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데뷔작(?)에나 어울릴법한 풋풋함이 남아있습니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두번째 영화에서는 용서받지 못하는 단점이 눈에 걸린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어쨌든, 케로군이 보기에는 '습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대충 만들었다는 뜻이라기 보기엔... 어깨에 힘을 빼고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를 편하게 그려냈다는 이야기인데... 소재(?)와 장르(?)가 실험적인 시도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영화 내내 이쪽저쪽에서 삐그덕거리는 통에, 많은 관객이 불편해할 수도 있어보입니다.
감독과 각본을 겸하고, 잘짜여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영화를 잘 찍는 감독이 즐비한 시대에... 뭔가 불협화음을 자꾸 집어 넣는 신연식 감독의 연출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습니다. 그냥 보통 관객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물론이고... 차분하고, 로맨틱하면서도 리얼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네요.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명장들이 적지 않은 우리 영화계인데... 그런 영화들과도 분명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게 신연식 감독의 고집스런 연출이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영 맘에 들어하지 않으실 분이 다수가 될 것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쉽다면... 각본의 문제인지 편집의 문제인지...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고, 갑작스런 불규칙 바운드를 남발한다는 점... 캐릭터 한 명의 감정선까지는 따라가겠는데... 두 명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 그리고, 아주 우수꽝스런 장면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것까진 좋은데... 그 분위기가 다음 장면까지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 되겠네요.
배우와 연기
감독이 신인에 가까운 것처럼 주연을 맡은 이하나 역시 신인에 가깝습니다. 연기 데뷔가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였고, 영화 데뷔는 2007년 '식객'으로 연기 경력도 많지 않은데, 영화는 이 '페어러브'가 두번째 출연작입니다. 케로군은 연애시대, 식객 등 이하나의 출연작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심지어는 이하나가 진행했던 '이하나의 페퍼민트'도 본 적이 없어서, 이 영화에서 신인다운(?) 연기를 보여준 이하나의 연기가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뭔가 나이는 찼는데 어린... 그러면서도 속 깊은 여성다움이 묻어나는 연기가 적절해 보였고... 손예진과 이나영을 섞어놓은 것 같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하나의 다른 연기를 보았던 옆사람은 페어러브에서의 연기가 별로 였다고도 하는군요. '-';
신인 아닌 신인 감독과 신인 아닌 신인 주연 배우와 함께 출연한 ( 옛 국민 배우 ) 안성기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의외로(?) 멜로 연기를 많이 하지 않았던 배우 안성기라지만... 어떤 연기든 충분히 소화하는 깊은 내공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성기가 연기한 캐릭터와 약간(?)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케로군도 어느 정도의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또한 연기를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안성기의 경우 너무 안전한 연기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하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튀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인데 뭔가의 틀에 갖혀 버렸습니다. 해서, 너무 고공 행진하는 안성기의 연기와 상승에 실패한 이하나의 연기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말지요. 이게 연기의 실패인지 연출의 실패인지 뒷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정말 잘 된 영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놓친 것 같아 아쉬운 지점입니다. 거기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법한 조연들의 비중이 관객의 기대보다(?) 훨씬 적다는 점도 각본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모를 아쉬움을 더해줍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사진, 카메라가 핵심 소재로 엮으면서 보여주려고 한 영상만큼은 이 영화를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상영 시간 동안 앵글과 영상만큼은 꽤나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 이건 아마도 감독의 의도인 것 같은데 ) 그 영상이 압도적이지는 않습니다. 영상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영상미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거리까지는 없달까요? 이야기의 배경을 장식하는 무대 장치 이상의 역할은 애시당초 부여하지도 않았고... 영화의 다른 요소를( 특히 단점을 ) 잠식할 정도의 화려한 영상까지는 아닙니다. 감독이 '사진 매니아'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영상 쪽이 꽤 좋은 점수를 받을만큼 괜찮았던 반면, 음악은 이 영화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잔잔하고 로맨틱한 영화의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배경의 음악인데... 턴테이블을 주요 소도구로 영화의 전면에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들은 서로 어우러지지 않고 각개 전투에 열을 올립니다. ㅠ.ㅠ 각각의 음악들은 그리 나쁘지 않지만,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라면 곡들의 전체적인 밸런스와 조화에도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클래식 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에서 적지 않은 볼거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케로군도 잘은 모르지만... 옆 자리에서 설명해주시는 귀중한 정보 덕분에, 약간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디지털, 고속, 젊음의 시대에... 클래시컬하고 느릿느릿하고 때론 답답한 사랑 이야기는 DSLR과 고성능 똑딱이의 시대에 클래식 카메라를 찾는 소박한 사람들과 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종합하자면...
페어 러브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만 하지요. 그래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2%가 아니라 20% 쯤 부족하달까요?
하지만, 아주 파격적이지도 않게... 애매하게 신선한 감독과 배우의 도전에 대해서 케로군은 조금은 점수를 더 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장르적 관습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충실하게 답습하지도 않으며... 신파적인 요소들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살짝 비켜가려고 노력하며... 충분히 멋부릴 수 있는 부분에서 어깨에 힘을 뺐다는 점은 그래도 그렇게 욕먹을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해서, 종합적으로 별점 5점 만점에 별 세개를 주는 선으로 '그저 그런' 평가를 하면서도... 왠지 감독과 배우, 영화에 대해서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