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연말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중 한 편인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 ) 감독의 신작이자 히스 레저( Heath Ledger )의 유작으로 알려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은 2009년의 말미에 관람을 한지라 시간은 좀 지났습니다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기나긴 제목만큼이나 다양한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웠던 영화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리를 해 보자면 아쉽게도 크나큰 실망과 아쉬움을 남긴 미완의 작품( 대작이라기도 뭐하고... )이 되어 버렸습니다. 에반게리온, 아바타, 셜록홈즈에 전우치까지 연말 영화에 대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의 크기도 컸고... 작품 자체는 물론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까지...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못했던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감독과 연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연출은 독특합니다. 특히 감독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12 몽키즈' 같은 경우에는 상당한 호평을 끌어내면서도 독창적인 영상미와 연출력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독특하다'는 단어는 보통의 흐름대로라면 케로군이 굉장히 좋아할만 한 단어 중 하나이고, 테리 길리엄 감독 역시 그와 같은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근작인 '그림 형제'에서도 살짝 그런 면이 있더니... 이번 '파르나서스~'( 죄송하지만 이하 생략 ㅠ.ㅠ )에서는 독특함 속에 '이상함'만이 남아버린 느낌을 줍니다. 독특하려고 애를 쓰는 통해 이야기는 산만해질대로 산만해지고... 화려한 영상을 펼치는 가운데 내러티브는 어느 줄을 타는지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어느 모로 봐도 잘못 연출했다고 비난을 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것은 주연에 가까운 히스 레저의 죽음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만들 기회를 박탈당한 것을 감안해서 참아주는 것 뿐이죠.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망가졌고 영화는 초중반부터 이야기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몰입만 할 수 있다면, 연출만 제대로 해 낸다면... 참 재밌는 소재가 분명한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 간혹 성공하신 분이 있긴 있으시겠지만... 보통은 어려워 보입니다. ㅠ.ㅠ ) 게다가 충분히 멋있고 감동적일 수 있는 대사 하나하나를 완전히 뚝뚝 끊어버리는 편집의 아쉬움도 아픈 데를 또 때리고 지나갑니다. 몇몇 전작에서도 그런 기운이 있었는데... 이러다가 테리 길리엄 감독이 대형 스타를 대거 동원하고 졸작을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네요.
배우와 연기
영화의 완성도는 그렇다치고... 배우들과 연기에서도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습니다. 주연이자 타이틀롤로 파르나서스 박사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는 나이에 걸맞는( 아마도 여든 살이 되신 걸로 기억을... )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쉬운 건... 그냥 원숙만 하십니다. 연출은 안드로메다로 가서 이야기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까지 독특함을 추구하는데... 주연 배우께서 너무나 무난하십니다. 무난하고 차분한 연기가 이야기의 축을 잡는 역할을 하면 그나마 또 나을텐데,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흐름과 전혀 동떨어진 평범한 모습으로... 또 하나의 '이상함'만 더하고 말았네요.
또,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 히스 레저( Heath Ledger )가 있습니다만, 가끔씩 '조커'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빼면 역시 특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대역(?)으로 등장하는 세 명의 대형 배우... 쥬드 로( Jude Law ), 죠니 뎁( Johnny Depp ), 콜린 파렐( Colin Farrell ) 역시 이름만으로도 파괴력 있는 독특한 연기 세계가 있는 배우들임에도 불구...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매력도 뽐내지 못합니다. 그저 멋있다.. 멋있다...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밖에는 특징도 없는 데다가... 그나마 출연 시간이 긴 콜린 파렐의 경우에도 충분히 자기 연기를 펼칠 여유가 없더군요. 결국은 대형 배우의 죽음으로 생긴 공백을 여러 대형 배우들로 메꿨으나,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덫에 걸렸다는 느낌입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배우는 발렌티나 역의 릴리 콜( Lily Cole )입니다. 연기에서라면 역시 다른 배우들처럼 특징을 보여 줄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이 배우 이미지만큼은 영화의 의도에 200% 싱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코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한... 묘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입니다만... ( 아바타의 네이티리처럼 생겼다는 느낌도... -_-a ) 어쨌든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게 분명히 느껴지는.... 참으로 '독특한' 이미지의 배우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연기로 뿜어낸 독특함이 아니라면... 다른 영화에서 또 이런 매력을 찾게 될지가 미지수라는 점이 있네요.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파르나서스~의 화면은... 만약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이런 화면으로 만들면 어울리겠다... 는 느낌이 듭니다. ( 마침 2010년도 개봉을 목표로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영화화되고 있지요. '-' ) 이 영화의 CG에는 공을 들인 느낌은 확실히 납니다.( 연출과 따로 놀아서 탈이지... ) 영화 초중반에 등장하는 수도원 씬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 참 괜찮은 영화가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무너지는 중후반으로 가면 CG도 무너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 아마도 히스 레저의 죽음 이후... 영화 제작 전반에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던 듯도 싶습니다. ) '상상극장( Imaginarium )'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환상적인 영상을 의도한 것은 알겠는데... 무너진 이야기 구조를 지켜 줄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가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지요... 미국에선 극장 네 개에 소규모 개봉을 할 정도지요. ) 그런 시스템에 충실하게 만들었다면 주연급 배우가 부재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을테고... 온갖 응급 처치로 이야기가 무너지지 않도록 깔끔한 대안을 내놨을지도 모르겠지요... 물론... 그렇게 헐리우드다운 대응을 했다면... 복제된 또 하나의 헐리우드 범작이 탄생했겠지요. 이 영화는 어찌보면 그렇게 비참하게 범작으로 남느니... 장렬하게 졸작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비장한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O-;;;
종합하자면...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을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면서... 한동안 멍~ 한 기분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보통은 이러면 굉장히 좋은 경우인데... ㅠ.ㅠ ) 꼭, 영화표가 아깝다, 돈을 날렸다 하는 비난을 할 상황도 아닌데, 뭐랄까... 영화 시작만 보고 중간부터는 보지 못한... 미완도 너무 많이 미완의 느낌이랄까? 앞으로 누군가가 아예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서 재구성해서, 제발 이 X 누다 만 느낌을 깨끗하게 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이건 예술 영화도 아니고 장르 영화도 아니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돌려보고 뒤집어봐도 어떻게든 추천할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의 평점을 주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화면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 어쨌든, 이것으로 연초의 영화 3총사에 대한 글을 모두 포스팅 완료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