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중에 아버지의 깃발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영화를 조금 봤다고 한탄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어쩐지 영화를 더 적게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양이 중요한 건 아니죠... 아버지의 깃발은 골라서 본 영화로는 아깝지 않은 수작이더군요 ^^
공동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얘기는 빼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얘기를 좀 하자면... 뭐 1971년부터 감독을 했다지만... 솔직히 무시했었습니다. '파이어폭스' 같은 영화가... 전투기 등에 관심 있는 제게는 정말 짜증나는 모습이기도 했고... 서부극이나 '더티 해리'에서와 같은 '연기'가 좋았던 것이지... 감독으로 크레딧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왠지... 졸리기만 한 영화들이 아닌가.... 너무 무게잡고 느릿느릿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감동을 받은 게... "퍼펙트 월드".... 였습니다. 참 내용은 뻔하디 뻔한 헐리우드 로드무비에...아주 흔한 신파였습니다만... ( 케로군은 실은 스토린에는 관심 없고 케빈 코스트너 보러 갔습니다. ) 한 순간 울컥하게 하지 않고... 차근차근 사람의 마음을 잠식하는 힘이... '감동'에 나름 까다로운 케로군을 사로잡았더랬죠... ( 그 후 케빈 코스트너는 안중에 없고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만 관심이... )
이후로도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드라마'류는 잘 선택하지 않는 케로군의 관람 리스트에는 몇 편 올라오지 않은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였습니다. 그러다가.... 무려 "전쟁 영화"를 들고 왔기 때문에 보러갔죠... 그것도 무려... "유황도", 이오지마 섬 전투의 이야기라니... 2차대전사에 관심 있는 케로군이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_+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전쟁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감동적인 수작입니다. ( 별 다섯 개 만점이면 네 개를 드리겠습니다. ) 내용에 대한 설명은 넘어가고, 전체적인 이미지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습니다. 특히, 유사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대작 전쟁 영화들과 다르게, 초반의 압도적인 전투 장면에서도... 관객들을 객관적 관찰자로 만듭니다. 전투 자체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대신... 전투병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차근차근 세뇌시킵니다. 혹자는 너무 동어 반복이라고도 하더군요...
사람을 졸리게 하지도 않습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전투 장면, 상륙 장면 등의 연출은... 제작자 생각도 나게 하고, 참 잘 만들었습니다. 특히, 별로 본 적이 없는 상륙 장면에서의 고공 시점, 전투 장면의 낮은 시점 등이 맘에 듭니다. 느릿한 스토리가 지루해질 법 하면 터져 나오는 폭음과 전투 장면으로의 전환이 결코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합니다. 나름 작품의 격을 높인 영화지만 예전의 '작품성 지향 드라마'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릅니다. ^^;
얼핏 줄거리만 읽으면... - 영웅을 만들기 위해 평범한 병사들을 이용하는 어쩌구... - 군산 복합체에 대한 비판... - 전쟁으로 피폐해진 개인들이 어쩌구.... 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느낌음 조금 다릅니다.
군산 복합체를 매우 짜증나는 세력으로 그리긴 합니다만... 그들은 잘 드러나지도 않고, 솔직히 그다지 나쁘다 일변도로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영웅 만들기에 대해서도... 참 어이없기도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해도 갑니다. 그 대상이 되는 개인들도... 영웅 만들기에 적극 동참도 아니고, 적극적인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피폐해진다면 피폐해졌고, 이용당하다가 버련진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딱히, 과하게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 아이라 헤이즈의 경우는 조금 그런 느낌도 있습니다만... )
결국 얘기하는 것은.... 극히 인간적인 모습들과... 극히 현실적인 정부나 조직의 모습... 그다지 깔끔하지도 않고, 그렇게 철저히 사악하지도 않은... 그러나,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죽음이나 비극으로 서서히... 너무나 천천히 내몰려가는 인간에 대한 '기록과 고백'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기분나쁜 '미국'의 '미국'에 대한 면죄부 같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공감을 자아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각 인간에 불과하며, 나름의 사고 방식과 입지에 맞춰 나름대로 대응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결국 모두를 서서히 침식해 간다는... 지극히 수동적인( 그러나 냉정한 ) 반전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네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국내 개봉이 불확실합니다. 제목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붙여질지 모르겠네요... 같은 전투의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점... 때문에 이슈가 되겠지만... 국내 정서상 개봉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같은 감독이 풀어내는.... 전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어떤 식으로 대구를 이루어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어냈을지... 오른쪽의 벽화는 보았으니, 왼쪽의 대구를 이루는 벽화가 궁금해집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개봉 2주째 흥행 1위를 달린다는데... 나름 상반된 정서를 가진 한국인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미국을 대표하는 마초의 이미지가 "아버지의 깃발"과 같은 영화로 미국과 미국의 전쟁을 이야기하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과거의 적국과 그들의 전쟁을 이야기하면서, 30여 년이 지나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바뀌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꼭 전쟁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혹은 2차 대전에 관심이 없더라도 )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이라면 피해가는 관객이라도 이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연작 아닌 연작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한 편의 '좋은 영화'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케로군은 "아버지의 깃발"이 좋았지만... 써니양은 그냥 그랬다고 하더군요...( 취향을 좀 탈 수도 있겠습니다. ^^ ) 그리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꼭 국내 개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