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10 시즌이 단 네 번의 그랑프리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줄타기를 하듯 한 번 한 번의 그랑프리가 챔피언 도전자 다섯 명에겐 더없이 중요한 그랑프리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슈미의 표현을 빌자면 'F1의 클라이막스'라고 불리는 스즈카의 일본GP는 베텔의 폴투윈과 레드불의 원투피니시로 막을 내렸습니다. 베텔에겐 헝가리GP 이후 오랜만의 폴포지션 복귀였고, 유럽GP 이후 일곱 번째 GP만에 더더욱 오랜만인 소중한 우승을 거뒀죠. 레드불은 베텔의 3승째가 되는 일본GP에서 세번째 원투피니시를 차지하면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포디움의 마지막 한 자리는 페라리의 알론소에게 돌아갔는데, 스즈카에서 비교적 약세가 예상됐던 알론소로선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였고... 맥라렌 듀오는 4, 5위에 그치면서 다소 실망스런 결과를 얻었습니다. 6위의 슈미와 7위의 코바야시는 각자에게 뜻깊은 써킷인 스즈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반면, 르노 듀오와 포스인디아 듀오, 그리고 윌리암즈의 후켄버그와 메르세데스의 장미군은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죠. 이번 일본GP는 퀄리파잉이나 결승 레이스는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된 셈이지만, 날씨 때문에 토요일에 퀄리파잉이 열리지 못하는 드문 사건을 비롯해서... 이야깃거리는 결코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 Free Practice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일본GP도... 금요일의 첫 프랙티스 세션은 무난하게 시작되는 듯 했습니다. FP1은 웻 컨디션으로 선언됐었지만 사실상 드라이 컨디션에서 시작되었고, 코바야시가 데그너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진행됐죠. 그리고 FP1 중반, 같은 데그너 커브에서 해밀튼이 컨트롤을 잃으면서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타이어월에 부딪힌 해밀튼의 머신은 왼쪽 앞바퀴 서스펜션이 완전히 파손된 것을 비롯... 상당 부분 수리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말았죠. F-덕트와 관련한 리어윙 엔드플레이트의 업데이트 등에 기대가 컸던 맥라렌으로선 징조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고 위험이 높아 2009년 웨버의 퀄리파잉을 앗아갔던 전적이 있는 데그너에서는 코바야시의 위험한 순간과 해밀튼의 사고 외에도... FP1 막판 버튼이 연석을 밟고 심하게 튕기는 장면이 연출되었기 때문에 다른 드라이버들 모두 데그너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던 것 같습니다. FP1의 톱텐은 베텔 - 웨버 - 쿠비차 - 수틸 - 해밀튼 - 바리옹 - 헐크군 - 슈미 - 퀵닉 - 장미군이 차지했는데, 첫 연습이라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레드불, 특히 베텔의 강세는 심상치 않았죠.
같은 날 오후에 진행된 FP2에서는 초반에 윌리암즈의 헐크군과 메르세데스의 슈미의 선전이 눈에 띈 반면... 해밀튼의 머신은 미캐닉들에 의해 열심히 조립되고 있었지만, FP2 참가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FP2에선 큰 사고는 없었지만... 쿠비차가 던롭 커브에서 크게 코스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고, 장미군의 경우엔 머신 트러블로 한동안 개러지에서 정비에 전념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죠. FP2 중후반에는 옵션 타이어를 장착한 머신들이 퀄리파잉을 대비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도 베텔과 레드불 듀오의 기록은 다른 머신과 드라이버들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FP2 마지막 10분 전후에는 스즈카의 연습 주행에서 강세를 보이던 슈미가 해밀튼이 사고가 났던 데그너에서 유사한 코스아웃을 보였으나... 다행히 사고는 모면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밀튼은 마지막 몇 분을 남기고 머신의 조립, 정비를 마치고 트랙에 복귀했는데, 단 몇 분, 단 몇 랩의 테스트였지만, 해밀튼에겐 굉장히 소중한 데이터였단 생각이 듭니다.
FP2에서의 톱텐은... 베텔 - 웨버 - 쿠비차 - 알론소 - 마싸 - 버튼 - 페트로프 - 슈미 - 수틸 - 헐크군 순이었는데... 레드불 듀오의 강세가 눈에 띈 것 못지 않게 르노의 쿠비차도 두 번의 연습 세션에서 모두 P3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슈미와 윌리암즈 듀오 역시 연습 세션에서의 기록만 놓고 본다면... 이후 퀄리파잉에서 톱텐 그리드에 도전할만한 긍정적인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난 토요일... 일본GP가 열리는 스즈카의 날씨는 확연하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FP1, 2의 두 세션이 드라이 컨디션에서 시작됐던 것과는 다르게, ( FP1의 경우 초반 웻컨디션이 선언되었었으나, 사실상 대부분의 세션이 드라이 컨디션으로 진행됐습니다. ) 토요일 오전의 스즈카에는 집중 호우가 쏟아지고 있었죠. 보통 퀄리파잉을 3시간 앞두고 진행되는 FP3가 프랙티스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세션이 되곤 했지만, 스즈카를 뒤덮은 먹구름은 그런 흥미진진한 토요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트랙 대부분이 비에 젖어있는 것은 물론, 스즈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오르막, 내리막 구간들은 모두 강으로 변해 있었고... 그나마 평탄한? 구간엔 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인스톨레이션랩을 마친 드라이버들의 팀라디오에선 드라이빙 하기 힘들다는 말들이 쏟아졌고, 안전을 염려한 대부분의 머신이 개러지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사실상 모든 머신들이 FP3 세션을 포기한 가운데, 몇몇 머신들이 트랙을 점검하듯 개러지를 빠져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고... 특히 스즈카에서 경쟁력이 떨어져보였던 토로로쏘 머신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스즈카를 뒤덮은 비의 양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었고, FP3에 랩타임을 기록한 머신이 한 대도 없는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죠.
이런 우려를 씻어주기 위해서인지? 토로로쏘의 알게수아리는 용감하게 물쌀을 가르며 랩타임을 기록했는데... FP3에서 랩타임을 기록한 다른 드라이버가 버진의 티모 글록 밖에 없었기 때문에, F1 데뷔 후 본인의 첫 예선 세션 P1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세션이 거의 종료될 때 쯤 트랙에 나선 두 대의 토로로쏘 머신은, 각각 스타팅 그리드 1, 2 그리드에 멈춰서서... 웻컨디션에서 프론트로우를 점령하고 출발하는 테스트를 진행하며 한 껏 기분을 내기도 했죠.
- Qualifying
앞선 FP3이 집중 호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F1 팀들의 일기 예보에서는 퀄리파잉 시간에 더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보대로 FP3와 퀄리파잉 사이에 엄청난 집중 호우가 스즈카를 덮쳤고, 퀄리파잉이 시작되어야 할 오후 두 시가 다가오는데도 트랙 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퀄리파잉 전까지의 이벤트(?)라면, 앞서 FP1에서 해밀튼의 사고로 맥라렌의 두 개 밖에 없는 새로운 리어윙 엔드플레이트 중 하나가 손상되었는데... 규정상 변경 가능한 Q1의 시작 전에 새 부품을 다시 해밀튼의 머신에 붙이기 위해, 맥라렌 스탭이 직접 엄청난 시간을 들여, 엄청난 거리를 날아와 부품 교체에 성공한 일이 있었죠. 해밀튼의 머신을 빠르게 수리해 FP2에 나가게 했고, 지구 반대편에서 직접 부품을 공수하는 등 최선을 다한 맥라렌 스탭들의 노력은 이상이 발생한 해밀튼의 기어박스를 거의 수리에 성공하는 등 결실을 보이는가 했지만... 결국, 이후에 수리한 기어박스의 문제가 더욱 커지고, 해밀튼이 불가피하게 기어박스를 교체해 5그리드 페널티를 받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오후 두 시를 앞두고 세이프티카가 물에 빠진 스즈카를 일주하고 온 뒤, 처음으로 30분 동안의 퀄리파잉 연기가 발표되었는데... 매 30분마다 세이프티카가 ( 비는 그치지 않고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 트랙 상태를 점검하고 계속 퀄리파잉 속개가 불가능하다고 발표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실상 이날 토요일 퀄리파잉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시청자들도 알 수 있었지만, 절차상, 그리고 퀄리파잉을 보러와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많은 관람객들을 위해... 세이프티카는 레이스 컨트롤 센터를 여러 차례 드나들었고, 모든 관계자들 역시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해야 했죠. 덕분에 이미 퀄리파잉 준비를 마친 상태로 더 이상 할 게 없는 드라이버와 각 팀의 미캐닉들은...
포커를 하거나...
배를 만들면서 망중한을 즐겼는데,
만든 배를 핏레인을 따라 떠내려보내며 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이버와 미캐닉들, 그리고 시청자와 관람객들의 이런 무료한 기다림은 세 번의 연기를 거쳐 오후 3시 20분 경에... 퀄리파잉을 일요일에 개최하는 것으로 발표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로써, 같은 스즈카에서 2004년 태풍의 영향으로 그랬던 것처럼 2010년의 일본GP도 퀄리파잉이 일요일 오전에 펼쳐지게 되었는데... 곧 이어진 공지에 따라 퀄리파잉 시간은 10월 10일 오전 10시로 정해졌습니다.
과연 비가 그칠지, 퀄리파잉과 결승 레이스는 열릴 수 있을지조차 의문시되었던 스즈카는... 일요일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습니다. 퀄리파잉이 예정된 오전 10시 쯤에는 트랙의 상당부분도 마르면서 드라이 컨디션으로 변해가고 있었죠. 무난하게 진행된 퀄리파잉의 첫번째 세션은, 이런 정상적인(?) 컨디션이라면 당연히 탈락이 예상되는 신생3팀의 드라이버 외에... 토로로쏘의 부에미가 첫번째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Q1에서 톱텐은 베텔 - 헐크군 - 장미군 - 바리옹 - 웨버 - 슈미 - 알론소 - 버튼 - 마싸 - 코바야시가 차지했는데, 베텔의 성적은 예상되었던 것이라고 보더라도 윌리암즈 듀오 헐크군과 바리옹이 P2, P4를 각각 차지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연습 주행에서 강세였던 슈미와 홈써킷에서 힘을 내는 코바야시의 선전도 돋보였죠...
이어진 Q2에선 치열한 접전과 함께 첫번째 의외의(?) 탈락자가 나왔는데, 그 주인공은 페라리의 마싸였습니다. 마싸의 Q2 기록은 P3 해밀튼보다 단 0.8초가 뒤져 있었고, P5의 팀메이트 알론소와도 0.5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마싸는 P12에 그치며 오랜만에 Q3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마싸로선 트래픽 때문에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없었다는 악재가 겹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머신의 퍼포먼스가 충분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팀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해 주었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싸와 함께 Q3 진출에 실패한 여섯 명의 드라이버는 하이트펠트, 페트로프, 코바야시, 수틸, 알게수아리, 리우찌였는데, 포스인디아 듀오와 페트로프도 아까웠지만... 특히 Q2 후반까지 톱텐의 자리를 지키다가 슈미의 마지막 트라이에서 P11로 밀려난 퀵닉 하이트펠트가 특히 안타까운 느낌이 들더군요. Q2의 톱텐은 베텔 - 웨버 - 해밀튼 - 버튼 - 알론소 - 바리옹 - 장미군 - 헐크군 - 쿠비차 - 슈미가 차지하면서 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맥라렌은 상위 그리드 출발을 기대하게 되었죠.
역시 특별한 사고나 이벤트 없이 진행된 스즈카에서의 퀄리파잉은, Q3에서도 특별한 사고 없이 무난하게 진행됐습니다. 2009년에 숱한 사고로 얼룩졌던 일본 GP의 퀄리파잉을 생각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극히 무난하게 진행된 Q3에서 그나마 언급할만한 특별한 점이라면, 역시 프라임 타이어로 Q3에 나선 버튼과 맥라렌의 독특한 작전이 아니었나 싶네요. 지난 캐나다GP에서 레드불이 택했던 그 작전 그대로, 맥라렌의 버튼은 초반에 다소 불리하지만 핏스탑을 좀 더 늦게 가져갈 수 있는 프라임 타이어로 출발을 선택했고... 버튼은 P6를 기록하면서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미 5그리드 페널티를 안고 퀄리파잉에 나선 해밌튼은 눈부신 역주를 보여주면서 P3를 차지했는데, 상대가 되지 않는 레드불과의 격차를 생각하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성적을 얻은 셈이 것 같네요. 하지만, 해밀튼은 Q3에서 윌리암즈의 후켄버그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라, 결과적으로 페널티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왠지 이미지만큼은 좀 더 나빠지지 않았나 합니다. 해밀튼의 방해를 받아 피해를 봤다는 헐크군은, 두번째 트라이에서 제대로된 랩타임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P9에 그쳤는데, 실제로 윌리암즈와 헐크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결과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어진 셈이 되었네요.
Q3 결과 폴포지션은 비정상적이었던 FP3를 제외한 모든 주말 세션 동안 P1의 자리를 지킨 베텔에게 돌아갔고, 웨버가 베텔을 근소하게 따라붙으면서 프론트로우의 또 다른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해밀튼이 P3의 퀄리파잉 성적에 그리드 페널티를 더해 8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된 가운데, 스타트 라인 두번째 열은 쿠비차와 알론소, 세번째 열은 버튼과 장미군이 차지했죠. 클린 사이드 3그리드에서 출발하는 쿠비차와 2그리드의 웨버가 스타트에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동시에 폴포지션을 차지한 절반 정도의 그랑프리에서 출발이 좋지 않았던 베텔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퀄리파잉을 마치고 단 네 시간 뒤 결승 레이스를 기다리는 이들의 관심사를 떠올랐습니다.
- Sunday Race
퀄리파잉이 오전에, 결승 레이스가 오후에 열리는 타이트한 스케쥴 덕분에, 레이스의 준비는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은 버진의 디그라씨의 어이없게도 과도하게 이른(?) 사고로 이어졌죠. 디그라씨는 레이스 시작 전 그리드에 정렬하기 위해 핏레인을 나온 아웃랩에서, 130R 부근에서 코스아웃... 타이어월을 들이받고 레이스를 시작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덕분에 이날 21그리드는 비어 있는 상태에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포메이션랩을 마치고 긴장된 가운데 시작된 일본GP의 스타트에서, 선두의 베텔은 무난한 출발을 보이며 스타트가 빨랐던 3그리드의 쿠비차로부터 자리를 지켜냈지만... 더티 사이드인 2그리드에서 출발한 웨버는 아쉽게도 스타트에서 쿠비차에게 2위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5그리드의 버튼 역시 4그리드의 알론소를 스타트에서 앞섰으나, 아쉽게도 2코너에서 자리싸움에서 밀려나면서 다시 알론소에게 4위 자리를 넘겨줬죠. 해밀튼이 빠른 스타트로 단번에 6위까지 올라오면서 스타트에서 큰 이득을 본 반면... 6그리드의 장미군은 클러치 문제로 스타트가 크게 늦으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아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일본GP 스타트의 스포트라이트는 선두권보단 중위권에 쏟아졌습니다. 13그리드에서 너무나 좋은 출발을 보였던 페트로프가... 9그리드에서 스타트가 늦었던 헐크군을 추월하려다 접촉하면서 하프스핀, 바로 코스아웃하면서... 헐크군을 동반 리타이어시키고 말았죠.
스타트의 사고는 헐크군과 페트로프에서 멈추지 않고, 12그리드에서 출발한 마싸가 턴01에서 장미군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코너 안쪽을 침범... 그립을 잃고 감속이 되지 않은 상태로 트랙에 복귀하면서 리우찌의 머신을 옆에서 들이받았고... 두 머신 모두 크게 파손되며 첫 코너를 돌지 못한채 그래블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마싸로서는 예상 외의 불리한 중위권 출발, 더티 사이드의 그리드, 앞선 드라이버의 늦은 출발 등 여러 악조건이 이런 극초반의 탈락을 불러왔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리우찌로선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홈스트레이트 부근에 두 개의 큰 사고로 네 대의 머신이 멈춰서면서 바로 세이프티카가 발령되었고,
세이프티카의 뒤로는 베텔, 쿠비차, 웨버, 알론소, 버튼, 해밀튼, 바리옹, 슈미가 도열했습니다. 첫 랩의 세이프티카라 예상치 못한 핏스탑이 몇 건 진행되었는데, 대열 후미 신생3팀의 각 한 명 씩, 트룰리, 글록, 세나가 피트로 들어왔고... 조금 더 인상적인 장면은 6그리드에서 출발한 장미군 역시 첫 랩에 핏스탑해 프라임 타이어로 교체하는 장면이었죠. 극초반의 타이어 교체는 이미 모나코의 알론소, 실버스톤의 베텔 등이 성공적으로 사용한 전략이긴 한데, ( 3랩까지 포함한다면 싱가폴의 웨버까지... ) 과연 스즈카에서도 이 전략이 통할지는 알 수 없었기에 상당히 도박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세이프티카가 들어가기 전에 볼거리는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으니...
르노 팀으로선 왠지 안 좋은 전통이 되어버릴 것 같은... 휠이 빠져 버리는 장면이 또다시 연출되었습니다. 2랩 째부터 오른쪽 리어휠이 불안했던 쿠비차의 머신에서 3랩 째에 결국 휠이 분리되었고, 불가피하게 쿠비차는 리타이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위로 달리던 쿠비차가 이르게 리타이어하면서 세이프티카 상황의 톱텐은... 베텔 - 웨버 - 알론소 - 버튼 - 해밀튼 - 바리옹 - 슈미 - 퀵닉 - 수틸 - 알게수아리 순으로 정리되었고, 3랩째에 이미 6대의 머신이 레이스를 출발하지 못하거나 리타이어한 상황이 되어 있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많은 머신이 완주에 실패하지 않나 우려가 되었지만, 레이스 초반에 너무 큰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인지... 이후에는 단 몇 건의 사고만이 이어졌습니다.
7랩째 레이스가 속개된 후... 8랩째에 슈미가 바리옹을, 13랩째 코바야시가 알게수아리와 작은 접촉을 일으키며 추월에 성공했고, 18랩째에는 다시 코바야시가 수틸을 추월해 9위까지 올라서면서 많은 홈관중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스타트 이후 타이어 소모가 심해진 드라이버들, 특히 옵션 타이어로 출발한 상당수의 드라이버들은 20랩 전후에서 핏스탑을 가져갔는데... 프라임 타이어로 출발했던 버튼과 코바야시는 비교적 늦은 핏스탑을 가져가면서 변화를 꾀하기도 했죠. 하지만, 버튼의 계획은 이미 핏스탑을 마친 레드불 머신에게 바짝 추격 당하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스즈카와 같은 고속 써킷에서는 하나의 타이어를 가지고 오래 버티는게 상당히 어려웠겠죠.
핏스탑을 전후해 조금 눈에 띄었던 장면은, 24랩째 슈미가 핏스탑 후 극초반 핏스탑을 했던 장미군의 뒤로 들어오면서 발생했습니다. 이후 25랩 이상 슈미는 장미군의 뒤에서 압박을 가하며 쫓아가기만 하고, 장미군이 레이스 종료 4랩을 남기고 왼쪽 리어휠이 분리되어 타이어월로 돌진하기 전까지... 계속 장미군의 배기구가 뿜어내는 뜨거운 공기를 마셔야 했죠. 이럴 때 팀오더 같은 게 주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상황과 관련된 오더가 팀라디오를 통해 나오지는 않았고... 타이어가 심하게 닳은 장미군이 보다 싱싱한 타이어의 슈미에게 자리를 내주는 장면은 끝내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큰 사건 사고가 없었던 레이스 중반을 지난 40랩째, 해밀튼이 팀라디오를 통해 기어박스 문제를 리포트했습니다. 페널티까지 받으면서 교체한 새 기어박스로 앞으로 시즌 종료 때까지 사용해야 하는 기어박스였기 때문에, 해밀튼으로서는 악재가 겹치고 겹친 이번 주말, 최고의 위기를 맞은 셈이었습니다. 해밀튼의 기어박스 문제는 3단 기어가 망가진 문제였는데... 결국 해밀튼은 레이스 종료시까지 4단 이상의 기어만을 이용해 달려야 했고, 저속 코너에서 특히 고생하는 가운데 기록이 크게 나빠졌죠. 해밀튼은 뒤늦게 핏스탑한 버튼보다 상당히 앞서서 달리고 있었지만... 결국 문제 발생 후 네 랩 만에 버튼에게 따라잡혀 쉽게 자리를 내줬고, 5위의 자리를 지키며 단지 레이스를 마치는 것만 생각하고 달려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런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뒤따르는 장미군 역시 속도가 느려... 뒤따르는 머신들과의 간격은 비교적 천천히 좁혀졌다는 점 정도가 되겠네요.
해밀튼이 버튼에게 자리를 내준 다음 랩인 45랩째,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포스인디아의 수틸이었는데요... 수틸은 130R 부근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스핀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내 핏레인에 들어가더니 바로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수틸의 문제는 엔진 오일이 새는 문제였다고 하네요.
레이스 중반엔 물론 해밀튼과 수틸의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지만, 보다 재미있고 흥분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레이스 종반을 뜨겁게 달군 드라이버는 자우버의 코바야시였습니다. 14 그리드에서 프라임 타이어로 출발, 이후 뒤늦은 핏스탑에서 옵션 타이어를 끼운 코바야시는... 타이어 상태의 잇점을 십분 활용하면서... 앞서 한 차례 추월했던 알게수아리를 다시 추월했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수아리의 프론트윙과 코바야시의 사이드 포드가 손상되는 접촉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코바야시는 이후 레이스 종료 네 랩을 남기고 바리옹... 종료 세 랩을 남기고 팀메이트 하이트펠트를 추월하면서... 최종 순위 7위로 레이스를 마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홈써킷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열광적인 관람객들에게 보답하기라도 하듯... 이날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드라이빙과 배틀을 선보인 코바야시는, 확실히 아시아권을 넘어선 최고 수준의 F1 드라이버 반열에 든 듯한 느낌이더군요.
레이스 종반 수틸과 장미군의 사고, 그리고 이어진 리타이어 외에는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고, 베텔이 가장 먼저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면서 대부분의 순위는 레이스 종반 순위 그대로 결정됐습니다.
베텔이 가장 먼저 피니시라인을 통과해 폴투윈을 확정한 뒤로는... 웨버와 알론소가 수 초의 간격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포디움을 확정지었고, 기어박스가 고장난 해밀튼을 가볍게 추월한 버튼은 4위, 겨우 완주에 성공한 해밀튼은 5위에 올랐습니다. 6위에는 오랜만에 톱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슈미의 이름이 올라갔고, 7위와 8위에는 자우버 듀오 코바야시와 퀵 닉의 이름이 올라갔는데... 자우버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운 - 시즌 최고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윌리암즈의 바리옹은 9위에 그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반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던 토로로쏘의 부에미는 베텔의 우승만큼이나 오랜만인 포인트를 손에 넣었습니다.
한 편 신생3팀의 머신들은 레이스를 출발하지 못한 디그라씨를 제외하면, 다섯 대의 모든 머신들이 완주에 성공한 가운데... 로터스는 두 드라이버가 각각 12, 13위로 들어오면서, 시즌을 10위로 마칠 수 있는 강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HRT의 사콘 야마모토는 홈 써킷에서의 레이스에서 출발이 아주 좋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또다시 팀메이트에게조차 뒤지는 최하위로 레이스를 마쳐 아쉬움을 더하기도 했죠.
레이스 결과에서 가장 아쉬웠을 팀이라면 르노와 포스인디아였을 것 같습니다. 포스인디아는 퀄리파잉 성적은 나빴지만, 두 드라이버가 모두 스타트가 좋았는데... 결국 리우찌는 첫 랩에 마싸의 돌진으로... 수틸은 레이스 종반 엔진 오일 문제로 리타이어 해 노 포인트로 그랑프리를 마무리해야 했죠. 물론, 쿠비차가 무려 3그리드에서 출발하고 스타트에서 2위 자리로 올라섰는데도 불구하고... 휠이 빠지면서 리타이어해버린 안타까움은 보다 클 것 같습니다. 페트로프 역시 아주 좋았던 스타트가 재앙에 가까운 결말로 막을 내렸는데요... 헐크군과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페트로프에겐 다음 한국GP에서 5그리드 페널티가 주어지기까지 했으니 메르세데스GP를 잡기 위해 갈길 바쁜 르노로선 시즌 종반 악재가 크게 겹친 셈입니다.
레이스 중반이 다소 밋밋하기는 했지만, 일본GP답게 여러가지 이야깃거리들이 함께했던 스즈카에서의 열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일본 GP의 승자는 누가봐도 원투피니시를 이뤄낸 레드불이었습니다. 팀으로선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많은 포인트인 43포인트를 가져갔고, 별다른 문제나 이슈가 없었다는 것이 더욱 고무적인 주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론소의 페라리 역시 비교적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실제로 어느 정도 그랬던 ) 스즈카에서의 선전으로... 맥라렌과의 격차를 좁히고 개인 타이틀만큼 여전히 사정권에 든 상태로 유지하게 되어 어젯 밤 잠자리에 드는 느낌이 무척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반면, 맥라렌의 경우엔 마음이 무거울 같은데, 대대적인 에어로 업데이트에 마지막 새 엔진까지 모두 투입했으나... 단 한 명의 드라이버도 일본GP 포디움에 오르지 못하면서... 개인과 팀 모두 챔피언십 경쟁에서 한 단계 물러선 셈이 되었네요. 기어박스가 파손된 해밀튼의 경우가 좀 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겠고요. 이어지는 한국GP - 긴 직선주로가 많아 맥라렌에게 조금이나마 덜 불리한 마지막 써킷에서 맥라렌 듀오는 반드시 원투피니시 정도를 기록해야 하는 부담스런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GP 결과 WDC 포인트 경쟁은 여전히 5강이 경쟁하는 구도긴 하지만... 앞선 세 명의 드라이버들이 확실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상황입니다. 선두권 5명의 포인트 차이는 31 포인트 차이로 벌어진 대신... 선두 세 명 - 웨버, 알론소, 베텔의 포인트 차이는 14 포인트 차이로 보다 압축된 경쟁이 벌어지는 느낌입니다. 현재 포인트 순위는 웨버( 220 ) - 알론소( 206 ) - 베텔( 206 ) - 해밀튼( 192 ) - 버튼( 189 ) 순으로, 해밀튼과 버튼은 산술적 계산으로 한 번의 그랑프리로 선두를 탈환할 수 있는 경우가 없는 상태고... 베텔과 알론소의 경우, 한국GP에서 1위를 가져간 뒤... 웨버가 5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다면, 단 번에 1위를 쟁취할 수 있는 상태네요.
WCC 경쟁에서는 43 포인트를 추가한 레드불이 맥라렌, 페라리와의 간격을 보다 넓히면서... 올 시즌 - 그리고 사상 첫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획득에 8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레드불의 드라이버들이 동반해서 부진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레드불로선 충분히 기대를 해봐도 되는 상황이겠죠? 알론소가 홀로 15 포인트를 추가하는데 그친 페라리는, 두 드라이버가 22 포인트를 합작한 맥라렌과의 격차가 좀 더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순위는 레드불( 426 ) - 맥라렌( 381 ) - 페라리( 334 )로... 맥라렌은 단 한 번의 그랑프리에서 레드불을 따라잡을 산술적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페라리로서도 맥라렌을 따라잡기 위해선... 누구보다 마싸의 안정적이고 높은 점수 획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본GP가 끝나고 이제 다음 그랑프리로 대망의 한국GP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즌 종료까지 단 세 그랑프리밖에 남지 않은 엄청나게 중요한 시점의 그랑프리죠. 역사적인 우리나라에서의 첫 그랑프리가... 챔피언십의 향방이 뚜렷하지 않은 치열한 경쟁의 가운데 개최된다는 게 무척 흥분되네요. 아직까진 F1 머신이 제대로 주행해 본 적은 없어서 섣불리 예상하기 힘든 한국GP의 향방입니다만... 맥라렌 머신보다는 레드불 머신에게 조금이나마 더 유리한 그랑프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보통 젊은 드라이버들이 새로운 써킷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각 팀의 보다 젊은 드라이버들과 신예 드라이버들이 새로운 KIC에서 좋은 기록을 내지 않을까도 기대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케로군 역시 한국GP, 정말 많이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