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대작 중의 하나였고, 리들리 스콧이란 이름 하나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거기에 '글래디에이터'로 리들리 스콧과 찰떡 궁합을 증명했던 러셀크로 주연으로 주목 받았던... 로빈훗( Robin Hood )을 관람하지 않는다면 올해 무슨 영화를 봐야 하는 걸까요?
칸느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짐작할 수 있듯이 헐리우드다운 대중성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고 최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다분히 정치적인 영화라 다소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 답게 영상, 음향, 스케일에서 압도적인 것이 매우 인상적이면서 적어도 케로군에게는 충분히 흥미롭고 재밌는 영화이면서 좋은 영화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아래 숨긴글 속에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
감독과 연출
리들리 스콧 감독 하면 '블레이드 러너'로 대표되는 사이버펑크는 물론, '글래디에이터'나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보여줬던 스케일 큰 역사극... '블랙 호크 다운'에서의 밀리터리나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 보여준 첩보 스릴러까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화로 영화사에 큰 획을 남긴 감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로빈훗'에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은 관록을 발휘합니다. 기존에 여러 차례 영화화된 로빈훗과는 전혀 다른 굉장한 무게감을 가진 영화였지만...; ( 케빈코스트너의 로빈훗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있다고 할 수 있죠. ) 액션 영화의 거장답게 빠른 호흡으로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런닝타임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진지하면 진지한 게 전부고, 액션 영화면 내용이 부족한 평범한 감독과는 다르게... 충분한 정치/역사 의식과 스케일 큰 액션 영화의 감각을 모두 가진 리들리 스콧 다운 연출이 돋보입니다.
글래디에이터, 아메리칸 갱스터, 바디 오브 라이즈에 이어 또다시 호흡을 맞춘 러셀 크로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만큼 잘 다루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만큼 상당히 매력적으로 묘사해냅니다. ( 서서히 러셀 크로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가는 느낌도 드네요. ) 러셀 크로의 최근 10년 간 작품 중에서 최고다 싶은 작품은 모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했던 감독이기도 하죠. 케이트 블란쳇이나 맥스 폰 시도, 마크 스트롱 등의 배우 역시 자기 색깔이 매우 강한 배우들이지만... 리들리 스콧의 영화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스타일에 완전히 녹아난 모습을 보면 감독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상과 음향에서의 완성도입니다. DVD 시대 후반의 레퍼런스 타이틀이었던 블랙 호크 다운이나 킹덤 오브 헤븐에서처럼 엄청난 스케일로 화면을 꽉 채우는 영상미와 서라운드의 채널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음향의 연출은... 이번 로빈훗에서도 반복되는 대규모 전투 씬( CG보다 실사의 비중이 높아서 더 놀라운 )에서 여지 없이 등장합니다. 다른 모든 장면보다도 프랑스군의 상륙 씬에서 화살 하나하나의 소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상륙 장면에 버금가는 엄청난 현장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편집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는데, 아마도 런닝 타임 때문에 편집된 것처럼 두세 차례 이야기가 끊어지는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킹덤 오브 헤븐 처럼 감독판이 나오면서 많이 회복되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많은 투자를 했던 영화인데 편집에서 뚝뚝 끊기게 만든 점은 불만입니다. 물론 워낙에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보니 이런 편집에서의 아쉬움은 조금 마음만 먹으면 참아낼 수 있으니, 크게 부담을 가지고 접할 필요는 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다운 걸작 중 하나로 남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배우와 연기
일단 로빈훗의 핵심은 러셀 크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시대극으로 연출되었는데... 글래디에이터2처럼 보여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물론 이런 역할에 러셀 크로만한 배우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기존의 액션 활극의 히어로로서의 로빈훗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듯 하면서도 그 안에 민중 영웅으로서의 힘을 간직한 캐릭터를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연기력을 떠나서 인상과 목소리만으로도 러셀 크로의 매력은 상당하죠.
러셀 크로 외에 눈에 띄는 배우는 마리온 역의 케이트 블란쳇과 맥스 폰 시도, 마크 스트롱 정도인데... 우선 케이트 블란쳇의 경우 반지의 제왕에서의 갈라드리엘과는 상반된 느낌으로, 어떤 면에서 남성적이면서 서민적이고 거친 캐릭터의 연기를 잘 소화해냈습니다. 다분히 영국적인 인상과 억양은 영화 '엘리자베스' 시리즈에서 그랬듯이 영국인 캐릭터엔 더없이 어울리는 것 같네요.
맥스 폰 시도는 얼마 전 보았던 셔터 아일랜드에 이어서 매우 인상적인 노년의 연기를 선보여주는데, 영화 속에서 상당수의 캐릭터에게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역할로서의 비중이나 깊이 남은 인상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셔터 아일랜드 이상일 것 같습니다.
마크 스트롱은 근작 셜록 홈즈, 킥애스에 이어서 매우 인상적인 악역을 선보였는데, ( 모두 올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 ) 왠지 악역으로도 눈에 익으니까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캐릭터가 되었네요. 이름답게 매우 '스트롱'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고요. 영국 출신 배우면서 프랑스어 연기까지 무난히 소화해 내기 위해 노고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로빈훗에는 익히 알려진 전설 속의 로빈훗의 이미지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글래디에이터나 킹덤 오브 헤븐이 그랬듯이 중세 역사를 바탕으로 한 가상 역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의적 로빈훗'의 이미지 보다는 민중 혁명 투사이자 정치의 희생양이었던 로빈훗이라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낸 것이 인상적입니다. 국내 언론 중에서도 다소 보수적인 언론에서 영화 로빈훗을 불편하게 평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겠고, 일반 관객 중에도 민중 혁명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에겐 그다지 맘 편한 영화는 아닐 것 같네요. 케빈 코스트너의 로빈훗에선 귀족의 아들 로빈훗이 도적이 되는 '위에서 내려온' 영웅의 이미지였지만, 리들리 스콧의 로빈훗에선 평민으로 태어나 민중들의 투쟁에 앞장서는 캐릭터로 완전히 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로빈훗에는 같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과 이어지는 이미지가 많이 존재합니다.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 킹덤 오브 헤븐은 십자군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 사자왕 리처드의 전설 역시 십자군과 연계돼있죠. ) 킹덤 오브 헤븐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사자왕 리차드가 로빈훗 영화의 전반부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고...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이름이었던 프랑스인 '고프리'의 이름이... 영국/프랑스의 중간자적인 악역 캐릭터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도 재밌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79년 공전의 히트작이자 하나의 완벽한 세계관을 만들었던... '에일리언'의 프리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 그것도 두 편을 한꺼번에... ) 에일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제임스 카메론, 데이빗 핀처 등에 의해 속편이 만들어져서 히트를 거듭했던 시리즈지만, 원 감독의 복귀면서 이야기의 프리퀄을 만들어낸다는 소식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종합하자면...
로빈훗은 그 정치색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영화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식의 액션, 스케일, 연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 보통 헐리우드 감독들보단 호흡이 느리고, 스토리의 무게감이 있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스타일이죠. ) 기억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걸작이 될 게 분명합니다. 중세 영웅담에 많이 등장하는 기사와 병사, 중세 전투의 개념과 전투 장면에도 많은 고증을 담아내고 있기도 하죠. ( 킹덤 오브 헤븐과 함께 본다면 '십자군 시대 중세의 전투'에 대해 거의 완전판을 만들 수 있겠네요. '-' ) 이런 스케일 큰 전투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극장을 찾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는 극장도 열심히 찾고 블루레이도 열심히 구입하고 있는데, 이번 로빈훗도 삭제 장면이 포함된 판본을 보고 싶기도 하고 소장 가치도 충분한 영화라 블루레이가 출시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입할 것 같네요.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스케일이 가득한 영화기 때문에... 영화팬이시라면 가능한 놓치지 말고 극장을 찾아서 큰 화면, 좋은 음향 아래에서 꼭 관람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전에 평가했던 올해 관람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별점을 줘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출 ★★★★ 연기 ★★★★ 영상
★★★★☆ 재미 ★★★☆
작품성 ★★★★ 흥행성 ★★★☆ 완성도 ★★★★☆
종합 평가 ★★★★
헐리우드에 몇 남지 않은 거장의 작품답게 로빈훗에는 부족한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앞으로 만들어낼 영화들이 더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