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TYPE-MOON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창작 동인 집단이 발전하여 생긴 회사라고 알고 있는데, 아마도 최근 1년 웹 서핑 좀 했다고 하신다면, 일본의 동인 문화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그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만한 곳이 바로 TYPE-MOON입니다.
모르신다고요? 그렇다면 "Fate/stay night"는 들어보셨겠죠? 혹시 아니라면, '세이밥(세이버)'이라든가 '달빠넷'이라든가 ( 해당 사이트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주변 블로거분들이 이렇게 부르셔서 '-';;; ) 이 정도면 들어보신 적은 있으시겠죠?
뭐...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
그냥 넘어가고... ;;;; ( 혹시 궁금하신 분은 타입문 공식 홈페이지라도 방문하시기를... '나이 제한'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 여튼 그 TYPE-MOON의 "월희", "Fate" 시리즈 등을 통틀어 말 그대로 "시나리오를 전담"하고 있는 주인공이 오늘 얘기할 소설, "공의 경계"의 작가인 나스키노코( 奈須きのこ ) 씨입니다.
[ 일본판 공의 경계 상권 표지 사진 ]
[ 일본판 공의 경계 하권 표지 사진 ]
지금부터 아래 내용에는 몇 가지 네타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전기소설( 伝奇小説 )
소설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왜 하필 "공의 경계"였냐고 물으시면, 먼저 "전기소설( 伝奇小説 )"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한자를 보시면, 위인전기( 偉人傳記 )의 전기가 아니죠... 실은 저도 "공의 경계"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전기소설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무리해서 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홍길동전" 같은 게 이런 전기소설에 들 것 같네요. '주변에 흔하게 있을 법한 배경',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기이한 존재', '일상과 놀라운 일들이 겹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이 전기소설을 지칭하는 요소인 것 같은데... 여튼 '판타지 소설'과는 왠지 뉘앙스가 다른( 정확한 근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 그런 것들입니다.( 뭐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
여튼, 최근 몇 년 간 구입했던 전기소설이나 그 부류의 소설 중에 케로군이 보기에 나름 괜찮았던 작품들을 꼽아보면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것도 '전기소설'로 본다면... 말이죠 '-'a ), 그리고, 이 "공의 경계" 정도가 있습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을 뽑아보라면, -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 인물이 '여성'이다. (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 만화, 무협지 등은 '남성'이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 인물이죠 ) - 시점과 화자, 문체의 변화가 자유롭다. - 자세한 설명 없이 복잡하거나 엄청난 설정의 내용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기소설 자체가 순수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공격당할 여지가 상당히 많은 왠지 사생아 갚은 존재이기도 합니다만, 어쩐 일인지 "공의 경계"에 실린 (순수) 문학 평론가의 평은 이 소설에 대해 전향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 평론 내용이 그닥 동의할만하지도 않고, 말이 굉장히 길어서 이해도 잘 안 됩니다만 -O-a ) 그런 점에서, 나름 잘 만들어진 '전기소설', 특히 공의 경계는 단지 흥미위주로만 볼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난체하는 나스키노코 씨의 문장
소설의 내용은 "료우기 시키( 両儀式 )"라는 이름의 "직사(直死)의 마안(魔眼)"이라는 초인적 능력을 지닌 다중 인격적 존재와 그를 둘러 싼 '기이한' 사건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나열되고 하나 둘 정리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전체의 이야기를 꿰뚫는 료우기 시키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핵심 줄거리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료우기 시키가 중심 인물이긴 하지만... 관점에 따라 주인공을 시키로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양의( 일본식 한자는 '両儀' 우리나라 한자로는 '兩儀' )는 '태극'에서 '사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단계로... ( 어쩌구저쩌구 ) 하는 뭔가 심오한 얘기를 담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어렵사리 구했던 "Fate/stay night"에서도 ( 일본에 가시는 분께 부탁하면서 차마 18금 게임이란 점을 말하지 못해 난관이 있었다죠 -O-a ) 나스 키노코 씨는 심하게 말하면 '괜히 어렵게', '현학적인' 표현을 남발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왠지 잘난척 하는 듯한 그런 문체에 빠져드는 건... 아마도 가이낙스 애니메이션의 설정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여튼 중반 이후 무너지는 번역으로 인해... 한글 번역판은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이 더욱 난해해집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어떻게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습니다. -O-
[ 한글판 공의 경계 상/하권 표지 ]
그리고, 두꺼운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맘에 안 드는 난체하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나스 키노코 씨의 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꽤나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쯤되면 "오덕의 길"에 한 발 빠지고 있는 거겠죠 -O-;;;; )
오타쿠 문화의 또다른 관문
여튼 저 역시 "오덕"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공의 경계"를 다 읽고 나니... 나스 키노코 씨의 팬까지는 아니지만... "료우기 시키"에게만은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오덕으로 이끄는 함정"... 일까요?
어디서 학문적으로 정의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동인 문화"와 "오타쿠 문화".... 사실 두 가지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긴 합니다. ( 상당 부분 교집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창작 집단인 TYPE-MOON은 확실히 "동인 문화"로 보이지만, "Fate"의 팬들은 "오타쿠 문화"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식이죠...
여튼, 생각보다 획일적이지도 않고 다양한 오타쿠 문화는 "공의 경계"등 전기소설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그 맛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를 오타쿠로 인정하노라' 라고 누군가 얘기할 법한... 오덕 문화의 입문서로 "공의 경계"와 같은 전기 소설은 충분히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 거부감이 드는 분들은 그때그때 포기를 하겠지요... )
따지고 보면 "오타쿠"를 만들만한 설정을 만들어 낸 TYPE-MOON과 나스 키노코 같은 사람이 수동적인 오타쿠보다는 더 대한한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죠... "공의 경계"의 설정과 느낌은 TYPE-MOON의 다른 작품으로 오버랩 되고, 자연스레 '팬'들을 '광신도-오타쿠'로 세뇌시켜 롱 런 하면서 오래도록 장사를 해먹으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저는 그런 얄팍한(?) 수에 넘어가지는...
...
그.런.데. 이.미. 넘어갔는 지도 모르겠네요... oTL 작년에 일본에 가시는 마린보이님께 부탁해서 "료우기 시키 피규어"를 구입했던 일부터가... 이미 TYPE-MOON의 술수에 빠져든 걸까요?
[ 마린보이님이 사오신 료우기 시키 피규어 +_+ ]
물론, 극장판 "공의 경계" 소식( 공의경계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 하세요. )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우 노오~~~ ㅠ.ㅠ... ... ... 그나저나 우리나라 DVD 발매는 가능하려나? -O- )
[ 공의 경계 극장판을 예고하는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
이게 꼭, 케로군만의 얘기는 아니겠죠. ^^ 혹시나 '재미있는' 소설 "공의 경계"를 읽고 여러분도 저와 함께 "오덕의 수렁"에 빠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 한달 뒤 메신저에서 '공의 경계 극장판'이나 '페이트 캐릭터의 피규어'에 대해 메신저로 열심히 대화를 나눌 주변 사람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죠... ( 왠지 암울하네요... )
'일단 한 번 읽어보시죠... ㅎㅎ'
결론을 맺자면 오늘 얘기한 "공의 경계"란 소설은 - '전기 소설'이라는 장르의 입문서로... - 혹은 '순수 문학'과는 또 다른 '재미 있는' 한 권의 소설로... - 또는 '오타쿠 문화' 입문을 위해.... ( 싫어하는 분들은 '덕후 소설'이라고 욕하고 무시하셔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듯한 ) "나름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